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유행 이후로 가까운 대중목욕탕에 가본 적이 없다. 코로나의 위세가 잠잠해진 작년 이후에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워터파크 갈 때, 내부의 욕탕에 들른 것이 전부인 듯하다. 이전에 종종 들리던 집 근처의 목욕탕은 코로나로 인한 매출 타격을 제대로 받았는지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어려서부터 뜨거운 온탕이나 펄펄 끓는 한증막에 들어가는 걸 즐기지는 않았다. 목욕탕을 가까이하는 이들은 사우나에 오래 누워있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오히려 개운하다고 하지만 난 아니었다. 명치 위아래가 꽉 막힌 듯, 열기가 차올라 호흡이 곤란한 느낌에 10분을 못 버티고 뛰쳐나오기 일쑤였으니까. 어릴 때 끔찍하게 싫었던 것이 엄마 따라, 7살 이후에는 아빠 따라 목욕탕에 가는 그 시간이었다. 7살 이전까지 어린 날 데리고 여탕에 출입하던 엄마는 내 등짝이며 목덜미, 허벅지가 벌게지도록 때를 밀었다. 내가 쓰라리고 아프다고 발악을 하고 울어 젖혀도 엄마의 거친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는 옆에 앉은 어느 할머니가 살살 좀 애를 다루라고, 때 밀다가 애 잡겠다고 말린 적도 있었다. 엄마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더 세게, 여린 내 등을 밀었다. 그 할머니가 한 마디만 더 했다가는 이태리 때수건을 집어던지고, 무슨 상관이냐며 삿대질을 하고 대판 싸웠을지도 모르리라. 여탕에서 알몸으로 악다구니를 주고받는 어느 엄마와 할머니라니.. 아마도 옆에선 내가 온몸이 불그름한 채로, 어쩔 줄 몰라 엉엉 울고 있었겠지. 당시 우리 엄마라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그런 최악의 상황이다. 그녀는 젊을 적 얻은, 끔찍한 지병으로 인해 허물어지는 심신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더구나 남편은 밤낮으로 자신을 타박하고 온갖 폭력을 휘둘렀으니, 그녀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엄마는 우울하고 신경질 적이거나, 무기력한 일상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몰랐다. 동네 목욕탕에 쪼그려 앉아 내 등어리 살갗에 피가 맺히도록 때를 밀면서 그녀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힌 걸까. 표정이 그려지지 않는, 다소 지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의 남편, 그러니까 내 아빠는 암으로 고생하다 말년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창 때는 몸 여기저기 시퍼런 멍 자욱이 아물 날이 없었던 우리 엄마는 지금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잘 살고 있다. 어릴 적에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현재 엄마와 아빠의 뒤바뀐 처지다.
욕탕과 아열대 정원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어느 목욕탕 전경
각설하고..
물과 친한 다른 아이들은 냉탕에서 물장구도 치고, 개헤엄도 치며 논다지만, 난 결정적으로 물에 뛰어드는 걸 싫어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 탓에 물에 잠기기만 하면, 코로 물을 진탕 마시고는 컥컥거리며 질색팔색,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자폐에 가까운 극내향적인 아이가 모든 이가 벌거벗은 동네 욕탕에서 같은 반 친구를 만나거나, 학교 선생님과 마주친다고 상상해 보라. 그 아이는 우물쭈물, 알은 체도 못하고 쥐구멍에라도 숨을 것처럼 허둥대고 어색해하다가, 집에 어서 가자고 한창 때를 미는 아빠를 조를 것이다. 그런 불시의 마주침이 항상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주말에 목욕탕에 다녀오는 날이면 가뜩이나 저조한 기력이 바닥을 쳤다. 신체 에너지가 급격히 하향 곡선을 그리고, 멘탈 또한 부서져 너덜너덜해졌다. 뜨거운 열기를 오래 견디지 못하는 체질 특성과 헐벗은 공간에서 다수의 모르는 이들 사이에 섞여 있어야 한다는, 낯설고 어색한 경험이 내게는 감당 못할 타격을 주었나 보다. 목욕 이후에 근처 구멍가게에서 달콤한 바나나 우유도 마시고, 크런치한 돼지바도 녹여 먹었지만 혼곤해진 심신을 정상으로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로는 동네 목욕탕에 가지를 않았다. 그때 그 시절 목욕탕의 이름은 '낙원 목욕탕'. 붉은 벽돌로 높이 쌓아 올린 굴뚝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굴뚝 옆면에는 흰 페인트로 '낙원'이라 세로 새겨져 있었다. 그 굴뚝에서는 밤늦게까지 뿌연 연기가 솟아올랐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 거주자들의 지상 낙원이자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하던 그 목욕탕은 지금은 허물어져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지금은 저층 아파트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다시 목욕탕을 찾기 시작한 건, 회사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소통하면서, 타인과 마주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것이다. 낯설고 경계하는 마음이 나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그들도 항시 가지는 심리 상태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무심히 스치고 곁에 머무르는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덤덤하게 튕기거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주눅 들어 기를 펴지 못하던 사회성이 알게 모르게 길러지고, 날이 서 있던 감정이 둥글게 다듬어지고 나서야 거리낌 없이 공중목욕탕에 출입할 수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한, 온탕에 들어가기만 하면 호흡 곤란으로 괴로워하던 증상도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어쩌면 그 이상 증상은 감정적으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가 온몸을 지배하고 긴장케 하는, 일종의 준 공황 상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이제야 뜨겁고 차가운 물에 번갈아 뛰어들어, 몸을 담그고 혼욕을 즐기는 이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눈을 감고는 뒷목을 가장자리 턱에 기대어 희뿌연 천장을 바라볼 때의 느긋함을 만끽해 본다. 그 천장에 한라산의 백록담 전경이나, 병풍처럼 휩싸인 설악산의 울산 바위 또는 울릉도에서 바라본 아침 일출 모습이 거대한 풍경화로 그려져 있다면 우리는 감탄사를 뱉으며 호사를 누릴 것이다. 마주 보는 벽면 타일에 그려진, 폭포를 거스르며 오르는 비단잉어의 뎅그런 눈알을 쏘아보며 거침없는 야망에 몸을 실을지도 모르겠다. 5마력의 기류가 쏟아지는 제트탕, 뽀글뽀글 거품이 솟는 버블탕, 몸에 좋다는 입욕제를 쏟아부은 한약탕에 똠얌꿍탕, 피부에 좋다는 탄산탕과 와인탕, 수심을 알 수 없는 시꺼먼 흑탕, 야외의 정원과 흩날리는 벚꽃과 노니는 노천탕, 몸을 담그면 철철 흘러넘치는 독박 항아리탕까지.. 각양각색의 탕을 오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리라.
