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새지 않을 밤의 시간이 다가온다

코우로시 아하리 감독의 <The Night>를 보고..

by 라미루이

이 글은 코우로시 아하리(Kourosh Ahari) 감독, <The Night>의 스포를 일부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한낮의 무더위는 아직 충분히 식지 않았다.

투명한 유리를 뚫고 내리 꽂히는 직사광선을 일부라도 막기 위해 블라인드를 길게 내린다.

방의 조도를 최대한 낮추고, 몸 따라 더워진 마음이라도 서늘하게 식힐까 싶어 공포 영화를 한 편 고른다.

이질적이고 생소한 분위기에 둘러싸이면 그 싸늘함이 배가 될까 싶어, 귀에 익지 않은 페르시아 어가 오가는 영화를 일부러 택한다. 이란 출신의 젊은 감독, 코우로시 아하리(Kourosh Ahari)의 작품, <The Night>를 스크린에 걸어 본다.


초반 10 여분, 집안을 벗어나지 않는 가족들 간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불륜이나 치정이 얽힌 평범한 소동극을 예상했다면 이어질 경로에서 한참을 벗어난 오산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침대에 누운 젖먹이의 시선에 스치는 검은 실루엣이 순간 사라지면, 당신은 긴장이 풀어져 흐트러진 앉은 자세를 얼른 바로잡을 테니.

술 한잔 걸친 주인공 '바박'은 뒤를 붙잡는 친구의 집에 머물지를 않고, 굳이 한밤중에 아내와 어린 아기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고난의 길을 택한다. 하필이면 극심한 치통이 엄습해 일그러지는 낯빛으로 핸들을 돌리는 바박.

술잔이 오가고 가벼운 수다가 뒤섞인 소란을 뒤로하고, 가로등이 줄지어 비추는 구불구불한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까만 차의 보닛이 반짝인다. 샤이닝, 사냥꾼의 밤 등등. 선배 격인 여느 고전 영화에서 빌려왔을 법한,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듯한 몽환적인 오프닝이 흐른다.

차량의 네비가 먹통이 되고 난데없이 검은 고양이가 그들의 차 아래로 뛰어들면서, 한 가족은 어찌할 수 없이 불면에 시달리는 하룻밤이라는 시간을 자청하여 맞아들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들이 묵는 호텔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밤새도록 선사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데..

과연 바박과 그의 가족은 누군가의 한 맺힌 저주에서 풀려나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고, 그 호텔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대략적인 줄거리를 듣고 보면, 변호사를 대동하고 뉴욕의 '돌핀 호텔'을 찾은 존 쿠삭의 젊은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만류하는 데도 자진하여 <1408>호 룸의 굳게 잠긴 문을 열고 밤을 지새운 '마이크 엔슬린'과 저주받은 방과의 한바탕 사투가 떠오른다.

흘러간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미카엘 하프스트롬독의 <1408> 이 공포 영화 중 수작에 꼽힐 만하다고 평하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접하고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스토리 전개와 세심하지 못한 디테일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자식을 호시탐탐 노리는 저 세상의 악령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허탈함과 무기력함 사이사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섬뜩하면서도 불쾌한 장면들이 날카로운 사운드 효과, 날렵한 카메라 전환과 함께 펼쳐지면, 당신은 간담이 서늘해진 나머지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자신도 모르게 스크린에서 눈길을 돌릴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 장면들..

밤늦게 홀로 운전하는 차 안에서 백미러를 흘깃 바라봤더니 얼굴 없는 누군가가 뒷좌석에 앉아 당신을 뚫어지게 노려본다던지.

거무스름한 그가 앙상한 손을 내밀어 운전석에 앉은 당신의 뒷머리를 잡아당기고, 목덜미를 간지럽힌다면 당신은 어쩌겠는가.

모처럼 떠난 여행 첫날, 어느 이름 모를 호텔 4층에 마련된 스위트 룸에 짐을 풀었는데..

겨우 잠을 청했더니 자꾸만 누군가가 노크를 하고는 깔깔거리며 도망가는 바람에 잠을 설친다던지.

견디다 못해 짓궂은 이의 장난인 줄 알고 와락 방문을 열었더니, 웬 흑 고양이가 연초록 눈동자를 빛내며 당신의 방 틈새로 들어오려 한다면..

새벽녘 어렴풋한 기척을 느껴 깼더니 창문 앞 뒷짐 지고 선, 이미 돌아가신 고인이 당신을 가만히 바라본다던지.

퍼뜩 잠이 달아나 온 방의 불을 켜고 어슬렁대는데, 낯선 방의 커다란 거울에 비친 자신이 왠지 생경하다 싶을 때.

그 거울에 비친 당신이 그날따라 다르게 움직일 것만 같은 오싹한 예감에 사로잡히고 싶다면..

당신의 숨통을 바짝 조여 오는, 영영 새지 않을 밤의 시간과 오로지 체크인만 가능한 닫힌 공간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겪어내고 싶다면..



공포 영화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작품, 코우로시 아하리 감독의 <The night>를 당신만이 홀로 마주하는 스크린에 올리면 된다.

한낮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오늘 같은 날,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영화를 통해 이국의 땅, 이란의 서늘한 밤에 잠시나마 빠져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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