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인형을 꼭 안고 있는 아이를 감싸는 듯한, 거센 폭풍으로부터 보호하는 듯한 숲의 인상이 강렬하다.
초록, 연두, 하양에 노랑 등의 화사한 색채가 휘몰아친다. 책 제목은 <허락 없는 외출>.
마지막과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글 없이, 침묵에 빠진 숲의 정경이 격렬하면서도 정적이다. 휘리릭 넘겨보고는 이 책이다 싶어 대출하려 했는데 웬걸.. 누가 예약을 걸어 놓았단다. 알게 모르게 입소문이 퍼진 그림책이구나, 기어코 읽어 봐야겠다 싶어 다음 예약자로 신청했다.
3주가 흘렀다. 손에 쥔 반듯한 그림책. 이전에 읽은 이들이 곱게 넘겨 봤는지, 지저분하고 구겨진 흔적 없이 새 책과 다름없다. 시작은 외롭고 쓸쓸하다. 문 밖을 바라보는 소녀의 낯빛은 생경하다. 방금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보호자의 허락 없이 무작정 문을 열었으리라. 무성한 수풀 속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저벅저벅, 사라락. 기척이 들리고 소근대는 소리도 들린다.
소녀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용기를 낸다. 미지의 세계, 수수께끼가 가득한 곳.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이는 어떤 일을 겪게 될까. 애초에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숲 속에서 아이는 살갑고 보드라운 고양이를 만난다. 수풀에 함께 누워 이리저리 뒹군다. 흰 염소와 토끼도 마주친다. 살아 움직이는 공룡 인형은 동행하는 애착 친구로 곁에 남았다. 숲을 헤매다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만났지만 소녀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휘내리는 꽃잎 비를 우산을 쓰고 피하는 몇몇 아이들도 마주쳤지만, 소녀는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아끼는 애착 공룡을 품에 꼭 안은 채로..
애써 혼자가 된 아이는 초록 숲에 온몸을 맡겼다. 온 세상을 날려버릴 듯한 세찬 광풍이 불어도, 아이는 숲 한가운데 서서 요동치는 나뭇가지와 불그락한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잘 닦인 길은 끊어진 지 오래다. 그득한 산림이 아이와 공룡을 감싼 가운데, 흉포한 폭풍이 잠잠해지길 기다린다. 그들은 각자의 엄마를 떠올린다. 품에 안길 적마다 전해지던 그녀의 따뜻함. 식을 줄 모르는 온기. 자신에게만 머무르던 그녀의 맑은 눈빛을 아로새긴다.
한참 후에야 주위가 고요하다. 영롱하게 하얗게 밝아오는 아침. 저 하늘을 가리던 파릇한 이파리들이 모두 사라질 정도로 지난밤의 고난은 끝이 없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야수의 폭주와 같았다. 그래도 아이는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 두 고목 사이에 해먹을 걸어 동반자와 함께 편히 누웠다. 간밤에 자취를 감췄던, 온갖 공룡들과 동물 친구들이 빼꼼, 눈치를 보다 하나둘 나타난다. 아이 곁으로 모여든다. 아이는 언제든 오솔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밀려드는 불안과 우울이 아이를 휘감더라도, 자신을 반기는 숲의 심장부를 찾아 외출하리라. 그 안에서 가만히 머무를 것이다. 격풍이 물러날 때까지 숨을 고를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위안을 받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 외출을 감행하는 아이
책을 그린 이는 '휘리徽鯉'. '아름다운 잉어'라는 이름 뜻처럼 책 안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작가의 그늘과 여운을 엿볼 수 있다. 페이지마다 흠뻑 묻히고 분방하게 터치한 붓놀림이 생동하는 것 같다. 사방으로 뒤엉킨 수목의 꿈틀거림과 내뻗는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곳곳에 몸을 숨긴 동물들의 사사삭, 스치는 소리도 들린다.
가만히 바라보면 그 안에 빠져들어 방황하다 갇힐 것만 같다. 정처 없이 헤매는 아이의 모습, 격정과 고요를 오가는 숲의 풍광은 그때그때 변하는 저자의 감정이 녹아들었을 것이다. 긴 시간 저자는 그림을 이어 그리고, 책을 완성하면서 격랑에 휘말린 자신의 마음이 잔잔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 자신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거기 서 있는 것 같다. 우리 또한 이 책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는다. 에필로그를 읽고 나서 그대로 책을 덮기보다는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환한 빛이 쏟아지는 문 앞에 선 아이의 경계하는, '허락 없는 외출'을 감행하기 전, 주춤하고 망설이는 장면이 새롭다. 거듭 읽을 때마다 색다른 감정이 전해지고 낯선 것이 가까이 보인다. 이 책이 뿜어내는 무한하고 긍정적인 힘에 이끌려 다시금 페이지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