저자가 그린 도쿠시마 '쇼와유' 목욕탕의 세밀한 도감을 보라!
목욕탕에 대한 이런저런 사설이 길어졌지만, 사실 어느 책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쓰려했다. 글은 때때로 애초에 생각했던 항로에서 벗어나 희부연 안갯속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옛 낙원 목욕탕 타원형 거울에 서린 물안개가 사라지고 벌거벗은 내 모습이 천천히 드러난다. 온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하늘하늘한 속옷을 걸친다. 휴게실의 안락한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 곁의 탁자에 놓인 책을 펼쳐본다. 책의 표지에 <목욕탕 도감>이라 적혀 있다.
저자는 과거 건축 설계에 몸을 담았지만, 현재는 '고스기유'라는 목욕탕에 출근하여 도감을 그린다. 그녀의 목욕탕 도감은 정밀하면서도, 살아 숨 쉬는 생생함이 넘친다. 실제 도감을 그리기 전에, 레이저 측정기와 3미터 줄자로 욕탕의 사이즈, 타일의 너비 등을 일일이 측정했다. 바닥 타일의 패턴과 샤워기, 수도꼭지의 고유한 형태 그리고 측벽에 그려진 풍경화 양식의 특징을 포착하여 부감으로 옮겼다. 저자의 디테일에 대한 천착은 욕탕의 특징에 따른 물색과 배수구의 위치, 형태까지 고려한 물살의 흐름까지 관찰하여 세밀한 펜화로 그려내기에 이르렀다.
이 책에 수록된 24곳의 목욕탕 부감도를 세세히 바라보면,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몸을 담그고, 사우나를 즐기다가 곁에 앉은 이들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착각이 아닌, 실제 목욕을 하는 '현장감'을 누린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목욕을 즐기는 이들의 다양한 자세와 표정을 보라! 오래 바라보면 나 자신도 저들 사이에 섞여 목욕을 즐기는 듯하다.
도감에 그려진 수많은 인물들은 각자의 장소와 상황에 맞추어 목욕을 즐기고 있다. 진보라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입식 샤워를 하고, 가운데 구멍 뚫린 목욕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는가 하면.. 데리고 온 사내아이의 등을 박박 밀어주는 엄마도 보인다. 욕탕에 누워 하품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지인들과 수다를 떠는 동네 이모들도 여럿 눈에 띈다. 이제껏 일본의 온천, 목욕탕 문화와 명소를 다룬 책들이 다수 출간됐지만, 이렇게 목욕을 즐기는 이들의 알몸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생생한 동작과 표정까지 정밀 묘사한 책은 없었다. 저자는 욕탕의 세부 측정을 마친 후, 실제 목욕을 즐기며 분위기를 누렸다. 오가는 현지 단골들의 행동과 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베일에 가려진 여탕과 남탕의 은밀한 목욕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욕탕 기행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할 만하다. 더불어 개성 넘치는 목욕탕을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이들의 철학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장가치가 높다고 자평하는 바이다. 휴게실에 설치된 그물침대와 천장을 무대 삼아 상영되는 미디어 아트, 창밖에서 뻗은 벚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벚꽃 잎이 흑탕에 흩뿌리는 욕실 연출 아이디어는 국내 목욕탕 관계자들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새까만 흑탕에 점점이 떨어지는 벚꽃잎이라니.. 저 목욕탕은 언젠가 찾아가 온몸을 담그고 싶어라!
엔야 호나미 작가의 <목욕탕 도감>을 읽으면서 목욕탕에 가고 싶어졌다. 오늘처럼 날씨가 우중충하고 쌀쌀맞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 제일이다. 90도를 넘나드는 사우나 맨바닥이나 목재 계단에 누워 진땀을 빼는 것도 기분 전환에 딱이리라. 멀리 일본까지 원정 목욕을 갈 필요는 없다. 집 가까이에도 찾을 만한 목욕탕과 사우나는 아직 많으니까.. 원치 않게 책의 페이지 종착에 이르러 어릴 적 '낙원 목욕탕'과 얽힌 추억 몇 가지가 가슴 언저리에서 돋아났다. 웃자란 그 가지들은 워낙 단단하여 솎아내거나 꺾기엔 역부족이다. 세심히 보듬어 살펴서 대체 어디서 그 나뭇가지가 움트고 자랐는지, 그 엉긴 뿌리를 더듬어 보려 한다.
일본 각지의 개성 넘치는 목욕탕의 생생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여탕과 남탕의 은밀한 목욕 생활 또한 엿볼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