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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공부가 제일로 어렵고 고단하니..

담낭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by 라미루이


2022년 11월 초..







- 숨 크게 들이마시고 참으세요.

난 침상에 누워 후웁, 소리를 내며 배를 볼록하게 만들었다.

- 음, 담낭에 돌이 보이네요. 사이즈는 가장 큰 게 7mm.. 개수는 서넛. 용종은 작아서 보이지도 않아요.

초음파 측정기를 손에 쥔 의사가 내 우측 복부를 깊이 누르며 흑백 스크린을 바라본다.

- 담낭에 돌이면.. 담석인가요?

난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머릿속은 여럿 질문으로 가득 찼지만 뒤죽박죽 엉켜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물티슈를 몇 장 뽑아 내 배꼽 위에 덮어주며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 이걸로 닦으시고요. 검진 결과는 2주 후에 나올 겁니다.

- 담석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거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상체를 일으킨 난 다음 차례를 부르려는 그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날 쳐다보지도 않은 채 형식적인 답으로 얼버무렸다.

- 6개월마다 내원해서 추적 관찰하시면 됩니다.






이번에 담낭이란 말인가. 결국 담낭이란 말이지. 긴 세월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네가 버티다 못해 드디어 녹슬어 마모되는구나. 최근에 저녁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고 답답한 체기가 있더니 네가 보내는 경고였어. 그간 별다른 통증이 없었는데 갑자기 오른 옆구리가 결리고 그 안에 모난 돌 여럿이 구르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마음이 무너지면 멀쩡하던 몸도 순식간에 병이 든다. 난 심호흡을 하며 평정심을 찾으려 했다.

사실 담낭은 언제든 탈이 나겠구나 하고 만일을 대비하는 고질적인 아픈 손가락이었다. 검진 결과 다른 장기에 이상이 있었다면 그 충격이 더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만성 위염은 호전이 되었고 역류성 식도염은 흔적도 안 보인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다소 높았던 간 수치도 정상이었다. 식단 관리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이런저런 영양제도 챙겨 먹었기에 건강 상태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65kg까지 홀쭉하게 빠졌던 체중이 74kg까지 늘었다. 이번 건강 검진은 아무 이상 없이 지나가겠지? 은근한 기대와 근거 없는 믿음, 자신감으로 홀가분하게 건강 검진을 했건만.. 오른쪽 갈비뼈 아래 숨은, 간 아래 자리 잡은 담낭이란 조그만 장기가 제대로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건강 검진을 마치고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1년 전 코로나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퇴원한 그날 못지않게 멘털이 와르르 무너졌다. 좋은 연緣이라고 에두르고 포장할 수는 없겠다. 솔직히 악연이지. 지금껏 끈질기게 날 붙잡고 옭아맨, 어쩌면 대를 이어 발목을 잡아끄는 담낭, 녀석과의 우여곡절이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속이 말썽이었다. 어머니의 따끈한 젖을 한사코 거부했고, 억지로 삼켰다 해도 토하거나 설사를 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어머니는 젖이 퉁퉁 불어 몸살을 앓았다. 오르는 열과 통증에 밤잠을 못 이루고 고생을 하셨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속이 유난히 약한 손주를 위해 강판에 사과를 갈아 먹이곤 했다. 그러면 울고 보채던 아이가 진정되고 속이 편해졌다. 지금도 담낭 부위가 뻐근하고 불편하면 진경/진통제보다 사과를 먼저 찾는다. 사과는 과도하게 긴장한 담낭을 진정시키고 담즙이 원활하게 배출되도록 돕는 명약이다.

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한창 시절, 또래 누구는 물만 먹어도 체중이 불어나는데 난 삼겹살 10인분을 한 끼에 해치워도 다음날 몸무게가 그대로였다. 오히려 체중이 줄어드는 기현상도 겪었다. 살이 찌지 않으니 아무리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았다. 매일 수없이 푸시업을 하고 철봉에 매달려도 남들만큼 골격이 탄탄해지지 않았다. 소화력이 평균 이하인 듯싶었다. 설, 추석 같은 명절날 큰집에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은 날이면 오래지 않아 우당탕탕, 위장이 꼬이는 걸 견디다 못해 화장실로 달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회사 생활하면서 가까운 화장실을 찾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뻣뻣해지고 소화 근육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몸소 체험하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요주의 음식들이 몇 가지 있는데 공통적인 건 지방이 과다하거나, 담낭을 자극하는 음식이라는 거다. 달달한 초콜릿, 고지방 우유는 과식하면 저녁 무렵부터 극심한 편두통을 겪을 수 있다. 진한 커피나 탄산음료도 마찬가지다. 활동하는 주간에는 버틸 만 한데 밤에 눕기만 하면 한쪽 관자놀이부터 목덜미, 어깨와 등 라인이 굳으면서 잠을 설치게 했다. 값비싼 참치 회는 내 식도와 위장이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먹은 후 30분 이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급박한 상황을 어김없이 연출하곤 했다. 남들은 잘 소화시키는 지방질의 코코넛과 오메가 3 영양제는 삼키고 나면 명치가 답답하고 숨쉬기 어려운 극한의 멀미 증상을 겪게 했다. 차멀미는 참다못해 오바이트라도 할 수 있지, 이건 꺽꺽 트림도 시원히 나오지 않고 우웩 토할 수도 없다. 아닌 밤중에 뜀박질을 하고 강력한 소화제를 먹어도, 체기가 있는 상태로 명치 어딘가에 묵직하게 걸려 쉬이 내려가지 않는다. 밤새 뒤척이고 날이 밝아야 겨우 트림이 터지고 속이 뚫렸다.


