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짧은 비명이 터진다. 동네 뒷산 아카시 나무 위에 둥지를 짓던 까치 한 마리가 고개를 가웃대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이는 불에 달군 대바늘로 왼손 검지 끝을 지지는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반이나 남은 아이스크림을 떨구고 말았다. 애지중지 아끼며 핥아 내리던 본젤라또 딸기맛 콘이었는데 지금은 흙바닥에 철퍼덕 처박혀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신세가 되었다.
근처를 지나던 곰개미 몇 마리가 벌써 단내를 맡고 허둥지둥 걸음이 빨라진다. 호기심이 왕성한 개미의 더듬이 한 쌍이 핑크색 크림에 닿는 순간, 어마어마한 단맛이 전해져 온몸에 쇼크가 온 듯 부르르 떨렸다. 순간적으로 뒤로 퍼뜩 물러선다. 그 개미는 뒤로 나동그라졌다가 폭신한 쿠션을 닮은 무언가가 뒤에서 자신을 받쳐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뒤돌아섰다. 두 더듬이로 바닥에 누워 있는 무언가를 두드리고 쓸어보고 훑어내려가니, 그것은 등을 한껏 구부린 채 숨이 멈춰 있었다.
"아직까지 온기가 남아있어. 마지막 숨을 내쉰 지 얼마 안 됐군. 가엾게도.."
개미는 몸통에 이어진 투명한 날개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바삭거리는 날개가 두 쌍에.. 몸체가 통통하고 촘촘히 털이 돋아 있군."
몸통에서 뻗은 복실한 다리를 더듬으니 뒷다리에서 진한 꽃가루 냄새가 풍겼다.
"이건 저 너머 무덤가에 피어난 수레국화 향인데.."
곰개미는 자신이 더듬대는 사체가 무엇인지 알아챘지만, 더 확실히 판단하기 위해 몸통 끝을 향해 더듬이를 움직였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파르르 떨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더듬이를 통해 그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뾰족하게 튀어나온 벌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벌은 누군가에게 갈퀴 모양으로 생긴 침을 박아 넣었고, 단단히 박힌 그것과 이어진 자신의 내장이 쏟아지며 절명하고 말았다.
개미는 이미 차갑게 식어 굳어가는 벌의 더듬이에서 익숙한 크림 향이 풍기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옆에 떨어져 허물어지는 아이스크림의 내음과 같은 것이었다.
"쿠웅!"
그 순간 개미는 자신을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를 느끼고 어디로 숨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가련한 일벌뿐만 아니라 방금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던 개미 또한 숨이 멎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벌겋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아픈 것보다 공들여 먹던 아이스크림을 놓친 것이 더 분했다. 소리쳐 울기에는 너무나 더운 날씨였고, 그 울음을 듣고 달려올 누군가도 곁에 없었다.
"후우, 호오."
동그랗게 입을 오므리고 달아오른 손가락을 연신 불고 있자니 살갗에 뭔가 검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이게 뭐지?"
오른손으로 집어 조심스럽게 뽑아내니 살짝 따끔하다. 자세히 보니 낚시 바늘처럼 휘어진 침 끝에 주머니 같은 것이 딸려 있다. 더 살펴보려는데 쏘인 손가락이 화끈거린다.
"어쩌지?"
주변에 상처의 열기를 식힐 만한 수돗가나 시냇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입을 벌려 손가락을 깊이 넣고는 혀로 공굴리며 침을 잔뜩 묻혔다.
(아빠는 사람의 침이 소독약이라고 종종 말씀하셨어.)
침을 묻히고 쪽쪽 빨아대니 해로운 것이 빠져나가고, 아픔이 다소 줄어드는 듯했다.
다행히 죽을 만큼 아픈 건 아니야.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야지. 괜히 말했다가는 병원에 데려가던가 아니면 과산화수소수를 왕창 들이부을지도 몰라. 상처에서 흰 거품이 몽글몽글 솟아나고, 난 비명을 지르다가 끝내 기절하겠지.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잡념에 빠져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이미 핑크색 웅덩이로 변해버린, 자신의 이빨 자국이 남은 스낵콘만 덩그러니 남은 아이스크림 옆에 뭔가 작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조그만 '일벌'이었다.
