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나날이 이어진다. 끈덕하고 척척한 몸을 붙들고 밍기적대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마친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준다. 다음으로 말끔하게 꽃단장한 아이들을 학교에 모셔다 주고 들어오니 집안이 적막하기 그지없다.
정작 나 자신은 상쾌하게 씻지도 못하니 욕실 거울에 비친 몰골이 오늘따라 유난히 초췌하다. 면도나 할까 하고 전기면도기를 구레나룻과 턱선을 따라 눌러 내리는데 악, 따끔하다. 유심히 살펴보니 피부와 닿는 철제 면도날망의 귀퉁이가 살짝 깨졌다. 며칠 전에 잠이 덜 깨었는지 헛손질을 해 면도기를 바닥에 떨구었는데, 아마도 그때 충격 때문인 듯하다. 얼굴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줄곧 쓰는데, 면도 하루 안 한다고 못마땅한 눈길 주고 헐뜯는 사람 있겠는가? 이따 샤워할 때 오랜만에 포장도 뜯지 않은 날 면도기를 꺼내어 비누칠을 하고, 거칠게 돋은 수염을 공들여 다듬어 볼까 한다.
오전을 여는 소식부터 심상치 않다. 요 근래 코로나 확진 숫자가 가파르게 오르더니, 결국 12일부터 거리두기 4단계에 돌입한다는 비보가 뉴스란을 채운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무더운 날씨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최근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싶었는데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2주간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원격 수업을 해야만 한다. 그나마 일주일에 며칠만이라도 책가방을 짊어지고 친구들을 보러 등교하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숨통을 트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왼쪽 가슴 정확히는 겨드랑이 부근이 답답하고 목이 메어 온다. 부리나케 냉장고로 다가가 시원한 보리차를 한 잔 들이켜니 치밀어 오른 화기운이 슬며시 내려간다.
하는 수 있나.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티는 수밖에.. 마룻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는 아이들이 아빠 심심해, 배고프거든, 나가서 놀고 싶다 투정하고 불평하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이럴 때 집 가까이 울창한 산과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날이 선선한 틈을 타 아이들과 함께 관악산을 찾아 눈먼 송사리를 잡고 물놀이도 하다 보면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리라.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향해 달려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에세이 <무라카미 T>를 읽었다. 그는 틈틈이 여행을 하고, 서핑이나 마라톤 등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쟁여둔 이런저런 '티셔츠'를 모티프로 책을 써냈다.
모던 재즈 콰르텟? 마일스 데이비스? 아니지 오늘은 윈튼 마살리스의 트럼펫 연주가 끌리는 걸..
그의 손이 가는 대로 재즈 레코드를 꺼내 그 위에 바늘을 올린다. 이번에는 힘을 빼고 한 붓에 써내려 볼까 하는 라이트한 마음가짐으로, 한 손에는 라프로익 위스키 잔을 든 채 휘파람을 불며 썰을 풀어내는 하루키가 떠오른다. 그의 발 밑에는 막 옷장에서 꺼낸 묵은 빨래 냄새를 풍기는 각양각색의 티셔츠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리라.
요즘 미니멀리즘이다 최소주의다 해서 소유하는 물질을 최소화하며 살자는 것이 트렌드이지만, 그에 반하여 긴 시간 공들여 수집한 한두 가지 컬렉션쯤은 각자의 집 한 구석을 빼곡히 채우고 있지 않을까 한다.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콘텐츠로서 애장하는 품목을 오픈하고, 그에 얽힌 사연이나 경험 등을 풀어놓는 것도 좋겠다 싶다.
책 표지에는 "Keep Calm and Read Murakami"라고 쓰인 빨간 티셔츠가 걸려 있다.
그대로 해석하면 입 닥치고 하루키의 책을 읽어라 쯤 되려나. 글밥이 적고 여백이 많은 페이지 여럿을 넘기니 "Tony Takitani"라는 익숙한 푸른색 문구가 새겨진 샛노란 티가 눈에 띈다. 하루키는 마우이 섬 시골 마을의 자선 매장에서 산 이 티셔츠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단편 소설을 썼다고 한다. 단돈 1달러를 투자해 써 내린 짧은 소설이 대박 나고 영화화까지 됐으니, 자기 인생의 투자 가운데 최고였다고 회상하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얄밉기도 하고.. 한 입에 들어가는 부담 없는 스낵을 먹는 것처럼 휘리릭 페이지가 넘어가다 보면 "이런 주제로도 그럴듯한 책을 펴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터진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동네 골목길 상권을 글로벌한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떡하니 들어와 선점한 듯한 근거 희박한 원망도 섞이곤 한다.
책에 실린 수많은 티셔츠 중에 흥미를 끌었던 것은 다음 문구가 새겨진 티였다.
"I Put Ketchup on my Ketchup"
무슨 뜻인지 이해한 분은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지을 것이다.
글귀 그대로 "나는 케첩에까지 케첩을 뿌린다"는 의미. 당연히 이 티셔츠의 배경은 케첩을 통째로 쏟은 듯한 시뻘건 색이다. 제조사 하인즈나 오뚜기가 좋아할 만한 이 옷은 한 덩치 하는 케첩 또는 패스트푸드 마니아가 걸치면 어울릴 듯하다. 거리에 나가면 대문짝만 하게 쓰인 (케첩 홍보) 메시지에 꽂혀 이를 해석하려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 보니 한 두 번 걸쳤다가 아니면 아예 옷장에서 꺼낼 생각도 못하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수많은 티셔츠들이 떠오른다. 그중에 유독 뇌리에 선명하게 박힌 티셔츠가 있으니, 그것은 한 음절의 단어가 프린트된 흰 셔츠였다.
