흉몽대길

가위눌리는 밤

by 라미루이





1.

노루 한 마리가 꿈에 다녀갔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헤에 벌린 내 입술 헤치고 들어와

갈라진 노루발로 생니 비틀고 드잡아 휘젓더니

그래도 성에 안 차는지

지 통수로 꽝 들이박고는 사라졌다

그 바람에 멀쩡한 앞니 두엇이

들썩들썩 흔들리는 꿈이

간밤에 다녀갔다



녹슨 장도리 따위에 갈겨맞은 느낌에

입안 퍼지는 비릿한 쇳내가 성마르다

어째 나이 드니 선잠에 개꿈만도 못한

추접시럽고 숭악한 꿈만 나고 든다



재수 없어 목덜미 껴안고

늘어지는 잠 홱 떨치고 나와

수돗물로 입안 연신 헹궈내

퉤엣 뱉어낸다



모름지기 이런 꿈은

누군가 얄미운 자 재수 없는 이에게 공돈 받는 척하고

잽싸게 팔아넘기는 게 제일 이건만

쉬이 그럴 리 있겠는가

재수 없는 꿈 들리고 눌린 놈

팔자소관이니 뉘한테

짐 넘기겠는가



아침부터 아내 볼이며 아래턱이

퉁퉁 부어있다

열꽃이 피어 체온을 재니

39도를 오르락내리락

병원에 가니 우측 임파선이 부었다

조심하란다.



횡액이다 명백한 변고로다

더한 액운이 덮칠까 봐

입에 담기도 험하지만

바람처럼 스치고 먼지마냥 흩날리는

헛된 꿈 멍멍 꿈이 아닌 것이다

또각또각 뿔 달린

산짐승 발자욱 소리 유난히

오래오래 머무르더니 기어코

이런 사달이 났다.



오후에는 둘째가 놀이터에서 논다고

바지 걷어 올리고 펄쩍 뛰 다니다가

철퍼덕 엎어져서는 한쪽 무릎 깨져

시뻘건 피 철철 흐른다

아이의 눈망울에서 흘러넘친 눈물

멀뚱한 아빠의 마음 적신다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겹으로 덮친 우환이다

오늘 밤 꿈속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네 발 달린 잡것의 뿔

휘어잡아 족쳐야만

성이 풀릴 듯하다



2.

또다시 해는 지고

시커멓게 그늘진 이부자리

먹물이 고인 듯 고요하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노곤해진 삭신 누이니

입가 진득한 기운이 닿고

오목한 인중을 타고 눅진한 숲 내음

스멀스멀 올라온다



머리맡 저 편에서 이 쪽으로

귀에 익은 소리 점점 가까웁다

망설임 없이 곧장 다가오는

발소리가 질퍽하더니

언저리에서 한 발을 내딛던 찰나

끄아악!

기겁하더니 절뚝이며 허둥지둥

좌우 갈지자를 그으며

저 너머로 사라진다



그제야 포박당한 것처럼

옴짝달싹 못하던

내 몸뚱이 가까스로 풀려났다

진땀 절은 베개 슬쩍 들추니

날짐승의 누린내가 진동한다

그 아래

녹이 슨 가위 한 자루

날 선 아가리를 반쯤 벌린 채

억센 털이 묻은 생피를 머금고 있다



세상 저편의 어둠이여

훠이 물렀거라!

다시는

세상사에 눌린 자의 꿈결을 틈타

산자의 무거운 어깨 올라타지 말어라

갈 곳 잃은 발자국 어지러이 남기며

이쪽으로 건너오지 마라



스산한 밤이면 귓가를 긁어대던

오래된 똑딱 시계

오늘따라 숨 죽인 것처럼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