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일격을 가하다

영원한 에이스는 이 바닥에 없다

by 라미루이




어릴 적 딱지 치기를 떠올리면 정공법이 아닌, 변칙적인 기술을 쓰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 그 아이도 그랬다. 그 아이 이름이 외자였지. 아마도..


골목 어귀에서 또래 아이들과 온종일 딱지를 치다 보면 그날따라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무패를 자랑하는 딱지들이 등장하곤 했으니.. 레슬링 경기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빠떼루' 자세를 취한 레슬러를, 위에서 껴안은 상대가 아무리 용을 써도 좀처럼 뒤집히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면 되겠다.

아이들은 자신의 두툼한 필승 딱지를 출격시켜 땅이 파여라 동네가 떠나가라, 팡팡 아무리 세게 내리쳐도 그 딱지만큼은 미동도 않는 것이다. 마치 딱지 밑면에 강력 본드를 발라 바닥에 착 붙여놓은 것처럼..

물론 땅바닥과 그 딱지 사이에는 흙먼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격에 실패해 벌칙으로 깔린 딱지들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은 다른 딱지들은 안중에 없이 패배를 모르는 '그 딱지'만을 목표물로 삼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가 커 보이는, 눈매가 서글서글한 사내아이 '성'이 자신의 딱지에 호호 입김을 불며 앞으로 나섰다. 이미 지면에 놓인 그 딱지를 두고 네댓 아이가 두 바퀴쯤을 돌며 연신 내리친 후였다.

그는 곁에 따로 모아놓은 그의 딱지 무더기를 휘적이다가, 삼양 라면 박스를 해체하여 접은 양면 딱지를 골랐다. 지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조로 활용하는, 만약 그 일격이 실패하더라도 바닥에 누운 그 아이를 쉬이 뒤집을 딱지는 이 동네에 몇 없을 것이다. 그는 그 아이를 특별히 '에이스'라 불렀다.

그는 자신이 고른 에이스를 양 손바닥 사이에 두고 박수를 몇 번 치더니, 뭔가를 중얼거렸다.

누가 들을까 봐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저 딱지는 내 거야. 나 이외에 누구도 저걸 가져갈 수 없어." 이 정도 의미였으리라.

성은 지면과 밀착한 목표 딱지를 잠시 노려보다가, 한쪽 발을 내밀어 그 딱지의 귀퉁이에 닿을 듯 말 듯 아슬하게 붙였다. 시선을 한껏 내리깔아 수비 딱지의 윗면이 아닌 지면과 닿은 아래를 바라본다.

그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낮추어 지면과 수평하게 딱지의 옆 날을 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프로 야구로 치면 임창용 투수의 폼과 비슷한 '사이드암' 딱지 치기라고나 할까.

"성! 비껴 치기.. 한 번만 쓸 수 있는 거 알지?"

"저게 통할까? 땅이 울퉁불퉁하지 않아서 틈도 없어."

바닥에 옆머리를 대다시피 가로누워 수비 딱지를 살핀 어느 아이가 말한다.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쳐봐야 알겠지."

"나도 아까 비껴 치려다 말았는데.."

아이들은 성이 타깃의 아랫면을 노려 옆으로 팔을 뻗어 파고드는 준비 동작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한 마디씩 한다. 그들 동네에서는 그렇게 비스듬히 딱지를 치는 것을 '비껴 치기'라고 불렀다.

다른 동네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수평 치기? 깎아 치기? 다마 치기? 넘겨 치기 아니면 벼락 치기도 그럴싸한데..

성은 허리를 굽혀 몇 번의 준비 동작을 취하다가, 수비 딱지의 한 귀퉁이가 살짝 들려 바닥과 틈이 벌어진 것을 알아챘다.

(저 귀를 노리면 어떻게든 넘어갈 거야. 틀림없어.)

그는 살짝 몸을 틀어 노리는 포인트를 바꾼다. 자연스레 디딤발의 위치도 타격 포인트의 반대쪽으로 옮겨졌다.

"빨리 좀 쳐. 뭐하냐?"

"시간제한 들어간다. 앞으로 3초!"

"삼, 이.."