그것은 이미 숨이 다한 듯 등을 둥글게 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가락을 바늘로 찌른 것처럼 아프게 한 놈이 이 벌이었다니. 아이는 기가 막혀 그 벌을 잠시 노려 보았다.
"대체 왜 그런 거야? 내가 먹던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탐이 난 거니? 그건 외할머니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들러 사주신 거라고. 그걸 왜 니가 욕심을 부리는데. 너희들은 꽃에서 나는 꿀을 먹는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사방이 아카시 꽃이고 민들레에 국화에 개나리에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데. 하필이면 내 아이스크림을 노리다니. 너도 나도 결국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어. 난 아무 잘못도 없이 네 침에 쏘이고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고 넌 이렇게 죽어버리면 나보고 어쩌란 말이니?"
아이는 원망스러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자신의 한쪽 발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미 숨이 끊어진 벌을 짓밟으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자신의 발아래서 허둥대는 뭔가를 발견했다.
(넌 또 뭐야?)
점차 영역을 넓히는 끈덕한 핑크색 설탕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것은 곰개미였다. 아이는 자신의 새로 산 운동화에 핑크빛 물이 들까 염려되어 조심스레 발을 내렸다. 엄마가 날 잡아먹을 것처럼 혼낼지도 몰라.
우락부락한 괴물로 변한 엄마는 누구도 못 말릴걸. 벌떡대며 두근거리던 심장은 가라앉았고, 찌를 듯한 아픔도 어느새 물러갔다.
아이는 손바닥에 묻은 벌침과 그것에 딸린 내장의 잔해를 툭툭 털어내곤 집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얼마 못가 뒤돌아보니 미련한 곰개미는 아직도 자신을 아래로 아래로 끌고 들어가는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이는 그 미물을 구해줄까 망설이다가 마음을 돌렸다.
(할머니가 아직 집에 계시다면 아이스크림 또 사달라고 할 거야. 무시무시한 벌한테 쏘여서 아이스크림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말하면 허락하시겠지. 만약에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난 퉁퉁 부은 이 손가락을 쳐들어 보여줄 거야. 끔찍이 아팠지만 난 동네방네 떠나가라 울지 않았다고. 앞으로 벌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고 모두에게 말해 줄 거라고.)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달큰한 냄새를 맡은 개미들은 더듬이를 공중으로 한껏 뻗어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자신의 동료가 질러대는 희미한 응급 신호를 듣고 이미 구조대를 출동시켰다.
(나, 나 좀 살려줘. 어서 구해 달라고. 꼬르륵. 위치는 아카시 나무 벌집 아래, 옆에 죽은 일벌이 누워있어.
수, 숨을 더 이상 못 쉬겠어. 꾸륵.)
<꿀벌 아피스의 놀라운 35일> 이란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꿀벌을 '아피스 멜리페라'라고 부른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조그만 꿀벌이 태어나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들은 동족을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행을 하는지,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던 내 손가락을 노렸던 그 벌은 말이죠.
자신이 생을 이대로 마감하리라는 걸 알았음에도 몸을 던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벌도 아닌 평범한 일벌은 자신이 독침을 사용하는 순간, 내장이 터져 나와 더 이상 살지 못한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아마도 그는 자신이 자라난 벌집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애벌레들에게 달콤한 먹이를 주기 위해 결단을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의 절박함이 묻어난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난 어른이 되어서도 벌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벌들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합니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질병 등으로 인해 벌집은 점점 우리 주위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 중 3분의 1은 꿀벌이 꽃가루를 옮겨 수분이 이루어지고 열매가 맺힌 덕분이라 합니다. 만약 벌들이 지구 상에서 사라진다면 우리가 즐겨먹는 제철 과일과 푸른 채소, 견과류 또한 사라질 겁니다. 이런 비극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인간의 입장이 아닌 벌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유독한 살충제나 농약을 남용하면 안 되겠지요.
가까운 숲이나 정원, 옥상 등에 그들이 즐겨 찾는 노란색, 푸른색 그리고 자주색이 감도는 꽃을 심으면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 민들레, 엉겅퀴, 쑥부쟁이도 꿀벌이 좋아하는 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