당시 복학생으로 어느 신생 컴퓨터 동아리의 회장을 맡았던 나는 여름 엠티를 준비하다가 동기들이 단체 티셔츠를 비밀리에 디자인하고 맞추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운 좋게 실물을 본 몇몇 후배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뒷소문만 무성할 뿐,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그 티는 엠티 마지막 날 파하는 자리에서 모두에게 공개됐다.
<뷁>
지금은 타이핑하기도 어려운 글자다. 아마도 2001년 즈음일 것이다. 즐, 잼과 함께 단음절의 글자 하나가 인터넷 상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그 덕후스런, 소리 내어 발음하기도 민망한 글자를 티셔츠 한가운데, 정갈한 수묵 궁서체로 큼지막하게 새긴 것이다.
그 티셔츠를 받아 든 자는 처음에는 폭소를 터뜨렸지만, 막상 입으라고 하자 쭈뼛거리며 이거 곤란한데요 부끄러워요 얼굴 팔리는데요 하면서 뒤로 빼는 것이었다.
전날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신 소맥이 덜 깬 탓일까. 난 누워 있던 평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울 좋은 동아리 (바지) 회장으로서 솔선수범하자는 의욕이 동했나 보다. 땀내가 펄펄 나는, 쌈장이 점점이 묻은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바로 '뷁'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자, 내 밑으로 다 갈아입도록. 만약 집에 가는 동안 벗으면 동아리방 평생 출입 금지야!"
회장의 난데없는 돌발 행동과 폭탄선언에 남자 후배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하나둘씩 상의를 갈아입는다. 여자 후배들은 눈치를 보다가 걸친 상의 위에 겹쳐 입었다.
"뒤집어 입으면 안 되나?"
"등 뒤로 글자가 보이도록 입으면 안 돼?"
"절대 안 되거든."
"에라이, 이 똥고집 회장아."
동기들은 대놓고 날 욕하면서, 영 내키지 않는 품새로 그 셔츠를 걸쳤다.
집에 돌아가는 길, 여럿이 움직이는 동안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리가 흩어지면서 점차 대중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포커싱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방향이 같은 동기 두엇과 사당역에 막 도착한 4호선에 올라탔을 때, 모든 이의 시선이 빗발치는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생경한 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나는 최근 떠오르는 '관종'이라던지 다른 이의 시선과 관심을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연예인 직종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 어쩌면 정반대에 위치한 종자임이 확실하다는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지하철 안은 우리가 등장하는 순간, '뷁'이라는 단어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해괴한 셔츠를 걸친 별종(이라 쓰고 돌아이라 읽는다)들이 누구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분석하는 '호기심 천국'의 열성 시청자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처음엔 애써 담담한 낯으로 태연하려 기를 쓰다가 점점 핫핫해지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가 걸친 티셔츠에 눈길이 닿자 양 볼이 부풀어 오르고 붉어지더니 끝내는..
"으하하하!"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주겠네."
"너 진짜, 얼굴이랑 그 옷이랑 딱 어울리는 건 뭐냐."
객차 안이 떠나가라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동작 역에 다다를 즈음이었나. 견디다 못한 우리는 지하철에서 내려 가까운 화장실로 달려가 민망한 그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시쿰한 술 비린내 배인 후줄근한 옛 셔츠로 바꿔 입었다.
단체로 맞춘 티셔츠인지라 차마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못하고 가방에 쑤셔 넣어 집까지는 가지고 왔다만, 다시는 눈에 밟히지 않게 곧바로 옷장 깊숙이 봉인하였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이후로 그 티셔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시는 눈에 띄지 않았다.
100장 가까이 찍어 낸 단체 티셔츠이니 만큼, 어쩌다 한 번은 대담하게 걸치고 다니는 사내와 마주칠 법도 하건만 아쉽게도 20년 넘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라카미 T>에 정성스레 담긴 다양한 티셔츠의 사진들을 보다 보니, 그 망측한 티셔츠를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후회가 남는다. 반면에 이 글을 통해 자취를 감춘 그 티셔츠의 존재 의의를 짧게나마 밝혔으니, 어쩌면 내 명보다 길게 살아남을 불완전한 불멸성을 획득하지 않았을까 하는 억측도 해 본다.
어찌했든 책 말미에 실린 하루키의 말에 백번 천 번 공감하는 바이다.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입지 못하는 티셔츠는 명확히 구분됩니다. 결국 시선을 끌고 싶지 않은 거죠... 티셔츠를 입는 건 괜찮은데 시선을 끌면 곤란합니다. 메시지가 있는 티셔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읽으니까. 읽고 있으면 정말 민망하죠."
덧붙여 웬만한 소유물에 통용될 수 있는, 티셔츠에 대한 나만의 원칙을 공유하고 싶다.
"모든 튜닝, 변종, 리메이크의 끝은 순정 아니면 오리지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옷장 안을 끝까지 지키는 건, '무지 티셔츠'라 할 수 있다. 적당히 목이 늘어나고 품이 낭낭한, 아무것도 배경을 가리지 않는 심플한 티셔츠 말이다."
이 글을 올리면 앤디 위어 작가의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온전히 집중하려 한다. 자그마치 700페이지에 달하는 SF 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