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는 결혼 전, 좌충우돌 방황을 거듭한 끝에 바깥 세계로 떠나는 작가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타인의 눈길을 회피하는 선천적 시선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작가는 학창 시절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낙담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주위를 살필 만한 힘을 길러 몇몇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이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펀자이씨는 일러스트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만약 그녀가 현실에 안주했다면,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지 않았다면 이 책의 절반은 사라졌을 것이고, 인생의 반려자 또한 마주치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펀자이씨툰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단순하면서 사각이는, 어찌 보면 투박한 질감의 연필선이 여백과 어울려 풍부한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낸다. 몇몇 주요 장면들은 대사와 지문을 읽지 않아도 저자의 감정과 의도가 바로 전달될 만큼 함축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220 페이지를 시작으로.. 펀자이씨가 그림책에 빠져들어 어린 왕자, 드래건과 펭귄, 피터팬의 세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련의 컷 모음은 박진감과 흥미진진함을 동시에 전달한다. 아기자기한 초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이후 평생의 인연과 스치는 순간을 관조하는 듯한 근접 스케치는 젊은 남녀가 사랑에 휘말리기 직전, 폭풍 전야의 고요함과 두근거림을 담담히 그려냈다.
이어지는 2권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는 한국과 태국을 오가며 서로의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국제결혼 커플의 험난한 삶이 그대로 전해진다. 반면 축복과 같은, '어여쁜 달'이라는 의미의 외동딸 짠이가 동떨어지고 생경한 두 행성을 이어주는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한다. 평소 무뚝뚝하고 근엄한 이국의 시아버지가 귀여운 손녀와 눈치껏 막춤을 추고, 허리를 굽혀 뽀뽀하는 장면에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놓치기 쉬운 사소한 변화를 생동감 넘치는 그림과 솔직 담백한 글로 포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자 세밀한 관찰자로서 매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컬러 채색을 자제한 단색 스케치는 매끈한 단면의 '스크린'에 표시되기보다는 거친 두께감이 전해지는 '지면'에 표현되는 것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고밀도의 오밀조밀하고 협소한 액정보다는 두툼하고 넉넉한 판형의 종이책에 담아내야만 내밀한 이야기와 코믹한 소란극이 빛을 발하고, 배경에 숨은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비교 평이다. 아무튼 그녀의 작품은 트렌디한 SNS 앱을 뛰어넘어 보수적인 아날로그 매체에서도 진정성을 발휘하고, 독자적인 감상을 전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먼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기꺼이 해치우겠다는 작가의 각오가 펀자이씨 인스타툰의 흥행과 단행본 시리즈의 출간을 일구었다. 그녀와 남편 파콘 그리고 딸 짠이의 행복하고 유머러스한 에피소드가 이어져 10권, 20권까지 거듭 출간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덧붙입니다. 책의 앞뒤 표지를 갈라 휘어잡고 주르륵 페이지를 넘기면(이때 팽팽한 텐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
연필로 그린 선과 도형이 이어져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흥겨운 춤을 추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다들 학교 다닐 적에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리고는 친구들과 키득거리며 넘겨 보셨을 겁니다. 교과서와 공책 페이지 귀퉁이마다 앙상한 캐릭터의 달리기 연속 시퀀스를 그려 넣고는 좌라락, 펼쳐서 감탄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이 책도 그때와 비슷한, 페이지 날리는 쾌감을 선사하네요. 끌린다면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양손에 쥐고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디지털 기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두께감이 실재하는 종이책의 특권이자 장점이 빛을 발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