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뚫린 관악산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니 안내 요원이 두 손으로 엑스자를 그린다.
역시 토요일 오후라 만차인가 싶어 차를 돌리는데 때마침 진갈색 차 한 대가 빠져나온다.
"아빠, 저기 비어 있어."
솔과 연이 텅 빈 주차칸을 가리킨다.
"그래. 가까이에 차를 댈 수 있어 다행이다."
하늘이 도왔다. 만약 빈자리가 없어 가까운 도서관으로 향했어도, 그곳도 만차일 가능성이 높았다.
오늘만큼은 아이들과 서늘한 계곡에 들어 더위에 지친 몸 식히고 오라는 하늘의 도움이렸다.
오후 한 때 거센 소나기를 뿌린다 했는데, 중천에 뜬 태양을 가리는 뭉게구름만 무성하다.
아이들은 한쪽 어깨에 잠자리채를 둘러맸다가 사방팔방 휘두르며 갈지자로 걸어간다.
무심코 지나는 사람을 잠자리채로 가격할까 봐 잠시 걸음을 멈추어 주의를 준다.
몇 걸음 못가 아이들은 걸음걸이가 흐트러지고, 짝짓기를 하려는지 까만 산제비나비 한 쌍이 어울려 왈츠를 추는 모습에 헤에, 하고 바라본다.
솔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가 멀어지며 종잡을 수 없는 춤사위를 그리는 그들을 낚아채려는지 잠자리채를 쥔 손에 힘을 준다. 난 아이의 굳은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건드리면 안 돼. 이만 가자."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아이.
눈이 맞은 나비들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살며시 입술이 스쳤다가는 한쪽이 달아나며 과감한 애정 행각을 펼친다. 네 쌍의 날개가 공중에서 각기 다른 날갯짓으로 펼치는 현란한 군무를 무더위에 지친, 게으른 눈빛으로 쫓기엔 역부족이다. 눈이 부셔 깜박이는 찰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순간이동을 하며 도화지에 까만 점 뚝뚝 흘리듯 움직이는 그들.
사람들 거친 손에 사로잡혀 날개가 으스러져도, 폴짝 뛰어올라 휘두른 산괭이의 날랜 발톱에 몸이 동강 나도, 저공비행하는 까치의 부릿날에 날름 삼켜져도 상관없다 무심한 것처럼..
이대로 생을 마감해도 여한이 없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올라 맨발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의 심정으로 아슬한 사랑을 나누는 나비 커플이 날갯짓을 멈춘다. 허공에 머물러 가녀린 몸을 밀착시킨 그들이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두 눈에 담고는 발길을 옮긴다.
근래 마른땅을 적시는 단비가 내렸다지만, 그간 묵은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계곡 아래로 씻어내리는 흐름이 세차지 않아 여기저기 정체된 물 웅덩이는 혼탁하고, 돌 위에는 미끄덩한 이끼가 덮였다. 하루가 다르게 헤엄칠 영역이 줄어든 송사리 떼는 구석에 몰려 아이들의 서투른 챔질에도 잡히곤 한다. 가끔 보이는 어른 팔뚝만 한 오색 잉어들은 다소 깊은 수중에 은신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여기서 놀자. 얘들아. 잠자리채는 아빠한테 주고.."
목재 데크가 놓이고 그늘막을 설치하기에 편한 계곡 상류로 올라갈수록 가족 단위 피서객들은 늘어날 것이다.
인적이 뜸하고 수심이 얕지 않은 적당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는다. 주말인지라 나들길을 통해 끊임없이 돗자리며 튜브를 든 사람들이 오가고, 멀지 않은 널바위에는 종아리를 드러낸 피서객들이 주저앉아 맨발을 물에 담그곤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빠도 들어와. 물가보다는 이쪽으로 깊이 들어와야 시원해."
"그래. 알았다."
