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한 주 남짓 남기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무심히 넘기려다 간단히 기록하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겁게 보냈다. 난 한 주 동안 물류 알바를 세 번 나간 탓에 몸 컨디션이 바닥을 쳤지만,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망치지 않으려, 최대한 즐기려 노력했다.
20일 새벽에 쿠팡 이천 2 센터에 출근하려 했지만 셔틀버스가 도착하지 않아 한 시간 남짓 추위에 벌벌 떨다가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HR 담당자 말로는 GPS 상으로 정시에 버스가 도착했고, 한 명이 탑승했다고 하는데 난 그 버스를 목격하지 못했다.
버스 도착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해 눈을 부릅뜨고 '이천 2 센터'라 앞유리에 표시된 버스를 주야장천 기다렸건만, 그 버스는 순간 이동을 한 것인지, 유령 버스가 되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새벽 추위에 질려 선 채로 깜박 졸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새벽 단잠을 설친 탓에 노안이 심해져 눈앞이 흐려진 걸까. 하지만 다른 쿠팡 센터, 이를테면 시흥이나 광주, 곤지암 등으로 향하는 버스는 내 눈에 잘 띄기만 했다. 이천 2 센터는 이전에도 퇴근버스가 만석이 되는 바람에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인원이 서넛 모여 택시를 타고 귀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다행히 택시비는 쿠팡 측에서 부담했다) 그 센터에 마가 낀 것인지, 안 맞는 뭔가가 있는 건지.. 당분간 이천 2 센터를 멀리할 듯싶다.
두 번째 출근은 23일, 이천 4 센터에 6개월 여만에 출근하여 수동 자키를 다루는 업무를 했다. 두 시간의 신규 교육이 없었다면 고된 노동 탓에 중도 포기하거나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자키 자체가 2.5톤의 무게인데, 사방 2 미터면적의 팔레트에 높이 쌓인 박스까지 날라야 하니, 거의 10톤에 육박하는 짐을 수십 번 반복해서 운반한 셈이다. 퇴근 한 시간을 앞두고는 복강경 수술한 배꼽 부위가 땅기고 쑤셔서, 캡틴에게 말하고 조퇴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허나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버틸만하길래 허약해진 신체를 단련하는 기분으로 수동 자키를 끌었다. 곁에서 함께 자키를 끄는 동료들이 있기에 서로 돕고 의지하여 견딜 수 있었다. 아마 하루 걸음으로는 만 보 이상 걸었을 것이고, 자키로 나른 팔레트만 30개가 훌쩍 넘어간다. 그날 밤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한 번도 깨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개운한 아침을 맞이해 의외였다.
12월 마지막 출근은 25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지만, 평일 페이의 1.5배를 더 주는 날인지라 새벽 알람에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근무지는 곤지암 1 센터. 냉장/냉동 센터가 자리한 대형 신선센터이고, 휴게 시설이 그나마 잘 구비된 쿠팡 물류센터이다.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로 향하는 길. 동승한 다른 이들의 얼굴은 피곤에 찌들어 있고 눈은 불그스름 충혈되어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도 별반 다를 바 없으리라. 좌석에 앉자마자 코를 드르릉, 골며 단잠에 빠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휴일인지라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 평소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류센터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 여기저기 눈치도 잘 봐야 하고.. 그날 근무 TO와 물량 등에 따라 보직이 결정되는데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냉동 센터에 갇히기도 하고, 수월한 냉장창고에서 진열 업무만 하다 퇴근하기도 한다. 또는 온종일 박스만 처리하고, 신호수 노릇만 하면서 무료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오늘은 내 일진이 그리 좋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그것도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인지라 야외 도크 제설 작업에 당첨된 것이다. 군 제대 이후 20여 년만에 두메산골, 삭막한 환경에서 제설 작업을 했다. 오전 내내 바닥에 뿌리는 염화칼슘도 없이 눈을 치우느라, 끝도 없이 쌓이는 눈더미와 무한 대치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도크 구석에 설치된 간이 컨테이너에서 간간이 휴식도 취하고, 시린 손발을 녹일 수 있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오후에는 입고 진열 작업을 하는가 했는데,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주문량이 감소하는지 허드레 잡일만 죽어라 시킨다. 20대 초반 MZ 세대로 보이는 덥수룩하고 과묵한 청년과 한 조를 이루어, 각 구역의 빈 플라스틱 케이지와 종이 박스를 수거하는 작업을 했다. 일종의 워터 보조 업무라 할 수 있는데, 단순 작업이라서인지 시간이 정말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다. 퇴근 시간이 배로 늘어져 갈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랄까. 마지막에는 진열 선반의 바닥을 물을 묻힌 티슈로 닦는 작업을 했는데, 켜켜이 쌓인 김칫국물과 단무지, 각종 반찬류 등이 흙먼지와 뒤엉켜 덕지덕지 묻어 있어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쿠팡 물류센터의 수많은 진열 선반을 신경 써서 닦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일 년에 한두 번, 크리스마스 같은 공휴일이 닥치고 근무 인원이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창고를 가득 메운, 어찌 보면 공공 도서관의 서고처럼 나란히 늘어선 간이 선반의 전체 공간을 청소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쿠팡을 애용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로켓처럼 잘 나가는 그들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찌했든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난 무사히 일을 마쳤고, 23일 급여와 오늘 공휴일 특근 수당을 합산하여 26일 오후 중에 챙길 것이다. 지난 20일 출근도 못하고 허탕 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12월 근무는 이것으로 끝이다. 좌충우돌했던 2023년도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다. 새해를 맞이해 이천 2 센터는 어떻게든 출근하여 거듭 낀 마를 물리치고 액땜을 할 작정이다. 실로 고단한 몸 상태였지만, 인상적인 신간 서평 한 꼭지를 마무리해서 여러 채널에 올렸다. 삭막한 공간에 갇혀 일을 하느라 몽롱해지는 심신을 깨우려 믹스 커피를 너무 마셨는지.. 도통 잠이 안 오길래 지극히 사적인, 잡스러운 글을 주절대면서 여기에 옮기고 있다.
부디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브런치 작가님들 모두의 평안과 안녕, 건강을 빌면서..
격의 없는 수다 아니, 주절거림을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 The Rolling Stones - Angry (Official Music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