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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선, 아시노코 호수, 모토 하코네, 삼나무 숲길

신사 도리이, 하코네 유모토, 하츠하나..

by 라미루이

2010.12.27











하코네 지옥의 유황 화구, 오와쿠다니에서 벗어나

아시 호 주변으로 접근한다.



토겐다이 항에서 그럴듯한 규모로 재현한 해적선을 타고서 천천히 호수의 물살을 따라 남하한다.

해적선은 놀이공원에서 방금 퇴역한 듯한 바이킹 목조선을 닮았다. 선수에 늠름하게 선 날개 달린 황금 사자는 역광을 받아 눈이 부시게 빛났다. 저 멀리 봉긋 솟은 후지산 정상이 보인다. 바람이 매섭진 않았지만 쌀쌀해서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했다.





남쪽 항구에 접근하자 멀리 솟은 다홍빛 신사(shrine) 입구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개중에는 아시노코 호수에 기둥이 잠긴 신사 관문 'Heiwa no Torii(도리이 鳥居)'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배에서 내려 근처의 식당에서 우동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우동은 평범한 맛이었는데, 선은 그릇을 비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싸르르, 아프다며

황급히 화장실을 찾았다. 보통 속이 예민한 내가 낯선 음식이나 물을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흔하지 않은 반대의 급 신호인지라 어지간히 음식이 안 맞았나 보다 생각했다. 아니면 여행 3일째 같은 방을 쓰면서 화장실 가는 게 눈치 보여 참을 대로 참다가 불시에 터진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결혼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기라 선이 생리적 현상을 감추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던 그런 때였다. 물론 지금은 틀 거 다 트고 뀔 거 다 뀌면서 맘 편하게, 무던히 지내고 있다. 한 공간에서 살 부대끼며 복작복작 살아가는데 눈치 보지 말고 편히 사는 게 장땡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오십 년, 백 년을 동고동락하는 인간관계, 인연은 편안함, 격의 없음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울창한 삼나무 숲. 거닐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피톤치드 가득한 청정 구역이다.




소화도 시킬 겸 '모토 하코네'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거리는 한적했고 오가는 사람들이 적었다.

에도 시대에 심어진 삼나무 숲은 울창했고, 수형이 곧고 잎들이 푸른 것이 장기간 세심히 관리되는 것으로 보였다.







도로 중간에 명판이 새겨진 목조 건물이 보인다. 箱根関所(하코네 세키쇼) 즉 '하코네 관문', 에도 시대 하코네 지역에 설치된 역사적인 검문소라고 한다.



모토 하코네 초입을 지키는 제2 결계 도리이 부근에는 수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비석 모양은 제각각이고 크기 또한 다르다. 이들은 영험한 힘을 지닌 하코네 신토 신사의 깊은 역사와 무속 신앙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하코네는 에도 시대에 도카이도(東海道)라 불리던 요지 중의 요지라 상인, 무사들의 왕래가 잦았고 전쟁 또한 빈번했다. 세상을 등진 이들의 명복을 비는 비석도 많고, 가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또는 문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신사 내부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관문 도리이까지 살피고는 발길을 돌렸다.




https://maps.app.goo.gl/3sgccuXPBUVo5Snd9






하코네는 워낙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꼭 다시 들르고픈 지역이다. 지금은 어떻게 풍경이 변했을지 기대되기도 하고.. 구글 맵으로 당시 여행 경로를 따라가니 새록새록 추억이 되살아나, 의미 있는 바둑 한 판의 중요 지점을 복기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새로웠다.





늦은 오후가 되자 우리는 '하코네 유모토' 지역으로 이동했다. <千鶴堂 센즈쿠도>라는 야키센베(구운 센베, 쌀 과자)를 파는 상점에서 몇몇 안줏거리를 골랐다. 묽은 간장, 데리야키 양념을 발라 바삭하게 구운 쌀 과자 맛이 일품이었다.






하코네에서 마지막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자연산 참마 소바로 유명한 <하츠하나 はつ花>로 발길을 옮겼다. 1934년 개업한 유서 깊은 식당으로 세이로(참마) 소바, 튀김 소바가 유명하다. '지넨조(야생참마)'와 메밀을 섞어 곱게 반죽하여 뽑은 찬 국수에 날계란과 특제 소스를 듬뿍 얹은 소바가 먹음직스럽다. 디핑 소스는 지넨조의 껍질을 벗겨 강판에 갈아낸 것으로 '도로로(とろろ)'라고 한다. 참마 특유의 점성이 있는 끈적하고 사각이는 식감과 고소한 맛이 잘 어울려 묘한 맛을 자아낸다. 먹고 나면 소화도 잘 되고 뒷맛이 깔끔한 것이 나이 드신 분들도 좋아할 만한, 건강식에 중독성이 넘치는 그런 소바였다.


다만 참마에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은 드시면 안 되니 주의 바란다. 입 주변이 간지럽거나 몸 여기저기 두드러기가 돋을 수 있다.





https://maps.app.goo.gl/EioEjBkDLesqttRa7





종일 바쁘게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어느새 거리가 어둑하니 하코네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숙소로 돌아와 욕탕에서 반신욕을 마치고, 하이볼에 유모치 & 야키센베를 곁들여 마시니 천상 극락이 따로 없다. 대나무 껍질에 싸인 '유모치'는 일종의 찹쌀떡으로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맛이 제대로였다. 노곤한 몸에 달큰한 알코올이 들어가니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고 기분이 몽롱해진다. 선과 난 서로를 바라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고, 슬금슬금 거리를 좁혔다. 우리는 젊었고 이색적인 이국의 밤은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얼마 후 단출한 트윈 침대방의 불은 꺼졌고, 하코네의 밤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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