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영화에 KO 당했다

Sian Heder 감독의 <코다 CODA>를 보고..

by 라미루이

* 이 글은 <CODA>의 스포를 담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세번 강의 물줄기가 브리스틀 해협으로 흘러드는 길목에 위치한 항구 도시, 글로스터(Gloucester).

가족들을 도와 고된 뱃일을 마치고는 곧장 자전거를 타고 고등학교로 들어서는 앳된 아이.

그녀가 걸친 회녹색 후드티에 눈길이 간다.

보스턴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하키팀 'Bruins'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고된 노동의 상흔이 남았는지 로고의 대부분이 닳고 닳아 뭉개져 있다. 얼핏 보기에도 후줄근한 작업복의 티가 역력하다. 고개 숙인 그녀가 학교 복도를 걸어가자 짓궂은 아이들은 코를 막고 수군댄다.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네. 저 '코다' 같으니.."

그렇다. 그녀는 'CODA'로 불린다. Child of Deaf Adults. 부모와 친오빠가 청각 장애를 가졌지만 그녀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태어나자마자 그녀의 운명은 정해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단절된 가족들과 외부 사이의 유일한 소통 채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엄마는 그녀가 차라리 귀가 멀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래야 완벽한 한 가족이 될 테니까. 평생토록 그들 곁을 떠나지 못할 테니까..



그녀의 이름은 '루비'. 보석처럼 빛나는 재능을 알아본 합창반의 지도 선생이 적극 밀어준다.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어때?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며 '손짓말'로 답한다. 수어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표정과 손짓을 통해 그녀의 마음이 짐작된다.

"노래를 부르면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요. 마음속 어딘가 응어리지고 틀막힌 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요. 나 자신이 허공으로 날아오른 나풀나풀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가는, 결국 먼지가 되어 어딘가로 사라지죠. 그것뿐이에요."

선생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넌 더 큰 세상의 빛을 봐야 해.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 같은 곳 말이야. 내가 널 그곳으로 인도하마. 난 가슴을 치는 강렬한 타격에 뒤로 휘청할 뻔했다. 현학적인 미사여구로 가득한 백 마디 말보다 단순하게 이은 손짓 만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감복시키다니..


동시에 기시감이 든다. 어디서 봤더라. <빌리 엘리어트>의 후반부에 비슷한 크기의 울림을 지닌 소년의 자기 고백이 떠오른다.

"넌 춤을 추면 기분이 어떠니?" 드문드문 이어진 빌리의 대답도 루비의 수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였을 것이다. 다만 그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하얀 재가 된 상태에서 담담한 고백을 통해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루비는 자신의 진면목이 가리인 영화 초반에 짧은 수어 만으로 우리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침묵 속에 내지르는 이 영화의 강펀치를 몇 번 더 견뎌야 할 것이다. 명심하라!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허무하게 녹다운당하지 않으려면, 스크린을 휘젓는 온갖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시선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배경 음악과 일체의 대사 없이, 고요가 지속될 때 우리는 더 깊이 오래도록 바라보아야 한다. 잠시나마 청각 장애를 지닌 그들의 처지가 되어 끌어올린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이다.

영화 초반부를 장악하는 강력한 한 방



영화는 루비가 평소에 좋아하는 미소년 마일스와의 러브 라인을 적절히 배치해 우리의 시선을 끈다.

그녀의 집에서 듀엣 송을 연습하는데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뒤돌아 서로 등을 맞댄 채 노래를 부르는 커플이라니.. 비슷한 류의 성장 영화에서 시도되지 않은, 로맨틱하면서 참신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비장애인들과 소수의 장애 가족에 속한 그녀와의 대립과 갈등을 예고하는 장면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일스는 대낮부터 괴성을 내뱉는 금슬 좋은 루비의 부모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최악은 그들의 난처한 비밀을 타인에게 발설하는 배신자로 전락한다는 것. 그는 우리 엄마, 아빠는 각방 쓴 지 오래됐어. 하고 비장애인 가족이 루비의 가족들에 비해 애정이 결핍된, 각박한 면이 오히려 많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마주 보면서 몸짓을 주고받을 의지는 부족해 보인다.

루비가 성장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그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날개를 꺾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꺾이지 않는 의지와 곁에 머무르는 가족들의 아낌없는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영화는 예상을 깨고 방심한 내 옆구리에 펀치를 꽂는다. 가족들은 그녀가 집을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녀가 자신의 본모습을 찾기보다는 생계를 잇기 위해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장애인 가족들은 그녀의 무한한 희생을 요구한다.

"내가 청각 장애인이길 바란 적 있어?" 참다못한 그녀가 엄마에게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엄마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가슴을 후벼 파는 질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침착하게 수화로 답한다. "난 네가 태어났을 때.. 우리와 같이 청력에 이상이 있길 바랐어." 왜지? 이유가 뭐야?

