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제주도 일주
군대에 있을 때에는 늘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첫 휴가를 가기 전에는 휴가에 나가서 먹고 올 것들에 대해 적었다. 던킨도넛, 피자, 슈 등등 별 것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으면 못 먹고 들어올 것들이 있을까봐 걱정되어 적었다.
일병때는 열심히 책을 읽고 난 후의 독후감을 썼다. 군대는 역시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지만, 동시에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허무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잡고 싶어 책을 읽고 수첩에 끄적끄적 독후감을 썼다.
전역 전에는 전역하고 나서 하고 싶은 것들을 주욱 적어 보았다. 군대에 갔다 전역을 한 사람들이면 다들 알겠지만, 전역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들의 대부분은 민간인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이나 사소한 것들이다. 평일 저녁에 푸드코트에 가서 볶음우동 먹기, 밤 늦게 편의점 갔다 오기, 파마하기, 귀뚫기 등등. 하지만 군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저런 일들이 너무도 간절했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지만, 동시에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전역을 하곤 대학에 바로 복학을 했다. 나는 3월 중순에 입대를 했지만 군생활이 2년에서 차츰 줄어들던 시절이어서 2년을 꽉 채우지 않은, 2월 말경에 전역을 했다. 덕분에 다행히 복학을 할 수 있었다.
정신없는 첫 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전역 전에 하고 싶던 일의 목록에 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싶었다. 우선은 중, 고등학교 동창이자, 비슷한 시기에 전역, 복학한 J와 함께 제주도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말은 제주도 '여행'이었지만 실제로는 제주도 '수행'에 가까웠다. J도 나도, 학기 중에 통학을 위해 자전거를 한 대씩 샀었는데,('자전거 사기'도 전역 전에 하고 싶던 것 중 하나였다.) 제주도에 그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학기가 끝난 다음 주에 우리는 바로 대전에서 만나 광주행 버스를 탔다. 자전거는 버스 아래 짐칸에 넣었다. 광주에 도착하고, 다시 완도행 버스로 갈아탔다. 완도에 내려 완도항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리고 완도항에서 다시 제주행 배를 탔다. 아침 7시에 대전의 유성에서 출발했는데, 제주도에 도착하고 보니 5시가 넘어 있었다.
종일 버스와 배에서만 앉아 있었더니 답답했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의 서일주도로를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도착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오래동안 자전거를 탈 수는 없었다. 제주공항을 조금 넘어 커다란 조랑말 모양의 등대가 보이는 이호태우 해변에서 우리는 1박을 하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경비를 아끼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먹는 것과 자는 것을 아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작은 텐트 하나와 버너, 코펠, 쌀 등을 들고 다녔다. 우리는 각자의 자전거에 실을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최대한 싣고 다녔다.
낮동안은 종일 자전거를 타고, 해가 질때쯤 도착한 해수욕장에서 텐트를 펴고 쉬었다. 버너로 라면을 끊여 먹거나, 3분 카레 같은 것을 먹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밤이 되면 할 게 없어서 건전지를 넣은 라디오를 들었다. 몸이 힘들어서 수행이기도 했지만, 여행 방식도 수행자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고생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기적처럼 딱 사흘만에(도착한 날 제외)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그 과정은 정말로 험난하고 고생스러웠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말들을 첨언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마지막 날 표선해수욕장에서 자고 일어나 제주 시내를 향해 열심히 페달을 굴렸다. 해질녘에 제주 시내에 겨우 도착했다. 텐트 칠 데도 마땅치 않고,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찜질방에서 자기로 했다.
며칠동안 해수욕장 간이 샤워장에서만 씻다가 오랜만에 목욕탕에 가니 기분이 참 좋았다. 시원하게 씻고나서 오랜만에 인터넷을 하려고(말했듯이 스마트폰 없던 시절) 코인 PC에 동전을 넣었다. 네이버 메인 화면에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는 기사가 떠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고?
아무런 맥락이 없이 전해진 부고였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글에서도 마이클 잭슨이 갑자기 튀어나올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제주도에서 겪었던 어떠한 일들보다 가장 깊이 남은 기억은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극적 장치 없이, 마이클 잭슨은 이 글의 결말부에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의 제주도 여행은, 왜인지 마이클 잭슨의 죽음 없이는 기억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제주도 여행을 한 마지막 밤, 마이클 잭슨이 죽은 날인 6월 25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변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찜질방에서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배를 타러 나왔다. 찜질방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밖에서 자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끌고 제주항으로 갔고, 우리는 다시 완도행 배와, 광주행 버스와, 대전행 버스를 차례로 갈아탔고 짐칸에 자전거를 구겨 넣었다.
이젠 버킷리스트의 다음 목록을 지울 차례였다.
:: contact _ napbock@naver.com
:: blog _ blog.naver.com/napb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