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아이들이 어느 그림책을 들고 오더니, 알파벳이 중간중간 숨어 있다며 이면지에 그걸 적어서 내게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 책은 가까운 어린이 도서관 신간 모음 책장에서 눈에 띄어 빌려온 책이었다.
그때는 무더운 날씨에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는지라, 알았다고 바쁘다고 나중에 보자고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어젯밤 자정이 다 되어서야 겨우 숨을 돌리고, 소낙비도 잠시 퍼부어 집안의 열기도 한풀 가라앉는 틈을 타 그 책을 펼쳤더니 글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얘들아, 이것 봐. 아빠가 엄청난 비밀을 찾아냈어!" 하고 흔들어 깨울 수도 없고 말이지. 하는 수없이 나 홀로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스탠드를 밝히고, 그 책에 숨은 비밀들을 끝까지 파헤쳤다.
"얘들아, 아빠가 엄청난 거 알아냈거든."
"뭔데 뭔데? 아빠."
난 우스꽝스러운 동물들이 각자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표지가 그려진 책을 내밀며 소리친다.
"어, 이거. 얼마 전에 봤던 책인데.."
"이상한 암호가 숨어 있다고 아빠한테 알려 준 그 책이네."
미안하다. 얘들아. 아빠가 이 책의 숨은 진가를 몰라 봤어. 도서관에 이대로 반납했으면 아마도 너도나도 대출 예약을 하는 바람에 적어도 한두 달은 지나야 손에 쥘 수 있었겠지.
"아빠도 어제 알아낸 건데 말이야. 책을 펼치면 동물들 주변에 알파벳이 숨어 있거든."
"응, 우리도 알아."
"근데 그 글자가 뭘 의미하는지, 도통 모르겠어."
솔과 연이 못내 궁금한 듯, 눈을 연신 깜박인다.
난 대답 대신 이면지와 펜을 가져와 뭔가를 끄적거린다.
"자, 여기 '폴짝폴짝 아기 고양이'를 펼치면.. P, A, O 그리고.."
"여기 수풀 위에 N!"
"음, 찾았다! 보라색 고양이 위에 I!"
"여기 꽃들 사이에 노란 꿀벌도 숨어 있어."
아이들이 신기한 듯 손으로 이곳저곳 가리키며 외친다.
이면지에 찾은 순서대로 적힌 'P, A, O, N, I ', 이들 알파벳은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아이들.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자, 힌트를 줄게. 찾아낸 알파벳으로 단어를 만들어 보는 거야. 이 단어는 모두 5 글자야."
"..."
그래도 모르겠다는 아이들의 답답한 표정.
"결정적인 힌트를 주마. 이 책 맨 뒷장에 동물들의 합주 장면에서 고양이가 연주하는 악기를 찾으면 된다."
아이들은 맨 뒤 페이지를 들추더니,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한목소리로 소리친다.
"아, 알겠다. 피아노. 'PIANO' 야!"
"그러면 우리가 찾아낸 다른 암호도 이런 식으로 악기 이름을 찾으면 되겠네."
"그렇지. 코끼리, 치타, 타조, 쥐, 캥거루, 멧돼지 등등 동물들 주위에 숨은 알파벳을 찾아서 이리저리 순서를 바꾸면.. 짜잔, 각자 연주하는 악기 이름이 나오는 거야."
"역시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네. 아빠."
아이들이 동그란 눈을 치켜뜨며 초롱초롱 빛을 뿜어낸다.
"아빠도 어제 이거 처음 발견하고, (유레카!) 밤늦게까지 파고들면서 끝까지 다 찾아냈단다."
하마터면 잠든 너희들도 깨워서는, 잠결에라도 그 비밀을 알려주고 싶었단다.
"우리도 다 찾아볼 거야."
아이들은 쪼그려 앉아 이면지에 찾아낸 글자들을 적고, 순서를 바꿔가며 악기 이름을 하나씩 알아맞힌다.
"도저히 모르겠다 싶은 건 아빠한테 물어보고.."
"네엥."
책 속에 숨은 수수께끼를 푸는 데 열중하는 아이들
"알아냈어. 우아한 가오리는 트라이앵글(TRIANGLE)이야."
"개굴개굴 개구리는 클라리넷(CLARINET)!"
"대롱대롱 매달린 거미는 줄을 잘 타니 하프(HARP)도 잘 타겠구나. 얘들아."