"우리가 공감 못할까 봐 걱정됐거든. 엄마와 할머니처럼.. 우리는 안 친해." 그래, 엄마는 비장애인 딸을 키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루비의 말을 귀담아 들어줄 능력이 전무하니까,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할까 봐.. 우리는 네가 꿈으로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허물지 몰라. 장애를 가진 그들의 어둑한 그늘이 해맑은 그녀를 완전히 덮을까 봐 걱정이 된 것이다. 엄마는 솔직히 몸짓한다.

"난 네게 나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 차라리 네가 우리와 같았으면, 귀가 안 들렸으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그들은 "지금도 충분히 나쁜 엄마거든?" 하고 농지거리를 던진다. 모녀는 가벼이 속을 터놓고 마음을 주고받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점점 눈시울이 붉어진다.

대화의 말미, 난 네가 자신의 길을 찾아서 행복해. 엄마와 다르게 말이야. 하고 모녀가 부둥켜안는 장면에서 우리는 웃음기를 거두어 그들과 함께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엄마가 루비에게 쌓아둔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다면 생경하고 당황스러운 지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루비가 마일스와 듀엣 송 <You're All I Need to Get By>를 부르는 도중, 음향이 별안간 사라진다. 감독이 사전에 의도한, 준비된 음향 사고이다.

카메라는 귀가 들리지 않는 루비 부모와 주위 풍경을 번갈아 지켜본다. 박자를 따라 고개를 주억거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가 하면 감격해 흘린 눈물을 닦는 다른 부모들의 반응을 두리번대며 관찰하는 그들. 그들은 비장애인들의 반응을 주시하며 딸의 사랑스러운 노래를 대리 감상하고 간접 체험하는 것이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이 순간만이라도 그들이 되어 보라고, 그들의 심정을 오롯이 느끼라고. 우리에게 다수의 비장애인이 소수의 처지로 격변하는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먹먹하고 답답하다, 외딴섬에 갇혀 철저히 소외된 느낌. 티끌만 한 소리라도 들렸으면.. 루비의 목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다 원할 때 즈음,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진다. 눈치를 보다 뒤늦게 일어서 박수를 치는 그들은 그제야 표정이 환해진다. 감독이 선물한 평생 한 번뿐일, 진귀한 경험은 이렇게 끝이 났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




아빠는 미칠 듯이 답답하다. 딸의 노래, 그녀의 목소리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 그는 루비에게 다가간다.

"아빠에게 그 노래 불러줄래? 부탁해.." 사려 깊은 청에 딸은 미소 짓는다. 낡은 트럭 짐칸에 나란히 앉은 그들. 딸은 오직 아빠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그는 육성의 떨림을 느끼기 위해 그녀의 목울대에 양손을 갖다 댄다. 아마도 그는 그녀의 노래 아니 목소리를 처음으로 전해 들었으리라. 온몸으로 밀려드는 소리의 전율에 그는 눈을 감았다. 밤바다 위로 총총히 뜬 별을 올려보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스카는 바로 이 장면에 무릎을 치고 탄복했음에 틀림없다. 루비의 아빠, 프랭크 로시 역을 맡은 'Troy Kotsur' 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당신이 가져가세요!를 외쳤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장면의 임팩트는 상상 이상이고, 다음 이어질 클라이맥스로 건너기 위한 결정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가족들은 그녀를 바깥세상에 내보내기로, 그들의 품에서 떠나보내기로.. 힘든 결정을 내린다.


가져가세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션 헤이더 감독은 우리를 KO 시키기 위해 핵펀치를 날릴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가드를 내린 무방비 상태에서 마음을 비우고 쓰러질 준비만 하면 된다. 버클리 음대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 당일 공연장.

조니 미첼이 노래한 <Both Sides Now>의 시적인 가사가 흐르고, 2층 객석에는 가족들이 나란히 앉아 루비를 지켜본다. 벽지의 어촌에 묻힐 뻔했던 무명의 소녀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어렴풋이 보았을 것이다. 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의 어두운 면이 아닌, 희망이 가득한 찬란한 면이 드러남을.

또한 깨달았으리라. 이 세상에는 양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우리네 인생마저 그렇지. 그녀를 바라보는 장애인 가족들 또한 대다수가 깨닫고 알아차리지 못한, 밝고 긍정적인 이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서, 속 마음을 헤아리고자 소통하고자 건네는 소녀의 진실한 손짓과 몸짓은 맑은 목소리에 무한한 힘을 실었다.

치달은 절정에 날아온 회심의 일격에 난 속절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94회 오스카의 아성 또한 그렇게 무너졌다. 저명한 평론가 및 영화 매거진이 꼽은 유력한 작품상 후보들도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타고났거나 후천적으로 상처를 입은, 상대적 소수자의 시선을 대변하고 그들의 다른 면을 조명하려 애쓴 한 편 영화의 극적인 역전승이다. 이제 당신이 링에 오를 차례다.

<CODA>를 미처 보지 못한 모든 분들이여! 영화가 전하는 울림과 희열을 고스란히 느끼며 KO 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마지막 장면에 휘몰아치는 카타르시스. 온전히 느껴보라!



* 코다 (CODA, 2021) 메인 예고편 - 한글 자막>>

https://youtu.be/EN3hO0imY5c?si=PuO6rHOIzNwOh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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