담낭 기능에 문제가 생겨 담즙 순환이 잘되지 않으면 여러 이상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복통에 소화 불량, 비정상적인 배변뿐만 아니라 독소 배출이 되지 않아 때로는 황달, 알레르기와 아토피를 유발하기까지 한다. 우루사나 씨앤유 같은 이담제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양질의 담즙이 흘러넘치는데 난 고카페인 음료를 원샷 한 듯한 각성 효과를 맛보곤 했다. 그동안 고질적인 식곤증, 만성 피로와 수족 냉증을 겪곤 했는데 이런 증상들이 개선되었다. 혹자는 담낭이 약해지면 매사에 겁이 많아지고 주저하는 마음이 앞선다고 한다. 만성 담낭염에 시달린 누군가는 마음이 날이 서고 예민해진다고 하더라. 쓸개 즉 담낭이 강인한 자는 왕성한 혈기를 참다못해 혈혈단신, 적진으로 돌격하는 용맹함을 뽐낸다고 한다. 예로부터 담膽이 세다, 그 자는 담력膽力이 만만치 않아 처럼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을 뜻할 때 '쓸개 담膽'을 즐겨 쓰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30여 년이 지나서야 날 괴롭힌 여러 증상들이 담낭, 그 녀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 건강 검진에서 담낭에 용종 몇 개가 보이더니 황달에 영향을 끼치는 빌리루빈 수치가 정상을 웃돌았다. 아무래도 담낭 이 녀석이 담즙을 저장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어딘가 막혔거나, 이완/수축하여 시원하게 배출하는 힘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짙어졌다. 돌이켜 보면 외할아버지는 일찍이 담석으로 담낭을 제거했고, 막내 이모님 또한 십 년 넘게 담석으로 고생하다 최근에 담낭 제거술을 받았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없는 게, 후대로 태어난 첫째 솔 또한 어릴 적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태국 여행에서 처음 맛본 꼭지를 날린 코코넛 과즙을 마시고 체한 것이라든지, 군것질을 많이 하면 두통으로 괴로워한다든지 하는..

- 얼마나 괴로울까? 쓸데없는 걸 아빠를 닮아 고생하는구나.

난 아이의 등을 내리 쓸어주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주며 혀를 끌끌 찼다.


아무래도 외가 쪽이 담낭이 취약한 그런 피가 흐르지 않나 싶다. 나보다 엄마 체질을 닮은 둘째 연은 다행히 그런 증상이 없다. 솔에게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종종 들려주며 최대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골 아픈 '그 녀석'을 달래 가며 공생하는 비법을 알려주는 중이다. 부디 후대에는 튼튼하면서 유연한 담낭을 지니고 태어나길, 질긴 악연을 끊어내길 바랄 뿐이다.


어찌했든 내 오른쪽 옆구리와 등짝을 쿡쿡 쑤시고 찌르는 담낭 이 녀석도 어지간히 오래 버텼다. 40년 넘게 걸쭉한 지방을 녹이고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는 쓰디쓴 담즙을 가득 담아 수시로 뿜어내며 고생한 녀석이 아닌가. 솔직히 미운 마음도 앞선다. 십 년 넘게 술도 가까이하지 않고 담배도 안 피우건만.. 그나마 용종이 사라지는가 했더니 이번엔 단단한 돌을 만들어 뒤통수를 씨게 때릴 줄이야.

악연에 가까운, 평생 즐거움보다는 씁쓸한 고통을 안겨준 녀석이다. 하지만 끝내 이별한다면 녀석의 부재에 기뻐하기보다는 동고동락한 그를 영영 품을 수 없다는 상실감에 허전하고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출산의 고통에 버금가는, 담석으로 인한 산통을 겪지 않은 게 녀석이 베푼 자비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밤중에 응급실에 실려가는 극한의 고통을 선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날이 녹이 슬고 스러지는 육신이지만 녀석을 잘 보듬고 달래 가며 오래도록 곁에 두었으면 한다. 현재는 담낭 내 콜레스테롤 밀도를 높이는 위험 요인을 없애는, 쉽게 말하자면 적게 먹고 보다 많이 몸을 움직이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이전에 처방받은, 담석을 용해하고 담낭 기능을 돕는 이담제를 복용 중이다. 담석 사이즈가 줄어들고 극적으로 사라지는 효과가 있을지는 운에 맡겨 보기로 한다.

참고로 코로나 감염 이후 위장 건강을 위해 즐겨 복용했던 DGL(감초) 영양제는 장복할 경우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여 담석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어 끊었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과다할 경우 담낭과 담관의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아져 담석이 생기기 쉽다. 임신기의 여성 또는 호르몬제를 장기 복용한 갱년기 여성이 담석이 잘 생기는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또한 감초는 위산 분비를 저하시키는데 이 경우 담즙 배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 외에 혈압을 높이는 작용을 하여 장복 및 과용을 권하고 싶지 않다.





갈수록 바깥 세상사에 치여서 그런가. 원체 우매하고 미련해서 그런지. 마땅히 긴밀해야 할 내 몸 일부분 배우고 익히는데 실로 고단하기 그지없다. 온갖 만사 다 겪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희미하게 깨우치니 다른 이들도 이럴까 싶다.

허나 신체적으로 완전무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에.. 모두들 어딘가 무르고 허약한 육신 어딘가를 보듬고 다독이며 거듭 견디고.. 어느 새벽녘 잠 못 이루다 헛헛한 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나마 위안거리로 삼고 싶다.


담낭이 개운치 않아 고생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 짧은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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