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 밖으로 나돌면 도처에 도랑이며 논두렁, 야산에 풀숲이 천지였다. 틈만 나면 또래 친구들과 오후 늦게까지 개울가에서 더위를 식히며 개구리나 송사리를 잡곤 했다. 드넓은 수풀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는 메뚜기며 여치에 사마귀, 방아깨비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 시간 남짓 쪼그려 앉아 잡으면 채집통 한가득, 푸드덕대는 곤충들을 채우는데 문제가 없었다. 늦여름이면 유유히 저공비행을 하는 고추잠자리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여기저기서 매섭게 휘두르는 잠자리채 안에 걸려드는 짱아 잠자리가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그들을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리고 가냘픈, 울룩불룩 생동하는 몸통을 부여잡고는 가쁜 호흡을 느꼈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팔딱대는 활기에 놓칠세라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잠자리채 안에 조심스레 손을 넣어 망에 걸린 잠자리를 살살 달래어 꺼낸다. 그 손질이 세심하지 못해 사납고 거칠면, 쉽사리 연약한 날개가 뜯기거나 부서지기 일쑤였다. 사삭거리는 투명한 날개 두 쌍을 겹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는 미세하게 떨리는 움직임을 느끼곤 했다.
몇몇 짓궂은 아이들은 메뚜기의 뒷다리를 하나씩 떼어내고는 사마귀 앞에 놓아주기도 했다. 사마귀는 당랑권 자세로 잠시 지켜보다 비틀대고 버둥대는 먹이를 움켜쥐곤 천천히 포식했다. 누구는 잠자리의 파르르 한 날개를 끊어서 몸통만 남기고는 이래도 날아오르나 보자 하고 놔주기도 했다. 가느란 잠자리는 그대로 땅에 처박혀 꿈틀대다 숨이 끊어졌다. 모름지기 세상모르고 철없는 아이들이 잔인한 법이다. 미미한 생물이라고 생이 끊어지는 고통이 결코 가볍지는 않을 텐데 이를 헤아릴 재간이 없으니..
무릇 생명의 존엄을 알지 못하는, 현생에 무의미한 살생을 더하면 후에 얼마나 큰 후회와 죄과가 따르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백지상태의 아이들. 그들의 손에 묻은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나 또한 필사의 노력으로 살고자 버둥치는 무수한 미물微物을 괴롭히고, 종내 죽음을 안긴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엄연히 살아 숨 쉬는, 가녀린 생물의 생사를 우리가 가르고 좌우할 수 있다는, 월권행위가 은근한 쾌락을 선사한다. 설사 그것이 혐오스러운 죄악일지라도, 어렴풋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악과惡果를 가까이했고 따먹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니.. 설익은 우리는 치명적인 그 맛에 중독되고 말았다.
난 기껏 잡은 개구리를 놓아주기가 아쉬워 사이다 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 중 대다수는 채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대야 위로 둥둥 떠올라 사체로 발견되곤 했다. 집 앞마당에 묻힌, 봉긋 솟은 개구리들의 무덤이 늘어갈 즈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어느 날은 사로잡은, 내 주먹 만한 덩치의 개구리 한 마리를 어찌할까 고민했다. 그 개구리는 병 아래 납죽 엎드려 있다가, 당시 절친이 살아있나 보자 하고 나무젓가락으로 냅다 찌르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었다. 아마도 왼쪽 눈이었을 것이다. 반대쪽 눈만 껌벅이는 그를 마당 한 켠의 단풍목 아래 방생했다. 잠시 어리둥절해 웅크리고 있다가, 불퉁한 정원석 아래 그늘로 기어가 몸을 숨기던 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살뜰히 먹이를 주거나 보살피지 않았음에도 그는 옛집 화단 어딘가에서 끝내 살아남았다. 홀로임에도 외눈이라 거동이 불편했을 텐데도 기어코 생존했다. 비가 내릴 때마다 그 애꾸눈 개구리가 개골개골, 꾸르륵하고 난 버젓이 살아있소, 하고 울어대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그가 은신할 만한 돌 틈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랜턴으로 샅샅이 비추기도 했지만 좀체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지하 깊숙이, 아무도 찾지 못할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그는 요란한 울음소리로 자신의 무사함을 알렸다. 수년 후 우리 가족이 다른 거처를 찾아 이사할 때까지 그는 살아남아 그 집에 머물렀다.
수십 년이 흘렀다. 창동의 그 양옥집을 다시 찾았을 때는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풀어놓은 메뚜기와 귀뚜라미, 여치가 개체수를 늘리던 무성한 연초록 잔디는 사라졌다. 붉은 단풍과 노랑 은행잎이 휘날리던 정원은 온데간데없었다. 집터를 모조리 허물고 뒤엎어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반을 다지고는 껑충한 빌라를 지어 올렸다. 정든 옛 집을 지키던 터줏대감, 외눈박이 개구리는 하수구 어딘가로 숨어들어 용케 생존했을까. 아니면 그 집이 철거되고 자신의 은거지가 파괴될 때, 마지막을 예감하고는 질긴 생의 의지를 꺾고 최후를 맞은 게 아닐는지. 부릅뜬 외눈마저 허망히 감은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상상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관악산으로 오르는 밤길을 걷는데 저 앞에서 골골, 목젖 부푸는 소리가 들린다. 수상쩍어 발밑을 살폈다. 자그마한 청개구리 한 마리가 대로변을 가로막고는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맨다. 곁에 떨어진 솔가지를 들어 녀석의 꼬랑지를 살살 간지럽히니 놀라서는 길가로 폴짝 뛰어오른다. 눈치 없는 그 녀석, 두어 번 귀찮게 하니 계곡으로 향하는 축축한 오솔길에 들어섰다. 이만하면 무지막지하게 구르는 차바퀴나 사정없이 짓이기는 인간의 발짝으로부터 안전하겠다 싶어 잔가지를 떨구었다. 이번엔 방향을 바르게 잡았는지, 산책로에서 멀어지는 녀석의 기척에 안심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이로써 무지한 어린 시절, 사로잡은 미물에게 수없이 저지른 고문과 살상의 대가로 가슴을 짓누르는, 막대한 업보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다. 혹여나 사후에 마주치는 관대한 심판자가 내게 변론할 기회를 준다면, 난 이날의 선행을 뻔뻔스레 입에 담을지도 모르겠다.
검붉은 안개에 휩싸인 그곳에서 개골! 하고 날 맞이하는, 구면의 외눈 개구리를 만난다면.. 난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자빠질 테지. 다음 생은 어쩌면 그의 지난한 삶을 겪을지도 모르리라. 함부로 발설하고 싶지 않지만 왠지 그런 예감이 드는 걸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