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독종이었다. 남보다 왜소한 체격으로 몸싸움에 밀려 넘어져도 그는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그는 타고난 슈터이자 킬러이기도 했다. 그가 때때로 슛 난조에 빠지고 어이없는 턴오버를 연발해도 관중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팀 동료들은 그를 위해 스크린을 서고 망설임 없이 패스한다. 그가 언제든 결정적인 순간에 쏘아 올린 장거리 슛이 상대 팀의 숨통을 끊고, 승리를 향한 열망을 짓밟으리라는 걸 익히 알고 있으니까..
전설이 된 언더독, '스테판 커리'. 그의 주요 농구 커리어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애플 TV를 통해 공개되었다.
<Stephen Curry: Underrated>. 제목의 'Underrated'는 평가절하하다, 저평가되다 라는 의미다. 미국 대학 농구 시절부터 NBA 커리어 내내, 그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일부 세간의 평을 표현한 듯하다.
다큐의 도입부는 왕년의 명슈터 '레지 밀러'가 커리의 NBA 드래프트 당시, 취약점을 다룬 스카우팅 리포트를 읽으면서 시작한다.
- NBA 평균 이하의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의 한계, 그로 인해 골밑에서 결정력이 의심된다.
- 너무 말라서 근육이 붙을 여지가 안 보인다. 벌크업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는 NBA 코트에서 밀려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상대 수비수가 피지컬 하게 달려들 때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등등.
레지 밀러는 코웃음을 친다. 이 리포트는 자신의 신인 시절 평가와 그대로 판박이인데.. 하고 비웃으면서 말이다.
NBA의 신인 선수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눈은 정확하다. 치열한 NBA 드래프트를 통과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의 약점으로 꼽힌 리포트의 범주 내에서 플레이하고 고질적인 부상에 허덕이다가 팬들의 관심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 그렇게 코트에서 멀어져 팬들의 추억 속에서, 유튜브의 철 지난 영상에서 흐릿하게 존재하는 수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간다. 커리는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했다. 그는 타고난 재능과 승운에 초인적인 노력이 더해지면 어떤 결과물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데이비슨 대학 농구 시절, 맥킬롭 코치의 조언을 듣는 커리
다큐는 커리의 '데이비슨 대학교' 재학 시절, NCAA 토너먼트의 판도를 뒤흔든 플레이를 되돌아보는데 대부분을 할애한다. 5피트 6인치, 188cm의 신장. 아무리 봐도 80kg을 넘지 않을 만한 깡마른 체격. 백인이라고 오해할 만한, 멀겋고 앳된 얼굴은 그를 만만하다 깔보고 업신여기기에 충분했다. 어떤 관중은 당시의 커리를 보고 '젖내 풀풀 풍기는 애송이'라고 야유했다가 근처에 앉은 그의 가족과 싸움이 날 뻔한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그의 천부적인 볼을 다루는 손끝 감각과 빠른 몸놀림은 피지컬의 한계를 능히 극복할 것처럼 보였다. 3학년 시절, 미국 대학 농구의 강호 미시간, 곤자가와 조지 타운, 위스콘신 대학 등을 연달아 꺾으며 약체로 꼽히던 모교를 40년 만에 NCAA 8강(Elite Eight)까지 올려놓았으니 말이다. 만약 Kansas 대학과의 8강전, 막판 십여 초를 남기고 그가 패스하지 않고 슛을 날려 성공시켰다면 커리의 대학 시절 플레이 영상은 보다 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맹활약하는 커리와 승승장구하는 데이비슨 대학. 그야말로 언더독의 대반란이자 역사에 남을 업셋이 매 라운드 벌어졌다. 그는 싹수부터 남달랐다. 먼 거리에서 겨냥한,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를 놓는 것처럼.. 기습적인 릴리즈로 폭격하는 3점 슛은 40% 이상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변칙적인 드리블과 재빠른 스텝으로 상대 수비를 흐트러뜨린 후 돌파하는 골밑 레이업은 무너지는 몸 밸런스에도 골망을 흔들기 일쑤였다. 당시 데이비슨 대 위스콘신의 경기를 직관한 '르브론 제임스'의 될 성 부른 선수 보는 눈은 틀림이 없었다. 물론 그는 몰랐을 것이다. 어리숙하고 이쁘장한 외모의 단신 가드가 자신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동안의 암살자이자 숙명의 라이벌로 성장하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으리라.
커리의 대학 시절 경기를 직관한 르브론. 그때 그는 향후 NBA 파이널에서 저 애송이와 혈전을 벌일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NBA 입성 이후 커리는 머지않아 피지컬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장시간의 로드 트립과 늘어난 출전 시간, 격렬한 몸싸움과 견제를 견디다 못해 그의 발목은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렸다. 2012년 오른 발목 수술을 마치고 그는 NBA 리그에서 생존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리포트에서 지적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도의 훈련을 날마다 이어갔다. 그가 오프 시즌에 수행하는 훈련 시간과 강도는 전문 트레이너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레벨이 다르다고 한다. 다른 팀 선수들이 그의 훈련 과정에 참여했다가 완주하지 못하고 오바이트를 쏟거나 중도 포기하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전설과 같은 카더라 얘기도 전해진다.
다큐 중간중간에 커리의 대학 시절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교차하여 인서트 형식으로 보여준다. 같은 등 번호 30번이지만 얼핏 스쳐봐도 십 년 전에 비해 몸집이 두 배 이상 커졌다. 헐크에 버금가는 벌크업을 하고 극한의 훈련을 얼마나 견뎌냈는지 뒷모습만 보면 다른 선수라 착각할 정도다. 힘줄이 불거진 팔뚝은 웬만한 선수들 장딴지만 하고 경기 내내 야생마처럼 뛰어다녀도 좀체 지치지를 않는다.
타 팀의 쟁쟁한 수비수들은 현역 선수들 중 가장 수비하기 까다로운 선수로 커리를 꼽는다. 격한 몸싸움을 피하지 않는 데다 공을 쥐고 있지 않을 때에도 쉴 새 없이 빈 공간을 찾아 뛰어다닌다. 덕분에 쿼터 내내, 그의 꼬리를 쫓느라 진이 빠진다고 불만 섞인 고백을 늘어놓곤 한다.
그의 피지컬은 거짓이 없었다. 커리는 자신이 약자이고 언더독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에 결코 포기하지 않고 쉽게 지지 않겠다는, 그의 독기와 열정이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는데 식지 않는 불길을 제공했다. 타고난 약점이 강점으로 바뀌는, 여린 몸의 반전 서사에 감동한 팬들은 그에게 환호하고 열광했다.
무지막지한 중량을 들어올리는 웨이트 훈련..
그의 대기만성 스토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다음 시즌에는 얼마나 더 크고 단단한 그릇을 지닌 커리로 돌아올지.. 연차가 늘어도 한층 노련한 플레이로 젊은 선수들을 요리하고 그들의 기세를 압살 할지 기대가 크다. 4 쿼터 막판 클러치 샷을 적중시키고 돌아서서 담담한 표정으로.. 마우스 피스를 빼문 채 상대 코트에서 당당히 세리머니 댄스를 추는, 숙적 라이벌에게 악몽으로 다가오는 커리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