하필이면 모난 바위와 미끈한 이끼 돌을 밟아 기우뚱대고, 두 팔을 허위허위 내젓는 아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솔과 연은 킥킥, 웃음을 터뜨린다.
눈먼 물고기 몇이라도 낚아볼까 싶어 반으로 자른 페트병에 병목을 거꾸로 끼운 간이 통발을 으슥한 길목에 놔둔다. 맨입으로는 기척도 안 할 테니, 미끼 삼아 식빵 서너 조각을 페트병 깊이 넣어 둔다.
"물고기 잡았어, 아빠?"
"저기, 저 아빠는 그물로 열 마리씩 잡고 있어!"
저 아래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드러낸 사내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양 손에 거머쥔 것은 기다란 대나무가 양쪽을 지탱하는, 큼지막한 쌍끌이 그물.
웅덩이 가운데서 물가로 고기 떼를 휘이휘이 몰아, 으슥한 바위틈에 다다라 그물 한쪽으로 구석을 쿡쿡 찔러댄다. 그물을 수면 위로 휙 건져내면 촘촘한 망 위로 흙모래, 수초와 뒤섞인 송사리, 피라미 따위가 퍼덕이며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것이다.
솔과 연은 처음 접하는 그물질이 신기한 듯, 그의 곁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서는 그물 안을 바라본다.
잠시 후, 아이들은 흥밋거리가 사라진 듯 내게 다가온다. 그물을 돌돌 말아 한쪽 어깨에 올린 사내와 두 아이는 득의양양한 걸음으로 사라진 지 오래.
"아빠, 우리 페트병에는 물고기 걸린 거 없을까?"
"오늘은 결과가 신통치 않네. 물고기들이 배가 부른가 봐."
난 텅 빈 페트병을 흔들며 대꾸한다. 숨겨둔 통발 곁으로 몇몇 개구쟁이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휘젓고 다녀서인지, 그로 인해 민물고기들이 바짝 신경이 곤두섰는지, 그 안에 미끼로 놓아둔 식빵 부스러기들은 물에 퉁퉁 불은 채로 한 입 뜯지도 건들지도 않았다. 오늘은 공치는 날, 낚시 운이 따르지 않는 날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피해 요리조리 헤엄치는 물고기 무리에 관심이 멀어지자, 무릎 위까지 잠기는 웅덩이로 천천히 들어간다.
"아이, 시원하다."
"연, 몸에 힘을 빼야지. 그래야 물 위에 둥둥 뜬다고.."
언니가 물 위에 뜨기 위해 뒤로 누웠다가, 자꾸만 허리께가 잠기는 연을 보고 한마디 한다.
나 또한 양팔을 활짝 벌리는 시늉을 하며 크게 소리친다.
"연아, 저 하늘을 보고 누워서.. 두 팔을 벌리고 온 몸에 힘을 빼면 둥실 떠오를 거다."
몸집이 큰 여덟 살 아이가 빠지기엔 턱도 없이 얕은 물이 고여 있건만, 아이는 겁을 먹었는지 물 위에 떠 있다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몸이 기울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목 아래까지 물에 잠기고, 가끔은 뿌연 물을 삼켜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 일 년 넘게 수영을 배운 언니와 손을 맞잡고, 찰랑이는 수면을 베개 삼아 벌러덩 뒤로 눕기를 수차례.
마침내 아이들은 자신을 든든히 받치는 부력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좋다, 언니야."
"머리를 완전히 젖혀야 돼. 귀까지 물에 잠기도록."
물과 한 몸이 되어 그렇게 한참을 머무르다가, 어딘가로 흐르는 힘을 거스르지 않고 유유히 흘러갈 아이들.
부디 그 흘러가는 굽이굽이 길목에 오래 고여 정체되는 지류止流에 가로막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휘몰아치는 급류와 마주치지 않기를. 부디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수직 낙하를 겪지 않기를..
되도록이면 무탈하게 순탄하게, 저 너른 바다에 다다라 순풍 항해를 이어가기를 바라는 건 아빠의 지나친 욕심일까.
