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에드워드 버거 감독 연출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의 스포를 일부 담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대지는 우리를 보듬어준다. 지어미가 아이를 감싸 안아 젖을 물리는 것처럼.. 세찬 비바람이 불고 이따금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내리치면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한껏 낮춘다. 발 딛고 선 대지에 입맞춤하려 가까이하려 허리를 수그린다. 1917년.. 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를 박차고 나와 적 진지로 돌격하는 그들도 그러했다.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과 우레처럼 터지는 포탄 틈을 내달리는 젊은 병사들은 어떠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 치기 어린 영웅심과 빗나간 애국심으로 자진하여 생지옥에 발을 들였음에 대한 후회와 자책. 그제야 권력욕과 탐욕에 물든 위정자와 감언이설을 일삼는 선동가들에게 철저히 속았구나, 뒤늦게 땅을 치며 발을 돌리려 해도 이미 늦었다. 후퇴 호각이 불리기 이전, 상대 진지에 등을 보이는 순간 아군의 기관총은 명령에 불복종하는 자신을 향해 쏟아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란히 돌격하는 전우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농담을 주고받고 실없는 장난을 치던 동창들이었다. 그들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쓰러진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가까이 터진 포탄에 육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운 좋게 살아남아 노련한 고참이 된 어느 병사는 이제 아무 생각이 없다. 그의 낡은 철모는 스친 탄흔이 가득하다. 오랜 정을 나눈 전우의 목숨이 끊어져도 슬픔은 잠시 뿐.. 끝없는 적개심과 야만성이 판을 치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뇌리를 채운 집념은 오직 하나.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살아서 가족들이 기다리는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필생의 의지. 일념으로 가득한 어린 보병은 오늘도 끊어진 철조망을 뚫고 핏물로 가득한 진창을 달린다. 전진이 불가하면 축축한 대지에 엎드려 자비를 구한다.
제발 한없이 여린, 환난에 처한 양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그는 질척한 땅을 파고들어 그 아래 고개를 파묻는다. 부디 이대로 폭풍우가 지나갔으면, 이것이 한낱 꿈이었으면.. 차라리 날 어서 죽음의 강 저편으로 데려가기를. 피에 물든 이 대지보다는 저 창백한 하늘에 다다르는 것이 영원한 안식에 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그는 용기를 내어 저 위를 바라본다. 밤하늘의 정점에 도달했다가 천천히 떨어지는 붉은 조명탄이 주위를 환히 밝힌다. 대지는 몇 겹의 시신으로 뒤덮였고, 타버린 수목은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가시 돋친 철조망에 몸이 얽혀 두 동강 난 말의 시체가 보인다. 늪지에 잠겨 비통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어느 병사의 손가락은 미동도 않는다. 파울 보이머, 그는 여전히 삶과 죽음의 가느란 경계에 서 있다. 과연 그는 끝내 생존하여 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서부 전선은 일시 고요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태초의 대지처럼..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잔혹한 전쟁의 실상을 고발하고 파멸로 치닫는 인간성을 회복하길 바라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이 떠오른다. 1930년 그리고 1979년. 각각 루이스 마일스톤 & 델버트 만 감독이 연출한 고전 영화를 떠올리는 분도 있으리라. 그와 더불어 유려한 롱테이크 씬으로, 영화 자체를 거대한 참호 전장으로 구현한 샘 레이미 감독의 <1917> 또한 빠질 수 없다.
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로 이름 높은, 독일과 프랑스가 격돌한 '서부 전선'은 인간의 잔학성이 얼마나 극에 달할 수 있는지 매일 새로운 표본과 예시를 제시하는 거대한 실험실과 같았다. 고작 몇백 미터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시로 벌이는 돌격전과 참호 주위 백병전의 연속. 갈수록 위력을 더해가는 포탄과 기관총 연막, 이도 모자라 독가스를 무차별 살포하는 잔인함까지. 와중에 전차라는 새로운 병기도 출현하여 무릇 인간은 대지에 엎드려 자비를 구해도 도저히 살아날 길이 없는 구렁텅이에 자신을 밀어 넣고야 말았다.
