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돋은 뿔, 저 하늘을 찌르고..

<잘리카투, Jallikattu>를 보고..

by 라미루이





1.

한 칸 쇠우리에 갇힌 물소 한 마리

거칠게 풀어헤친 꼬리채를 흔들자

흩어진 똥파리떼, 뒤룩 불거진 눈자위 들러붙는다

녀석이 눈을 껌벅이자 겹겹이 가린 산 너머,

자줏빛 동창 열어젖히는 새벽 놀

온전히 큼직한 눈동자에 담긴다


불끈한 백정의 두 손 휘감아 내리찍은 오함마질

뒷발매질로 간신히 피한 그 물소,

돋은 뿔 매감은 밧줄 떨쳐내고는 달아난다

한참을 쫓기던 녀석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새,

누군가 휘어진 뿔을 거머쥐고 등짝에 올라탄다.

검은 소는 펄쩍 튀어 오르며 좌충우돌,

온몸을 비틀고 뒤흔들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구는 자,

한껏 자세를 낮춰 돌진하는 뿔의 맹렬함

녀석의 이마에 돋아난 뿔은

비릿한 피맛에 취한 지 오래

입맛을 다시는 저 장창 한 쌍에 받히는 순간,

그는 복부와 등을 꿰뚫려

녀석과 한 몸이 되는 운명을 피치 못하리라



2.

피투성이 물소를 에워싼 성난 군중들은

불티가 흐날리는 횃불을 녀석에게 던지고

끝을 뾰족하게 깎은 죽창을 겨냥하고

동앗줄로 엮은 올가미를 목덜미에 걸어본다

견디다 못한 녀석은 사람들을 밀치고 짓밟고 튕기다가

두 발이 헛꼬이며 진탕을 구르내린다

하야호르르! 휘이이익, 음메에..

한 치 앞이 안 보이던 밀림을 헤매다

어둑한 하늘이 엿보이는 평지로 나오자마자

수직의 절벽 끝에서 겨우 앞발을 멈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도를 거머쥔 사내가 녀석의 급소를 덮치고

뒤따르는 자들은 사내의 머리 끄덩이를 휘어잡는다

악이 받칠 대로 받친, 눈깔이 허옇게 까뒤집힌

그들이 물소의 꽁무니를 쫓는지,

녀석을 좇는 자들을 뒤쫓아 궁지로 떠미는지

이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

모두가 각각의 킬러이자 경쟁자요, 추격자에 철천지 원수로다

마른 홰에 불 붙인 자들, 무딘 날도끼에 외낫에 대삽에

심지어 마체테까지 손에 든 피칠갑을 두른 자들

악다구니 퍼부으며 서로에게 달려드니

더 높이, 위로 오르는 자는 발아래 더벅머리를 누르 밟고

더 깊숙이, 안으로 파고드는 자는 상대의 귓불을 물어뜯고

눈두덩이와 아가리를 손으로 헤집는다

한 놈이 기어오르면 다른 이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희비가 엇갈린 일생일사, 각자도생의 생생한 목격이로다

밑바닥에 깔린 물소는 온갖 악귀들이 뒤엉킨

외투를 걸친 채, 비대한 거상巨像 무소 빚어져

뻘밭에 뉘인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위태위태한 절벽 위로 인간 군상들이 층층이 쌓아 올린

쌍뿔의 원형 거탑, 어스름한 눈을 가로뜨는

저 하늘을 나란히 가리킨다


모두를 누르고 꼭대기에 오른 최후의 한 사람,

기어코 무소의 뿔탑 한 끝 다다라 손을 뻗어

지상으로 늘어뜨린 천상의 속눈썹 한 올

힘껏 잡아당겼다

우르르르, 와드드득!

온 천지를 뒤흔드는 소떼의 발굽 소리와 어울려

붉게 물든 하늘 복판의 눈자위가 쩍 갈라지며

눈가에 진득이 고인 혈루血淚, 저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린다 철철 쏟아진다

수평한 상극의 대립이 아닌

위아래 뒤집힌 하극상 웬 말이더냐!

사무치는 회한과 괘씸함 극에 달한 치욕감에

자진하여 뱃가죽 가 와락 쏟아낸,

울화 치민 목구녕 손가락 쑤셔 넣어 토악질한

어느 천상제일 무사의 피 끓는 속엣것처럼

미처 밖을 틀어막고 안으로 주워 담을 새도 없이..



3.

지상으로 곧장 떨어지는, 검붉은 화염의 폭포수

고스란히 뒤집어쓴 거대한 무소의 형상은

불타고 녹아내리고 허물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가쁜 숨을 내쉬는

거뭇한 물소 한 마리, 우뚝 서서는

자신을 내리보는 휘영청한 보름달

부리한 눈동자 가득 담아내고 있다

그의 치솟은 두 뿔 위로

줄지어 원을 그리는 흑까마귀 떼,

절벽 아래로 급강하한다





Lijo Jose Pellissery 감독의 작품 <잘리카투, Jallikattu>의 주요 이미지를 모티프로 쓴 글입니다.

원작의 줄거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 이래저래 평하기보다는, 영상 전체에 뚝뚝 흐르는 강렬하고 원시적인, 날것의 이미지가 과연 텍스트에서도 철철 묻어날 수 있는지 시도하는데 의의를 두었습니다.

영상에 근접하여 성공했는지 아니면 처절히 실패했는지는 브런치 작가 분들이 판단해 주셨으면 합니다. ^^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광기가 넘치는 '잘리카투 축제'의 현장을 떠올리며 글을 썼습니다.


잘리카투: 인도 남부 타밀 나두 지역의 수확 축제인 '퐁갈'에서 집단으로 치러지는 전통 경기입니다. 잔뜩 성난 황소를 참가자들 무리에 풀어놓고는 녀석의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뿔에 매단 깃발을 먼저 낚아채거나,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 등의 경기가 펼쳐진다 하네요. 이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이 짓밟히고, 광분한 군중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등 살벌한 광경이 연출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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