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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핑거프린트

by 라미루이








뒤통수에 남겨진 은빛 탄흔

탄환은 비밀을 간직한 손수건처럼 관통한다
휘발유 향은 축음기 바늘이 긁는 음절처럼 번지고
담배연기는 지도의 경계선을 얼룩지게 한다

구덩이 하나가 도시의 무게를 삼키고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의 명함을 접어 배달한다
유격의 밤은 암실에서 인화되고

프레임 사이로 숨결이 삐져나온다



한 사람의 움직임이 다른 사람의 과거를 터치하면

지목된 과거는 반짝 부서진다

불투명한 고스트의 그림자가 땅을 파헤친다
긁힌 선들이 비밀서류가 되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다
손은 더 이상 손이 아니고 잘린 손은 서약의 순간접착제다
접착제는 때로 태풍이 되고 태풍은 미소를 훔친다

불붙은 군번줄이 밤의 약속을 굽는다
불꽃은 함성보다 먼저 기억을 태우고
기억은 화상을 입은 채 도로 위로 뛰쳐나온다
엇갈린 걸음마다 파편이 하나씩 떨어지고

녹슨 군번은 모래처럼 스러진다



전장은 인증서가 되어 익명의 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이 접기를 할 줄 알았고 접힌 증명서는 다시 바람에게 배달된다
승리와 배신은 양쪽 주머니 속 배다른 동전 같다

한 손이 동전을 던지면 다른 손이 그림자를 받는다

카메라는 숨을 빼앗는 트랩으로 작동하고
플레이어는 손가락 여섯으로 역사를 접는다
리셋은 용서가 아니고 리부트는 다른 이름의 약속이다
약속은 접히면 접힐수록 더 무거워지고

겹친 무거움은 다시 발자국이 된다



폭발 후에 남은 것은 소멸의 서랍과
서랍 뒤로 밀려 떨어진 편지 한 장이다
편지는 읽히지 않은 채로 송신되고
모스 부호처럼 땅을 두드려 울림을 만든다

밤의 라스트 신에서 우리는 서로의 손목에 지문을 남긴다
지문은 고유한 리듬이 되어 땅의 진동을 기록하고
그 기록은 게임을 넘어서는 낡은 지도 하나를 만든다



지도의 끝에서 누군가 작은 불씨를 꺼내어 품에 넣는다

불씨는 아무 말 없이 따스하고
따스함은 무기보다 더 오래 번지는 연대이다
우리는 연대의 이름을 읊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그림자를 끌어안아 일으킨다
발맞춰 걷는 소리가 전장의 또 다른 지문이 되고
다시 누군가의 심장을 터치하면

밤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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