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도서관 노매드였다

도서관, 줌 수업 그리고 딱지 접기

by 라미루이



아이들 방학 시즌이면 인근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곤 했다.

집과 가까운 관악구 내 도서관과 동작 도서관, 용산 도서관 같은 서울시 구립 도서관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흥미를 끌만한 특색이 있거나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먼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라도 즐겨 찾곤 했다.

이를테면 잘 정돈된 잔디밭이 지천이라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정독 도서관이나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실내와 야외 놀이터가 매력적인 도봉 기적의 도서관, 레벨에 따라 분류된 어린이 영어 서적이 잘 구비된 경기 의왕 도서관 같은 곳 말이다.

여행 중에도 틈틈이 주변 도서관 공지란을 확인해 제천 기적의 도서관,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한라 도서관 등 해당 지역에 알려진 도서관까지 드나들었다.

2019년 홍콩 여행 중에는 발길 닿는 대로 다다른 어느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가 영어와 광둥어로 쓰인 책을 뒤적이고, 독서 삼매경에 빠진 현지인들을 가만히 지켜본 적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각 지역의 숙소, 맛집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들릴만한, 개성 넘치는 도서관이 있느냐도 여행 후보지를 정하는데 중요한 포인트였다.


아이들 눈높이의 내 책장 어느 칸에 세워진 접이식 캘린더에는 각지의 도서관 이름과 몇 시에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간략한 일정이 손글씨로 빈틈없이 채워졌다. 우리 가족은 매일 많으면 두세 곳의 도서관을 차례로 이동하며 나름 알찬 방학 시즌을 보내곤 했다.

기억에 남는 도서관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다.

학교 수업을 통해 배우기 어려운, 간단한 목공 작업을 통해 나무 필통을 만들거나, 기다란 막대 풍선으로 푸들이나 장검, 왕관을 직접 만들어 보는 교육 과정은 안내글이 뜬 지 10분도 안 되어 마감되기 일쑤였다. 가까운 공원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제기차기, 사방 치기를 즐기고 심지어 돌돌 겹쳐서 만 요가 매트 위에 널판을 올려 널뛰기를 배운 적도 있었다. 아이들은 발을 구르는 타이밍이 엇갈려 도통 뛰어오르지 않는 널을 탓하며 답답해했다. 넉넉한 웃음을 짓는 민속놀이 선생님의 시범과 가르침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양쪽이 번갈아 하늘 높이 점프하는 모습을 보고 지들끼리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어느 날은 주위에 널린 신문지 뭉치를 개발새발 찢어 내리며, 그간 쌓인 아이들만의 스트레스를 풀어내기도 했다. 집이나 학교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당장에 서릿발처럼 꽂히는 어른들의 잔소리에 주눅이 들었을 테지만, 그 도서관은 아이들 마음대로 어지럽히고 놀 수 있도록 풀어 주었다.

수북이 쌓이고 엉긴 신문지 면발에 파묻혀 개헤엄을 치고, 데굴데굴 굴러 다니고, 신문지 옷을 만들어 걸쳐보고, 공처럼 뭉쳐 친구들을 향해 던지고, 각자의 머리 위에 고명처럼 끼얹는 아이들의 얼굴은 그날이 인생 최고의 날인 것처럼 한껏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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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모인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면, 굳은 표정의 엄마와 아빠들도 어색한 미소와 함께 숨통이 트였다.

집과 유치원, 학교에서만 지내던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낯가리던 아이들과 자연스레 친해지는 기회는 도서관이 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도서관이 아이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 또한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몸으로 놀아주는 법,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대화하는 법, 학교 폭력에 대처하는 법 등을 전문 멘토에게 배웠다. 도서관은 좋은 부모가 갖춰야 할 경험치를 늘리고, 육아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는 공공 학교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이처럼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사회의 심장,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 구석구석까지 지식과 경험의 자양분을 뿌려 보살피던 도서관이 어느 순간부터 저만치로 멀어졌다.

우리 삶에서 도서관을 멀어지게 한 원흉은 바로 '코로나'.

