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뷰가 펼쳐지는 창은 따가운 볕 때문인지 불투명한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다. 난 수런한 잡담과 요란한 폭소를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답답한 마음이 그제야 숨통이 트인다.
왼편으로 휘어진 오르막을 따라 걸으니 송악 오름의 숨은 비경이 펼쳐진다. 일제가 결사 항전을 외치며 제주 도민들을 동원해 뚫은 절벽 동굴은 어둑한 입을 벌리고 있다. 마주한 바다로 눈을 돌리면.. 오붓한 형제섬이 가까이 솟아 있고, 멀리가파도와 마라도가 어렴풋이 보인다.
목책을 따라 차근차근 오르면 흉측한 방공호의 입구가 두엇 보이고, 덩치 큰 애견과 나란히 오름길을 달리는 현지 주민들이 눈에 띈다. 정상으로 향할수록 맞은편에 보이는 산방산이 허리를 수그리며 가까이 다가온다. 서로 근접한 송악산과 산방산은 쌍을 이루며 어울리는 존재이다. 저기 해수 위로 고개를 내민, 엄연히 겉모습은 다르지만 우애 좋게 어울리는 형제섬처럼 말이다.
산책로를 따라 좀 더 걷고 싶었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묵직한 맞바람이 부담스럽고, 수평선과 맞닿은 태양은 그 아래로 자취를 감추려 한다.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옷깃을 여미면서 서둘러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 다다르자 시끌한 소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금 번잡스레 날뛰려 한다. 난 심호흡을 하며 스벅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 2층 테라스에 자리한 솔과 연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난 두 손을 들어 화답하고는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따스한 공기가 싸늘하게 식은 온몸을 감싼다. 송악산에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이자 중도에 트래킹을 포기한 자들의 도피처.. 여기에 스벅이 존재하는 이유다.
얼마 후, 차를 몰고 주차장을 떠나면서 난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 머물렀다 스치는 송악산의 길게 누운 실루엣을 눈에 담으면서 말없이 핸들을 돌렸다. 송악산 정상으로 가는 오솔길이 2027년에 개방된다지. 난 다시금 푸르른 해송이 우거진 저 오름에 오르는 여정을 상상하며 해안 도로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