여기서 숨은 비밀을 다 알려준다면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지요. 아직 이 책의 이름이나 작가 등 자세한 정보를 오픈하지 않았군요.
이미 알아차린 분들도 있겠지만, <다빈치 코드>로 잘 알려진 '댄 브라운' 이 아기자기한 그림책으로 돌아왔습니다. 야생 동물들이 다양한 악기를 합주한다는 내용의 <와일드 심포니, Wild Symphony> 란 책이네요.
전작에서도 수수께끼와 비밀스러운 암호를 여기저기 숨겨 놓더니, 댄 브라운은 동화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기를 십분 더 발휘합니다. 이 책에는 몇 가지 비밀이 더 숨겨져 있습니다. 눈 밝은 아이들은 발 빠르게 여기다! 하고 찾아내겠지만, 페이지 페이지마다 조그마한 귀여운 꿀벌이 예상치 못한 곳에 고개를 내밀고 숨어 있답니다.
이 책을 두 번째 읽을 때는 가능하면 QR 코드를 통해 앱을 설치하면 다양한 볼거리, 들을 거리를 겹으로 얻을 수 있어요. 댄 브라운은 온 세상의 책벌레들에게 글자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자신이 직접 작곡한 음악을 파스텔 톤의 앱에 담아 페이지마다 또는 동물마다 각기 다른 느낌의 리듬과 운율을 전해 줍니다.
이를테면 대왕 고래의 테마 음악은 신비로운 바닷속을 거대한 지느러미로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멀리서 메아리치는 친구들의 울음소리에 느릿느릿 응답하는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아이들과 함께 페이지를 넘기면서 동물들이 연주하는 다양한 음악을 듣다 보면, 최종장에 이르러 모든 동물들이 심포니를 이루어 대합주를 들려줍니다. 종이책에서는 반으로 접힌 지면을 활짝 열어젖히는 효과를 통해 별이 총총히 뜬 밤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장대한 하모니를 들려주는 동물들의 모습을 한데 담았습니다.
앱이 설치된 폰의 카메라를 해당 페이지 위로 비추면, 그에 해당하는 테마의 음악이 연주됩니다.
이 책을 옮긴 역자는 아나운서로 알려진 방송인 '오상진'입니다. "아빠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겨 딸에게 선물한다!"라는 작은 욕심으로 시작된 결과물이라 하네요. 느낌과 표현이 완전히 다른 언어의 글을 라임과 운율이 살아 있는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주변 래퍼 동생들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로 까다로운 작업이었답니다. 번역가의 노고 덕분에 이 책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한 군데 막히거나 걸리는 데 없이, 한 편의 잘 쓰인 동시처럼 술술 내리 읽힙니다.
자신의 세 살배기 딸 '셜록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 책을 펼치고는 나지막이 소곤대다가 때로는 야생마와 치타가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처럼 와그닥 다그닥, 휘달리는 템포의 목소리로 한 자 한 자 짚어주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오랜만에 저도 아이들을 양 옆에 앉히고 이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어야겠습니다. 앱에서 흘러나오는, 와일드한 야생의 기운이 흐르는 음악을 배경 삼아 말이죠. 지휘봉을 탁탁 두드리는 생쥐와 악보를 넘기는 꿀벌의 도움으로 온갖 동물들의 음악제가 피날레를 장식하면 뭔가 아쉬운 마음에 작가의 말을 살피겠지요.
댄 브라운은 역시나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보석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숨겨 놓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책을 펼치면 단숨에 읽고 뒤표지를 덮기보다는, 한두 박자 쉰다는 의미에서 아이들과 함께 작가의 말 아래 기호처럼 새겨 놓은 '25자'의 암호문을 해독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풀이를 모른다면 싱겁게 한 번에 풀릴 가벼운 문제는 결코 아니니, 눈을 크게 치켜뜨고 이면지에 5X5 격자를 그려 한 글자 한 글자 바꾼다는 식으로..
힌트를 간단히 알려드리자면 생쥐와 꿀벌이 가리키는 나뭇가지를 유심히 살피면 아하! 하고 해법이 떠오를 겁니다. 어떤 이유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을 썼는지에 대한 댄 브라운의 철학이 드러나는 문구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독자 분들의 흥미를 떨어뜨릴까, 스포를 삼가는 마음으로 여백으로 남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