친구들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성은 숨을 고르다 일순 참았다. 곧이어 에이스를 쥔 왼팔을 길게 뻗어 목표물의 모서리를 향해 지면과 평행한 궤적을 그리며 꽂아 넣었다.

"타악!"

소리만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그리 경쾌한 타격음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감질나게 하던, 어깨가 빠져라 몸 달게 하던 그 딱지는 아래를 파고든 에이스의 반동에 밀려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건들건들 몸을 곧추세운 딱지가 옆에 바짝 갖다 댄 성의 옆 발에 걸려 반대쪽으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뭐야.. 이거."

"야, 동작 그만! 너 움직이면 가만 안 둬."

아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성의 발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난리가 났다.

스냅을 써서 좀 더 세게 때려야 했을까? 타점이 살짝 빗나가 맨 땅에 꽂힌 걸까?

아니면 단순히 끗발 운이 따르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회심의 일격을 날린 성의 한쪽 발등 위에는 아슬아슬하게 딱지가 올려져 있었다.

다행히 에이스의 공격은 성공한 듯, 수비 딱지는 방금 전과 다른 아랫면을 보이는 게 아닌가.

"이거 성공한 거 아니야? 어쨌든 뒤집힌 거잖아?"

모든 동작을 일시에 멈춘 성이 모두에게 호소하는 것처럼 크게 말한다.

"그건 아니지. 딱지가 뒤집혀서 땅에 닿아야 이기는 거지, 안 그래?"

바닥에 놓인 수비 딱지의 임자인 듯한 아이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 그럼, 운동화 위에 딱지가 놓이면 무효야."

"저게 바닥에 닿았을 때도 뒤집혀 있을지 어떻게 아냐고."

"무슨 억지를 그리 부리냐? 그러면 내가 발을 빼볼까? 그럼 알겠네."

성은 슬그머니 발을 흔들어 올려진 딱지를 아래로 떨어뜨리려 한다.

"야, 그런 게 어딨어? 그럼 네가 이기는 거 아냐?"

그의 발등에 놓인 딱지를 누군가 부리나케 낚아채더니 저만치 달아난다. 아이는 큰 걸음으로 몇 발짝 달아나다가 뒤돌아보며 소리친다.

"오늘은 이걸로 쫑이야. 끝이라고.. 내일 보자!"

"야아, 너어! 그 딱지 내놔. 내가 이긴 거야. 그건 내 거라고.."

단단히 뿔이 난 성의 목소리가 온 동네에 메아리친다.




아이들은 주섬주섬 자신의 딱지들을 챙겨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녹슨 철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는 엄마의 뒷모습이 언뜻 보인다.

"얘들아, 어여 씻고 밥 먹어!"

"네에."

밥상에 머리를 파묻고 숟가락질을 하는 아이들은 후딱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밝아오길 고대한다.

내일도 아이들은 하나둘씩 골목길 전봇대 아래 모여서는 친구들이 나타나길 기다릴 것이다.

그 사이를 못 참고 퍼뜩 떠올랐다는 듯이, 신발 앞코에 걸려 승부가 나지 않은, 누군가의 비껴 치기를 떠올리며 깔깔 웃을지도 모른다.


영원한 강자, 기어코 패하지 않는 '에이스'는 이 바닥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의 잘 나가던 무적 딱지는 오늘은 운이 다하여 첫 방에 맥없이 뒤집힐 수도 있다.

과연 오늘의 골목길 딱지 대전에서 절대 지지 않을 행운의 딱지는 어느 아이의 손에 쥐어질지..

아이들은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자신의 딱지들을 뒤적이다 마침내 하나를 고른다.

공들여 접은 그 아이에게 입맞춤을 하고는 힘차게 바닥에 놓인 상대를 향해 내리친다.

따악! 소리와 동시에 서로의 희비가 교차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아이들의 다툼과 별안간 터지는 웃음소리는 끊이지를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딱지를 잃는다 해도 오래 슬퍼하거나,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는 않는다.

어차피 손바닥만한 이 동네 딱지판을 영영 뜨지 않는 한, 덕지덕지 손때 묻은 저 딱지는 친구들의 품을 돌고 돌아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딱지 치기의 세계에서는 니들 딱지도 내 것이고, 내 딱지 또한 모두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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