독일 태생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악명 높은 이 전선에 대해 여전히 할 말이 많이 남았나 보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또 한 편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귀에 거슬리는 날 선 음향이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자연 그대로를 주시하는 오프닝은 침묵에 빠져 있다. 묵묵히 고요한 천지를 바라보다 점차 긴장도를 높여 인간이 벌이는 전장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잔혹극을 다양한 시점에서 생생히 보여준다. 격렬한 포격전 이후, 절친의 부서진 안경을 손에 쥔 '파울 보이머'의 시선을 따라가면 널브러진 시신이 보인다. 핏물에 잠긴 망자의 눈빛이 유난히 푸르다. 산 자는 감히 그 시선을 마주할 수 없다. 그는 고개를 돌려 흐트러진 친구의 군복 단추를 채워준다. 그는 이후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아끼는 이들의 유품을 간직한 채, 불과 15분의 시간이 흐르면 이 전쟁도 끝을 맺건만 운명은 그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정복욕과 헛된 자존심에 사로잡힌 지휘관은 일장 연설과 함께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돌격 명령을 내리고, 파울 보이머는 말없이 아래를 바라본다. 더 이상 삶에의 미련을 상실한, 맥이 풀린 눈빛으로 대지를 응시한다. 그리운 어미의 온기 어린 품과 같은, 한없는 평온으로 이끌던 저 대지가 이번만큼은.. 날 품어주지 못하겠구나 하는 슬픈 예감. 그는 휴전 시각, 11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회중시계의 분침을 바라본다.
착검한 장총을 손에 쥐고 프랑스군 진지로 다가가는 그는 점점 발걸음의 속도를 높인다. 깊게 파인 적의 참호로 뛰어들었을 때, 그는 알 수 없는 강렬한 빛을 보았고 이내 휩싸였다. 저 따뜻한 대지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두 팔 벌린 품에 안겼다. 그렇게 그는 지옥에서 벗어나 고요한 침묵의 거처로 향했다.
"뭐니 뭐니 해도 군인에게 땅만큼 고마운 존재는 없다. 군인이 오랫동안 땅에 납작 엎드려 있을 때, 포화로 인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얼굴과 수족을 땅에 깊이 파묻을 때 땅은 군인의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이며 어머니가 된다. 군인은 묵묵히 말없이 자신을 보호해 주는 땅에 대고 자신의 두려움과 절규를 하소연한다. 그러면 땅은 그 소리를 들어주면서, 다시 새로 10초 동안 그에게 생명을 주어 전진하게 한다. 그러고는 다시 그를 붙잡는데, 때로는 영원히 그러고 붙잡고 있기도 한다."_<서부 전선 이상 없다> p50,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열린책들
이 영화는 며칠 전 이태원의 비극을 목도한 우리들에게 편한 감상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몇몇 지점들이 있습니다. 영화 중반, 방독면을 섣불리 벗은 탓에 뒤엉켜 죽음을 맞은 어린 학도병들의 시신은 작금의 상황과 맞물려 착잡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카트는 비통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너무 어린애들이잖아. 조만간 독일은 텅 빌 거야." 100년 전의 총탄이 오가는 격전지와 지금 한국의 상황이 분간이 가지를 않습니다. 흥겨운 핼러윈 파티가 벌어지는 가운데 밀려드는 군중에 의해 그리 허무하게 생과 사의 경계를 넘을지.. 어느 누가 예상을 했을지요. 차마 잊히지 않는 세월호의 비극에 이번 사고까지.. 우리는 너무나 많은 어린 생명들을 잃었습니다. 몇몇 라디오의 DJ는 차분한 음성의 아나운서로 바뀌어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전 국민이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인 사고의 희생자를 기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무언가 생략되어 있다는 느낌은 없으신지요. 그들을 애도하는 마음과 함께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이런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 대규모로 운집한 군중들에 비해 낮은 통제 수준과 허술한 사각지대 관리 때문은 아니었는지 냉철하게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상부의 책임자또한 진상을 밝힐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귀책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억울하게 고인이 된 이들도 원통한 마음을 누를 것입니다. 그들과 몸을 맞대고 살을 비비며 간신히 죽음을 면한 이들도 등에 진 멍에를 벗을 수 있겠지요. 산 자들 또한 뼈를 깎는 참회와 인고의 시간이 있어야 이러한 인명 사고가 재차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도와 더불어 전 국가적인 진지한 성찰과 돌아봄 없이는 어느 누구도 무거운 짐을 벗어던질 수 없습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은 말이 없지만, 여전히 우리 곁을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_Edward Berger 감독, 공식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