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탁한 강을 홀로 건너가오

Satyajit Ray 감독, <아푸 3부작>을 보고..

by 라미루이





1.

어느 죽음은 단지,

밥공기 하나 놋수저 한 술 덜기 위해 맞이한다

잇 뿌리째 몽당 빠지고 민둥한 잇몸 골짝만 솟은,

피골 들러붙은 노파는 곡기 끊어

밥상머리 스스로 물러났다

지상에 바짝 엎드린,

텅 빈 그녀의 육신에서 쏟아지는 피눈물,

깡마른 대지 아래 묻힌 백발의 풀뿌리를 적시고

어둠을 틈타 유유히 흐르는

저 강을 건넌다


어떤 죽음은

사방이 물에 잠긴 폐허를 유산으로 남긴다

한 맺힌 저주에서 풀려나려, 그 굴레를 벗어나려

늪지에 한 발짝 담그면

어린 친누나 엉긴 머리칼

허연 발목아리 휘감아 늘어지고,

한발 늦게 당도한 주인 잃은 사리(sari) 자락,

몰래 훔친 누군가의 반짝이는 수정 목걸이

수면 위로 떠올라 하염없이 흐느끼네


누군가의 죽음은

혼탁한 강물을 뚫고 솟구치는 은빛 비늘의 반짝임에

눈 시려 무심히 고개 돌리는 찰나,

고향집 앞 호수 위로 점점이

피어오르는 반딧불이 깜박임

어지러워 눈길 피하고

뒤늦게 보고파 주저앉는 새,

불현듯 찾아오기도 한다


최악의 죽음은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소중한 이, 곁에 물듯 주저하다고 마는 것

외마디 꿈결처럼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미처 애도할 틈도 없이

깨진 유리창 너머 어른대는 짙은 그림자

이른 아침, 침대 밖으로 늘어진 손가락 끝,

사뿐 내려앉은 붉은 나비

나른한 날갯짓 두어 번 저어대고

마지못해 흘기는 가느란 눈길 떨구고

그대로 영영, 날아가 버렸네


어느새 다가온 늦여름,

마지막 울음을 뱉는 매미의 버둥대는 몸뚱이

뒤집혀 맨바닥에 뒹굴고,

때 이른 낙엽이 발 끝에 차이는 것처럼

불의의 죽음이 수차례 휩쓸면

그는 온전히 혼자가 된다



2.

힌두교의 불타는 성지

흘러드는 망자의 안식처

베나레스(Benares)의 열기를 머금은 갠지스 강,

돌계단 가트(ghat)에 오른 사내는 두 손을 모으고

저 탁한 강물에 온 몸을 내맡긴다

깊이 나아갈수록, 내딛는 그의 발 밑으로

긴 소용돌이를 그리며 물이 빠지고,

말라붙은 밑바닥이 드러나니

검게 타고 그을린 해골 더미, 뼈로 넘치는 강을 이루었네

한가운데 치솟은,

무수한 죽음으로 쌓아 올린 제단 위,

최후의 산 제물로 바친 헐벗은 사내아이

들쳐 메어 어깨 위 목말을 태운

그의 이름은 아푸(Apu)


그들이 강가를 벗어나자

산 자와 죽은 자 딱히 가리지 않는

갠지스의 싯누런 탁류는 다시 차오르고,

시꺼먼 뼛조각이 뒤엉킨 거대한 봉분은

물아래로 서서히 잠긴다

홀로 남은 아버지와 아들,

아푸와 카잘은

고요한 죽음의 강을 건넌 자들이 멀리 손짓하는,

어깨에 짊어진 그들만의 세상 저편으로

손 맞잡고 나란히 걸어간다






사리(sari): 인도 여성들이 두르는 전통 의상

베나레스(Benares): 바라나시(Varanasi)의 옛 지명

가트(ghat): 강가와 맞닿은 계단이나 비탈면, 힌두교도들이 경전을 읊고 예배를 드리는 곳


사티야지트 레이 감독의 <아푸 3부작> 중 인상적인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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