우리 가족 또한 하루 생활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라이브러리 유목민이자 방랑 가족의 삶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오프라인 모임이 제한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요동치던 코로나의 기세가 잠시 수그러들면 몇몇 도서관에서 발 빠르게 소규모 프로그램을 오픈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폐강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도서관은 장시간 머무르는 스터디, 열람, 오프라인 교육 등을 제한하고 대출과 반납 서비스만 제공하기로, 그 기능을 스스로 축소시켰다.

그렇다면 전국의 수많은 도서관과 이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서로 거리를 둔 채,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가 스스로 물러나길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가?

그건 아니다. 대신에 도서관은 아이들을 다른 통로로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대면이 아닌 비대면을 통해 아이들이 도서관 프로그램을 쉽게 이용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도서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많은 것을 놓쳤을 것이다



최근 도서관과 커뮤니티의 '줌(Zoom)'을 통한 온라인 수업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다.

줌 수업을 통해 홈 피트니스를 하고 방송 댄스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칼림바를 연주하고 동시를 짓고, 이것뿐인가.

종이컵을 이용한 계란빵 만들기와 같은 홈 베이킹을 하고, 멀리 유럽으로 스크린 여행을 떠나고, 양푼이나 도마를 각자 준비해 신나는 난타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오늘도 난 솔과 연의 곁에 앉아 줌 화면을 통해 전문 강사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강사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옛날식 '딱지 접기'이다.

"선생님, 좀 천천히 해 주세요!"

"이다음에 어떻게 접어요?"

"손에 가려서 안 보여요. 선생님."

모자이크 형태로 보이는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딱지를 접어가며 고개를 가웃 거리며 선생님에게 질문을 던지느라 바쁘다.

색종이를 이용한 단면 딱지 접기는 그런대로 따라 할 만했는데, 우유갑을 가위로 잘라 양면 딱지를 접는 부분에서 난이도가 올라간 것이다.

30년이 훌쩍 지나 딱지를 접는 나 또한 처음에는 어리바리 버벅댄다. 야무지게 접히지 않고 접하는 면이 헐렁하게 풀어진다. 선생님이 재생한 양면 딱지 만들기 동영상을 보면서 처음부터 다시 접어본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풍차처럼 두 날개를 접어주고.. 다음은 뒤집어서 똑같이 접어 사이로 마지막 날개를 넣어주면 완성!"

용케 잊지 않은, 하마터면 영영 잊힐 뻔한.. 어린 시절 한때, 덜 여문 손가락 마디마다 속속들이 배긴..

정사각 딱지를 접어가는 어렴풋한 실루엣이 머릿속에 서서히 떠오른다.


어릴 적, 내 아버지가 두꺼운 달력 종이를 뜯어 둘로 나누어 십자로 맞대고는 순서대로 접어주던 그 딱지다.

마지막엔 항상 두툼한 손바닥으로 호떡 누르듯 탁탁 눌러 납작하게 만들어 주곤 했었지.

"이래 널적 대대해야, 땅바닥에 내려놨을 때 가생이가 들뜨지 않아야.. 딱 버티고 넘어가지 않는 법이여."

내 아버지는 자신의 손바닥보다 널찍한, 왕코 딱지를 무심히 접어 아들에게 선물처럼 건네주었다.

그 이후로 신문지를, 박스 골판지를, 엄마가 숨겨둔 월간 잡지 뒤표지를 찢어 접은 딱지를 층층이 쌓아 올리면 대충 3미터는 넘지 않을까.


나 또한 두 딸에게 우유갑으로 두껍고 탄탄한 양면 딱지를 접어 조그만 손에 쥐어준다.

이어 색이 다른 색종이로 접은, 알록달록 귀여운 미니 딱지까지 연달아 접으니 책상 위에 제법 쌓인다.

"우와, 아빠. 우리 딱지 부자 됐어!"

"언니야, 여기 봐봐. 아이들이 벌써부터 딱지 치고 난리가 났어."

줌 화면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 창마다, 자신의 힘으로 또는 부모의 도움으로 접은 딱지를 보이며 자랑하고, 연신 아래로 내리치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어느 아이는 아빠가 접어주었는지 자신의 얼굴을 통으로 가리는, 왕따시만 한 딱지 옆으로 얼굴을 쏙 내밀며 자랑하는 게 아닌가.

"자,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된 거 같으니, 음소거합니다."

