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ㄱㄷㅎ 11-4

by 매일의 기분


26.
나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국어국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꽤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재수해서 어렵게 들어간 대학인데다(고3때 지원한 모든 대학 떨어짐), 좋아하던 것을 배우다보니 자부심이 생겼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자(당시엔 카톡 없었음)를 보낼 때 맞춤법은 물론 띄어쓰기까지 맞춰서 보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문학도로서 나름의 자존심(?)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강박 비슷한 게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다리가 '얇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것 따위다. '너 참 다리가 얇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며 속으로 '얇다-두껍다는 두께를 표현하는 말이고, 굵기는 가늘다-굵다로 말해야 해'라는 생각을 꼭 하곤 한다. 물론 갑분싸 메이커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입 밖으로 뱉지는 않고 있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피카추, 주스, 콘텐츠 등 외래어 표기법과 로마자 표기법을 최대한 지키려고 한다는 것 등등이 내가 나름대로 가지는 국문학도로서의 자부심이다. 여권도 성씨인 '김'을 'GIM'으로 표기했는데, 이것도 로마자 표기법에 의거한 정확한 표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나도 맞춤법 틀리는 경우가 정말 많긴 하다.)



27.
전공부심에 이은 패부심에 대해 말해볼까. 나도 패잘알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패션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대부분의 옷은 검은 색으로 산다는 것이다. 무조건 검은 색을 사고, 비슷한 게 있다면 차콜 > 회색 > 네이비 순으로 선택한다. 거기에 더해 양말과 신발은 밝은 색을 선호한다는 것! 양말은 무조건 흰색만 신으며, 똑같은 걸 5켤레씩 사서(여름 / 겨울용) 신고 있다.

물론 이런 철학은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이상한 옷을 사며 돈을 버리다가) 생긴 것이다. 아마 당분간은 저런 것들이 변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취향도 바뀌겠지?


이런 글을 써두고 좀 바보같은 내용인듯하여 업로드 전에 지우려고 하다가 그냥 남겼다.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에 나와서 한 말 중 인상적인 말이 "말과 글을 써 봐야 자기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도 알게 된다"는 것이었는데,(물론 방송이 아닌 캡처로 봄) 지금 상황에 딱 적절한 것 같아서 그냥 업로드 한다.



28.
매주 수요일은 성당에 가서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받는 날이다. 교육에 가니 신부님께서 성당의 예비신자 교리교육이 다음 주에 끝난다고 하셨다.(세례는 크리스마스날 받음) 7~8개월여 간의 긴 교육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문득 내가 성당에 오게 된 계기를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전에도 몇 번 블로그에 썼는데, 내가 성당에 다니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이었다. 그 경험 속에서 내 나름대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긍정, 인정하게 되며 종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나 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에 팜플로냐에서 용서의 고개(alto del perdon)로 가는 길에 지나던 밀밭에서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야말로 하느님의 부름이 아니었을까. 처음에 예비신자 반에 등록을 하며 성당에 가게 된 것이 순수한 나의 의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이 또한 하느님의 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를 갖게 되니 예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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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평일에는 적어도 하루 10,000보는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건강을 위해서인데 너무 적게 걸은 날은 어쩐지 죄책감+찌뿌둥함을 느끼곤 한다. 핸드폰 내 S헬스 어플로 보면 보통 10,000보를 걸으면 10km 정도를 걷게 된다. 1보에 1미터 정도라는 계산인데, 무언가 명쾌하고 단순한 듯 보여 기분이 좋아진다.



30.
천주교에 귀의하게 되고 변한 것 중 하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겁이 좀 많은 편인데, 특히 높은 곳에 공포가 심해(고소공포증) 비행기를 탈 때도 아주 힘들어하는 편이다.

같은 맥락에서 귀신같은 것도 막연히 무서워하는 편이었는데,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고는 그 두려움이 아예 없어졌다. 하느님 외에는 잡신이라던가, 기도문을 외면 귀신이 없어질 것이라던가 하는 엑소시즘적인 생각은 아니고, 정말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이나 마귀는 결국 사람 마음 속에서 생겨나 그 사람을 삼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깊이 깨닫고 나니 귀신같은 존재는 있다한들 사람보다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속담같은 얘기다.(어쩐이 이솝우화풍으로 끝났네...)



1.
어제(금요일)는 회사가 끝난 뒤 여자친구와 만나서 데이트를 했는데, 밥을 먹으러 간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너무 심하게 떠들었는데,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심하게 웃다가 나에게 젓가락을 던진 것이다.(ㅡㅡ...)

젓가락과 음식물이 옷에 맞아서 튄 것도 짜증났지만, 그게 계속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라더 더 짜증이 났다. 원래 그런 일이 생기면 괜찮다고 하고 넘어가는 편인데, 그때만큼은 화가 나서 '조심히 좀 하세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에게 젓가락을 던진 사람이 작게 "짜증나"라고 말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더 화가 났다. (사과를 하면 당연히 받아줘야 한다고 믿는 건가?) 물론 대거리를 하거나 하는 일은 없이 그냥 넘어갔는데, 그 사람들은 전보다 더 크게 떠들었고 음식도 늦게 나와서 어쩐지 모든 상황이 싫었다.

문제는 그런 기분을 내가 계속 티를 냈다는 것이다. 계속 화와 짜증이 섞여 있는 내 모습에 여자친구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저녁 시간이 좀 엉망이 되었다.


여차저차해서 여자친구에게는 사과를 했는데, 지나서 생각할수록 내가 한 행동들이 부끄러웠다. 마치 중학생처럼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집에서 엄마와 싸우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다고 할까... 어쨌건 나 자신이 너무 미성숙하게 느껴졌다.

그런 여파인지 토요일에 집에서 쉬며 낮잠을 자는데 여자친구와 계속 심하게 다투는 꿈을 꿨다. 자는 둥 깨는 둥 집요하고 지치는 악몽이었다. 잠에서 깼는데 개운함보다는 불쾌함과 울적함이 심하게 남았다.



2.
지난 9월, 천주교 서울순례길 1코스를 걸었다. 명동성당에서 종로-혜화동(가톨릭대)-북촌으로 가는 코스였는데 꽤 즐거운 기억이었다. 일요일에는 여자친구가 2코스를 걷자고 제안해서 2코스를 걸었다. 2코스는 크게 광화문에서 시작해 종로를 거쳐 시청을 시나 서소문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별도로 포스팅 했으니 그쪽을 참고하면 될 듯.
(걷기 전 인사동에서 자장떡볶이를 먹었는데, 내 돈주고 처음 사 먹는 자장떡볶이였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는 달리 자장떡볶이는 정말 맛있었다.)

해가 부쩍 짧아진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 오후 4~5시가 넘어가니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6시가 넘어가니 완전히 깜깜했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쓸쓸함이 좋게 느껴지는 주말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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