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의 맛

2호선의 9와 3/4 승강장, 홍대 입구역

서울 찬가

by 매일의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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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ight / stay gold



서울을 노래한 음악들을 좋아한다. 몽구스의 '이른 한강에서'는 서울의 빌딩숲 사이를 달리는 기분이 들어서, DJ soulscape의 '한강의 테마'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서울의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했다. 그런 내가, 서울 사람에 대해 서울의 불빛에 대해 노래한 야광토끼의 앨범 'seoulight'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seoulight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들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발매된 야광토끼의 두 번째 앨범 'stay gold'의 첫 곡의 제목은 '서울하늘'이다. 그녀는 여전히 서울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미묘하게 쓸쓸하면서 다정한 이 곡은 서울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회색 빌딩을 지나 찰랑이는 한강 넘어
노을이 붉게 물 들 때까지 날 기다려 줘요


서울에 살게 된 지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이 말은 처음 서울에 올라와 강서구청 근처의 고시원들을 보러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 가까이 되었다는 뜻이다. 30년 가까이를 지방에서 살다가 대뜸 서울에 올라 왔을 때는 내가 이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차가운 도시에 정이 많이 붙었다.

작년에 일과 집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던 때 였는데, 어쩌다 보니 반년이 지나지 않아 서울에 다시 오게 되었다. 그런 내 변덕스런 행동에도 이 도시는 무심한 연인처럼 가타부타 말을 늘어놓지 않는 듯했다. 본디 짝사랑이란 그런 것이니.

IMG_20140322_080138.jpg 서울에서 처음 산 곳_고시원


서울에 처음 와본 것은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넷째 고모가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가족들끼리 기차를 타고 가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SBS가 개국하고 몇 해 뒤였던 것 같으니 7~8살 정도였던 것 같다. 당연히 그때의 기억은 거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때였다. 버스를 타고 올림픽 대로를 통과해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집에 왔다. 버스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었다. 다만 그때 창 밖으로 63빌딩을 보며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이 두 번의 서울 방문은 사실 방문이라 하기 애매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서울에 와본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나는 늘 '고3이 끝난 겨울방학'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한창 인디 밴드와 외국 밴드의 음악을 많이 듣던 시절이었다. 그런 음악들을 듣고 있는 동안은 나 자신이 무척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고3 수능이 끝나고, 이제 스무살도 됐으니 함께 음악을 듣던 J와 클럽 공연에 라이브 음악을 들으러 가보기로 했다. 한희정이 보컬로 있던 '푸른 새벽'이라는 밴드를 보러 갔는데, '푸른 새벽'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팀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입지가 탄탄했던 밴드였다.

공연은 9시가 넘은 밤에 시작했지만 우리는 낮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갔다. 당시 공주에서 서울에 가는 버스비는 고작해야 5~6천원 정도였고, 버스는 1시간 30분을 달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금세 도착했다. 너무 서울에 쉽게 도착해서, 나는 왜 지금까지 서울에 한 번도 와볼 생각을 안했는지 조금 허무해졌다.

7.jpg 추억 속의 클럽 '빵'에서 공연하던 푸른새벽(출처 : http://whozine.tistory.com/41)


J는 그나마 서울에 몇번 와본 적이 있어서 그의 리드를 따라 지하철을 타러 갔다.(그래도 J도 한두 번 와봤을 뿐이었다.) 3호선을 타고 교대에 가서 2호선을 타고 홍대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타보는 지하철이 낯설었지만 어리바리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걱정보다 지하철을 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3호선에서 2호선으로 무난하게 환승을 하고 지하철의 빈자리에 J와 함께 앉았다. 홍대 입구까지는 한참 남았고, 제대로 2호선을 탔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야 마음이 편해져서 잡담을 나눴다.

c0f2480d9fa194cd81f5f0731da27345.png 2003년의 지하철 노선도(출처 : 구글)


하지만 3~4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홍대 입구 역에 도착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쯤 왔나 노선도를 보고 있으니 우리는 시청쯤을 지나고 있었다. 긴장을 풀고 멍청히 앉아 있다가 홍대 입구를 지나친 것이었다. 하지만 멍하니 앉아있긴 했지만, 둘 다 존것도 아니었다. 어째서 누구도 홍대 입구역을 지나친 것을 못 느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서울에 공연 시간보다 일찍와도 너무 일찍 온 것이었다. 지금 공연을 보러 가도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노선도를 보니 2호선은 순환선이었기 때문에 J와 나는 그냥 그냥 앉아있기로 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고, 한강을 두 번 더 도하하고 나서야 우리는 홍대 입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때 봤던 라이브 공연보다 더 기억에 남는 첫 서울 여행의 추억이었다.



서울에 와서는 처음엔 강서구에 있는 화곡동과 방화동에서 각각 3개월과 1년 반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성북구의 돈암동에서 8개월째 살고 있다. 틈이 날 때마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려 노력한 덕분에, 부암동, 북촌, 종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 살고, 어디를 가든 이곳이 내 집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월세집에 살고 있기 때문일지, 나는 서울에 사는 동안은 언제나 긴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나는 언제나 서울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여행을 하는 기분이 계속 드는 건 아마, 순환선을 탄듯 화곡동에서 방화동으로, 다시 돈암동으로 서울 어딘가를 계속 빙빙 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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