선생님의 멘트와 함께 왁자하게 깔리던 아이들의 목소리와 딱지 치는 소리가 일순 사그라들었다.

"딱지 접다가 도저히 모르겠다, 막힌다 하면 아빠한테 물어봐요. 그럼 기꺼이 도와주실 거예요.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 딱지 접기 선생님.

"여러분, 코로나 때문에 놀이터나 공원에서 여럿이 모이는 건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 한둘과 모여 직접 만든 딱지를 칠 수 있다면.. 즐거운 시간이 될 거 같아요. 안 그런가요?"

줌 화면이 갑자기 활기가 돌며 양손을 흔들며 네! 하고 소리치는, 동그란 입 모양을 한 아이들로 넘친다.

"그럼 선생님은 다음 시간에 다시 보기로 하고.. 안녕! 모두 인사합시다."

음소거를 모두 해제했는지 다시금 쏟아지는 아이들의 인사말이 동시다발로 터진다.

솔과 연도 노트북 앞에서 머리를 공손히 수그리며 안녕히 계세요, 수고하셨어요 하고 작별 인사를 한다.

화면을 수놓은 반짝이는 모자이크 조각들이 하나둘, 빛이 꺼지고 주위가 점차 조용해진다.



줌 수업을 통해 딱지 접기를 배우고, 신나게 딱지 치기를 하는 아이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거실에 깔린 요가 매트 위에 마주 앉아 딱지를 치기 바쁘다.

"아빠, 이거 계속 빗나가는데?"

아쉽게 빗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아예 삼천포로 빠지는 수준이다.

"제대로 치려면 아빠처럼 일어나서.. 한쪽 발을 딱지 옆에 대고 겨냥하면서 힘껏 내리쳐야지."

따악! 찰진 소리를 내며 맞부딪힌 딱지들. 아래에 깔린 딱지가 순간, 한쪽 귀퉁이가 들리더니 팽그르 뒤집힌다.

"와아. 이러면 아빠가 이긴 거지요?"

"이렇게 딱지가 뒤집히면 아빠가 이걸 가지는 거야. 이런 식으로 상대가 딱지를 잃을 때까지 번갈아 치는 거지."

아이들은 이제야 딱지 치기의 룰을 이해했다는 듯이 일어나서는 바닥에 놓인 상대의 딱지를 향해 팔을 휘두른다. 갈수록 처음보다는 나아진다. 거리차를 좁히며 다가가는 딱지들의 낙하점.

난 솔과 연이 노는 옆에서 흩어진 색종이 몇 장을 집어서는 딱지를 더 접어 아이들 곁으로 슬쩍 밀어준다.




"딱지 접기 줌 수업 어땠어? 재미있었니?"

"네, 아빠. 딱지란 걸 처음 접어 봤는데.. 나름 재미있네요."

"근데 아빠, 다음 줌 수업은 뭐예요?"

연이 못내 궁금하다는 듯, 두 눈을 반짝 빛내며 묻는다.

"다음 수업이 아마도.."

언뜻 기억이 나지를 않자, 난 서재 한편에 놓인 캘린더를 찾아 드문드문 적힌 수업 일정을 들여다본다.

"난타 공연이네. 각자 두드릴 만한 도구를 준비하라는데?"

"그럼 난 도마를 두드려야지."

"난 그 뭐지? 며칠 전에 초코 브라우니 만들었던 그 그릇으로 할래."

솔은 플라스틱 도마를 두드리고, 연은 믹싱 볼 그러니까 양푼을 뒤집어 신나게 난타하겠단다.


그나마 도서관이 아이들 곁을 멀리 떠나지 않아 다행이다. 방학을 맞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막혔던 숨통이 그나마 트였다고나 할까.

오프라인을 통해 얼굴을 가까이하고 몸을 부딪히며 배우고 노는 것이 베스트이겠지만, 온라인이라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사막처럼 말라가는 아이들의 마음밭에 퍼붓는 단비가 아닐 수 없다.

변이에도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제가 등장하지 않는 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유령처럼 맴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뉴 노멀 시대에 적응하고, 새로운 틀에 맞춰 변화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도서관뿐만 아니라 육아 & 교육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에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보다 늘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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