멍하니 상념에 빠진 틈에, 옆에 놓인 징검다리를 금발의 덩치 큰 이방인이 성큼 건너는 중이다.
그의 뒤에는 목줄에 매달린 웰시 코기 한 마리가 뒤뚱이는 걸음으로 따른다.
이제 한 걸음만 높이 박차고 오르면 물가를 벗어나 등산로로 올라서는데, 웰시 코기는 부리부리한 눈을 뒤룩거리며 마지막 징검돌에서 건널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사내가 자신의 발아래를 가리키며 "Try it, doggy!" 하며 외치지만, 유난히 다리 짧고 겁도 많은 코기는 미동도 않고 바윗돌에 우두커니 서 있다.
주인이 연신 박수를 치며 애견의 기를 북돋우자, 주춤하던 그 코기는 힘껏 앞발을 차고 올라 건너편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네 발 모두 바닥에 착지하기에는 한참을 모자란 도약이었다.
"풍덩!"
계곡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그쪽을 바라본다.
앞 발만 디딤돌에 걸치고 허우적대는 코기는 발버둥을 치다, 그만 물속에 빠져버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에 뛰어들어 코기를 품에 안고 올라오는 이국의 사내.
가뜩이나 커다란 웰시 코기의 휘둥그레진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사내의 품에서 풀려나 지면에 내려온 코기는 털에 묻은 물기를 탈탈 털어낼 새도 없이, 바삐 그곳을 벗어나는 주인을 따라 걷기에 바쁘다.
벌어진 컴퍼스의 양 끝처럼 쭉쭉 뻗은 두 다리로 넓은 보폭을 찍는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가느라, 껑충 뛰다시피 걸어가는 코기. 그럼에도 코기는 고개를 옆으로 쳐들어 주인의 표정을 홀깃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치 엄마, 아빠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어린아이가 주눅이 든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성이 난 부모의 걸음을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는 것처럼.. 그들의 눈치를 보는 과거의 내 모습이 겹치는 건 단지 우연일까.
"아빠, 으슬으슬 몸이 떨려요."
"이제 집에 가면 안 될까. 온몸이 다 젖어서 추워."
솔과 연이 물에서 나와 흠뻑 젖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얘들아, 실컷 놀았니? 이제 집에 가자!"
아이들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발자욱을 시멘 바닥에 연이어 남기며 앞장서 달려간다.
난 미처 챙기지 못한 잠자리채 한 쌍을 어깨에 메고 뒤따른다.
희푸른 하늘 한복판을 지나던 태양은 급격한 하강 곡선을 그리며 서쪽으로 가라앉는다. 제법 선선한 산바람이 골짜기의 완만한 굴곡을 타고 흘러내린다. 결코 식지 않고 멈추지 않을 활화산처럼, 강렬한 폭염을 토해내던 올여름이 이렇게 막바지로 치달아 가을로 넘어가는 것이리라.
작년과 달리 비가 질리도록 퍼붓지 않는, 가물고 성마른 사막과 같은 한여름을 올해 우리는 겪어냈다.
덕분에 이따금 내리는 빗물을 그러모아 마른 목을 축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무더위를 참고 견디어 끝내 탐스런 결실을 맺은.. 새빨간 수박과 송알송알 청포도, 자두와 분홍빛 복숭아 같은 여름 과실이 유난히 야물지고, 아삭하고 더 달달할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가면 잘 익은, 무른 복숭아를 골라 한 입 크게 깨물어 맛보리라.
복숭아를 베어 문 아이들 입가로 주룩 흐르는 달디 단 물이 턱 끝에 알알이 맺혔다가,
크하하 깔깔 웃어대는 바람에 발 끝으로 뚝뚝 떨어지겠지.
저만치 멀어진 아이들은 산이 떠나가라 재잘대고, 뒤따르는 아빠는 입꼬리가 늘어져라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