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으로 남은 그들의 조난사

론 하워드 감독의 <Thirteen Lives>를 보고..

by 라미루이

이 글은 <Thirteen Lives>의 스포를 일부 담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몇 년 전, 태국의 다수 아이들이 침수된 동굴에 갇혔다가 구출되었다는 뉴스를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고립과 사투, 구출의 지난한 과정이 생략되고, 제한된 정보만이 제공되어 대중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동안 이런저런 후일담이 무성하다가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론 하워드 감독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26번째 연출작 <Thirteen Lives>를 통해 그때 상황을 생생히 재현하고, 숨은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2018년 6월, 태국 유소년 축구 선수 12명과 코치가 훈련을 마친 후 북부 치앙라이의 '탐 루앙 동굴'로 들어갔다. 자주 들리는 곳은 아니었으니 아마도 휴식을 겸한 관광과 탐험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동굴은 태국에서 가장 긴 동굴로 뱀처럼 구불구불한 미로를 닮은 험난한 지형으로 악명이 높다. 때마침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져 지하수가 차오르는 바람에 그들은 동굴 깊은 모처에 갇히는 조난자 신세가 되고 마는데..


시꺼먼 입을 벌린 채 그들을 맞이하는 동굴의 전경



이들을 살리기 위해 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자들의 불굴의 사투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줄기차게 흘러드는 빗물을 막기 위해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댐을 건설하고, 대나무를 다듬어 파이프를 놓아 산 아래 논밭으로 물길을 우회시킨다. 주변의 농민들은 지하에 갇힌 어린 생명들이 더 소중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의 피땀 어린 농작물이 수장되어 사라지는 희생을 기꺼이 감수했다.

내로라하는 엘리트 잠수사들과 태국의 해군 특수 부대원들은 세찬 물길이 넘나드는 지하 험로를 산소통 두어 개를 짊어매고 전진한다. 알루미늄 산소통이 모난 암석에 걸리고 긁혀 찌걱이는 소음이 섬뜩하다. 그들은 사방의 종유석과 기암괴석이 둔탁한 이빨을 드러낸, 예측불허의 비좁은 통로에서 6시간 이상 버티며 실종자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결국 동굴 입구에서 2.5km 떨어진 공간에서 생존자들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지만, 기쁨과 흥분은 잠시 뿐이다. 섣부른 낙관은 금물. 프로 잠수부들도 힘겨워하는 구불한 수로를 뚫고 이들을 무사히 데려올 방법이 막막하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끝에 짜낸 묘안이 태국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실행되는 과정이 영화 후반부를 이끄는 동력이자 전체 서사의 핵심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비인간적이라 평가받을 수 있는 구출 작전. 어느 잠수부는 이를 두고 Crazy, 미친 작전이다! 고 표현했다. 다가오는 우기에 다급해진 태국 정부는 결단을 내리고, 실제 구조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전권을 실어주었다. 이후 결과에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고, 비밀리에 구조를 진행하는 한편 미디어를 적절히 통제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13인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여든 생면부지의 잠수부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심연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가시밭과 같은 동굴 내부를 가느란 유도줄에 의지하여 앞길을 개척했다. 온몸을 비틀어 헤집으며 공간을 확보하고, 험한 물살을 헤쳐 나아갔다. 자신의 몸을 꼼짝하기도 힘든, 폐소 공포증이 도지는 협소한 공간. 질긴 잠수복과 생살이 찢기는 고통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 보상이 따르지 않음에도, 사지에 고립된 어린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에 머나먼 이국의 동굴에 모였다. 온갖 고초에도 불구하고 막다른 암벽과 수중 사이에 갇힌 아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모범을 보인 젊은 코치의 조언에 따라 명상과 기도, 축구 훈련 시 구호를 외치며 평정심을 유지했다는 조난자들. 결국 그들은 기적적인 생환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Thirteen Lives>.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뼈 아픈 기억이 되살아남을 어찌할 수 없었다. 바닷속 거대한 철선에 갇힌 304명의 아이들.

2014년 4월의 세월호 침몰 사고. 우리도 사전에 위험 요소를 통제하여 여객선의 적재 중량을 관리하고, 해경의 역할을 감독하는 책임 있는 정부가 존재했다면.. 사고 발생 시 신속한 의사 결정을 통해 현장의 구조 당사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현명한 리더가 존재했다면 그 결과는 비극으로 치닫지 않았으리라. 넋 놓고 우왕좌왕한 채로 쫓기다시피, 낙담과 절망의 끝에 다다르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할, 소중한 어린 생명들이 육지로 돌아와 우리 곁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생존자로 기록되어 우리의 슬픔과 죄책감을 잠시나마 덜어 주고, 희망의 새싹을 틔우며 자라났을 것이다.



전혀 상반된 결과로 재조명되는 양국의 조난사를 돌아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아려옴을 막을 수 없었다.




* 탐 루앙 동굴 소개(구글 지도)>>

https://goo.gl/maps/WnQLe7pDB1h22K7YA


탐루앙 동굴에 갇힌 13명의 조난자들이 갇힌 위치. 입구로부터 2.5 km 거리, 무려 6시간 가까이 잠수를 해야 도달할 수 있다.




* <Thirteen Lives> 공식 예고편>>

https://youtu.be/R068Si4eb3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