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것
한국의 여름은 늘 덥지만, 올해는 유독 더 더웠던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잠시 나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몸은 땀범벅이 되었고, 햇볕은 살을 따갑게 때려댔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왔는데, 깜짝 놀랄 만큼 공기가 선선했다. 하루 아침에 가을이 온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볕도 좋고, 바람도 좋아 저녁때는 집 뒤 개운산에 올라 공기를 쐬었다. 땀은 좀 났지만 바람이 선선해 기분이 좋았다. 오늘 날씨는 마치 오클랜드에서 아침마다 도메인을 뛰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지구는 둥글다. 지식으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것을 몸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북반구에 있는 한국에서 살다가, 남반구에 있는 다른 나라에 갈 때면 이 사실을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여름이 한창인 8월 말에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에 갔었다. 상하이에서 환승을 할 때까지만해도 날씨는 정말 더웠다. 수화물 제한을 딱 맞춘 23킬로그램의 캐리어와 10킬로그램의 배낭을 매고 환승 게이트를 급히 이동하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상하이에서 환승을 하고도 8시간을 더 날아가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서늘했다. 뉴질랜드의 8월은 서울과 반대로 겨울이었다.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배낭에 넣어 둔 점퍼를 꺼내 입고 공항 버스를 탔다.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4개월이 조금 안되는 시간 동안, 오클랜드에서 겨울과 봄을 보냈다. 오클랜드의 겨울과 봄은 우리나라 의 그것과는 또 많이 달랐다. 위도로 보면 서울은 북위 37도, 오클랜드는 남위 36도로 적도를 기준으로 대칭해 위치해있지만, 기후가 전혀 다르다.
우선, 오클랜드의 겨울은 우리나라처럼 춥지는 않다. 온도는 낮아도 7~8도 정도 정도, 보통 10도 이상을 유지한다. 그래서 오클랜드의 겨울 풍경은 기묘하다. 거리엔 패딩을 입은 사람과 반팔을 입은 사람이 공존했다. 누군가에게는 시원하게, 누군가에게는 춥게 느껴질 수 있는 날씨인 것이었다.
춥지 않다고 해서, 날씨가 '좋다'고 말하긴 힘든 게 뉴질랜드의 겨울이다. 늘 비가 오고 그치길 반복했고, 해를 잘 볼 수 없었다. 비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니, 우산을 가지고 다니기도, 안 가지고 다니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비는 많이 왔지만 우산은 오히려 필수품이 아니었다. 비가 와도 곧 그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건물 아래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거나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며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먹구름이 가득 낀 풍경이, 오클랜드의 겨울을 나타내는 모습이었다.
오클랜드에 겨울에 처음 도착해, 집을 구하고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니 몸이 근질거렸다. 아침 9시 반에 시작되는 어학원에 가는 것이 여유롭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 아침에 30분씩 일찍 일어나 집 근처의 도메인(오클랜드 중심부에 위치한 큰 공원)을 뛰기로 했다.
겨울이지만 많이 춥지 않아서 운동복은 반팔과 반바지로 충분했다. 그랩톤 다리를 지나 오클랜드 시티 병원을 지나면 금세 도메인이 나왔다. 산책로를 따라 쭉 뛰다가 오클랜드 박물관이 있는 언덕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뛰어 온 곳을 되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껍질을 깐 골드키위 하나를 요거트에 넣어 식빵 두 쪽과 함께 아침으로 먹고 샤워를 했다.
언제나 먹구름이 가득 낀 풍경이, 오클랜드의 겨울을 나타내는 모습이었다.
오클랜드에서 생활한 네 달 조금 안되는 시간 동안 했던 모든 것 중에, 이렇게 매일 아침에 가볍게 운동하고 아침을 먹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런 사소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마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일상적 여유'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클랜드의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때로는 비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 좋았다.
오클랜드는 겨울에서 봄이 될수록 날씨까 점점 좋아진다. 비가 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맑은 하늘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햇볕이 쨍쨍해지고 날씨가 따뜻해졌다. 오클랜드에 오래 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오클랜드의 가장 좋은 점은 여름이라고 했다. 매일 날씨가 좋고, 비가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은 여름 때문에 여기에 산다고도 했다. 3개월간 한국의 가을 날씨가 계속된다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클랜드의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때로는 비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 좋았다.
귀국하는 날이 정해지고, 한국에 돌아올 준비를 하면서 워킹 홀리데이 생활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필요 없는 물건을 중고로 인터넷에 팔고, 플랫에 나간다고 미리 말을 하고, 은행 계좌를 닫았다.
동시에 나는 매일 도메인을 뛰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 곳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맞았다. 오늘 하늘과 공기는 도메인을 떠올리게 했고, 이런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시즌마다, 매년마다, 나는 도메인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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