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초입, 새로 닦인 경전철 역 광장에 들어서니 매끈한 보름달이 휘영청하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폰을 들어 야경 사진을 찍기 바쁘다.
하늘은 며칠 전만 해도 갖은 화풀이와 발작에 지랄발광을 떨더니, 오늘은 감쪽같이 쾌청하다. 모르는 척, 그런 일 없었다는 척, 낯빛을 싹 바꾸었다. 선선한 밤바람이 불어 채 마르지 않은 바닥의 물기를 날려 버린다. 하지만 계곡으로 들어서자 이곳저곳 깊이 파인 생채기투성이다. 어두운 산길을 함부로 걷다가는 움푹한 수렁에 빠져 발목이 꺾이고 무릎이 휘청이기 일쑤다.
계곡 측면의 데크길에 들어서자 한눈에 보기에도 수량은 많이 줄어들었다. 한창 비가 쏟아질 때는 주변 산책로까지 황톳빛 물살이 삼켜버려 성난 바닷물을 방불케 했다. 물이 빠지자 수마가 할퀴고 간 참상이 여실히 드러났다. 장정 대여섯이 달려들어도 꿈쩍도 안 할 듯한, 육중한 암석 여럿이 제 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난데없이 길을 떡하니 막아선, 웅크린 모난 바위가 눈에 띈다. 그중 몇몇은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모서리와 틈을 처발라 땜질한 흔적이 뚜렷함에도, 거센 물살을 버티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 버렸다. 덕분에 가지런히 정비되었던 계곡 양편을 가로지르는 바윗길은 듬성듬성, 이가 빠지고 주저앉아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계류와 산책로를 가르던 목재 울타리는 사나흘 넘게 흘러 내뻗는, 폭발적인 수세水勢를 견디지 못하고 곳곳이 무너졌다. 그야말로 계곡은 격전을 치른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탓에 견고하던 산과 계곡의 지형은 급격히 바뀌었다.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재해로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여전히 기운이 넘치는 물살은 새로이 바뀐 물길을 따라 흐른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송사리 떼들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줄지어 헤엄친다.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생기가 넘친다. 멀리 달빛을 받아 은빛 광채가 번득인다 했더니,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미끈한 등을 내보이며 다가온다. 거대한 바윗돌이 두둥실 날아오른 것처럼, 물살에 떠밀려 순간이동을 하는 난리통을 겪었음에도 이들은 끝내 살아남았다. 가냘프고 보잘것없는 몸집으로 어찌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급류에 휘말리지 않았다. 터전에서 밀려나지 않고 기어코 생존했다. 몇 날 며칠을 퍼부은 폭우에도 불구하고, 큰 상처 없이 살아남은 비결이 궁금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재빠르게 돌 틈으로 숨는다. 아마도 그들은 일족과 무리 지어 헤엄치며 바위틈에 숨거나, 흙바닥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가능한 깊은 은신처에 숨어 물의 흐름에 순응하며 버텼을 것이다. 마침내 세찬 비가 잦아들고 하늘의 노여움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난 그들이 기특하여 오래 바라보았다. 아이들과 이번 주말에 들러 건빵이며 식빵 부스러기 등 일체의 먹이를 아낌없이 제공할 것을, 그들과 약속했다.
자신의 흐름을 거스르고 역행하는 모든 것을 굴복시키고, 온갖 부유물과 불순물을 어딘가로 실어버린, 우레와 같이 쏟아지던 그 물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뒷짐을 지고 물가에 서자 풀벌레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것이, 그간의 난동에 대해 시치미를 뚝 떼고 있음이 분명하다. 거뭇한 물밑에 잠겨 출렁이는 둥근달과 수면 위로 빛나는 윤슬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잔뜩 경계하던 송사리와 잉어들이 다시금 재잘대며 물살을 튕기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관악산 계곡에서 뛰놀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