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ㄱㄷㅎ 12-2

by 매일의 기분


10.

퇴근 직전 갑자기 분위기 회식이 되어 버려서 아조시 동료 2명과 함께 노량진에 가서 술을 먹었다. 노량진에 가본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노량진 특유의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느끼니 갑자기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특정한 분위기와 공기, 냄새같은 것은 특정한 기억을 자극하곤 하는데, 노량진에 있는 사람들의 본인들도 어쩔 줄 몰라하는 젊음의 열기같은 것이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과식을 하였다.)




11.

ㅎㅅ 동료(남)와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동료가 페미니즘에 대한 깊은 적의를 드러내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의도가 뭔가 당황해서 듣고 있는데, 알고보니 단톡방에서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다른 남자와 한창 설전을 벌이다 온 듯했다.


나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입장이어서 조금 불편하게 듣긴 했지만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은 사이이기 때문에 또 설전을 벌여서 좋을 것도 없고. 하지만 그런 혐오성 발언들은 분명 내게 깊게 남았다. 앞으로 동료를 떠올리면, 그러한 혐오 발언을 흥분해서 쏟아내던 그 모습부터 떠오를 것 같았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게 되는 근거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소한 양보나 친절, 배려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12.

아침마다 먹는 유산균 건강 보조제가 있는데, 저렴하게 나온 김에 여자친구에게도 하나 사서 보내주었다. 택배를 받은 여자친구가 무척 좋아하는데, 정말 내 마음까지 행복해졌다. 선물을 줄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이 있는 것에 새삼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오늘이 예비 신자 교리 교육 마지막 시간이었다. 대략 5월 중순부터 시작해 7~8개월간 계속된 교육이 끝나게 된 것이다. 사실 세례가 아직 남았기 때문에 끝난 기분은 딱히 들지 않았다. 어쨌건 일주일에 2시간 정도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시작할 때 6명이던 우리 반 멤버가 단 2명만이 남았다는 것이 그 반증이기도 하고.


꾸준함이 갖는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000.jpg 스타벅스에서 빨대를 주지 않는 대신 이런 걸 만들었다. 환경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점이 멋지다.




13.

네이버 웹툰에 '홍차리브레'와 '화장 지워주는 남자'라는 작품이 있다. 다루는 소재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좋아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웹툰인데, 작가가 상당히 PC(political correctness)하기 위해 노력하는 웹툰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좋아한다.


그런데 그 웹툰의 댓글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그 이유는 독자들이 '이 웹툰이 얼마나 PC하고, 다소 PC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지' 샅샅이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급식툰의 대부분은 PC라는 요소가 조금도 없는 것들도 많은데, 그런 작품에는 얼씬도 안 하면서 오히려 이런 작품에는 파리처럼 끼어 '이 작품이 얼마나 PC한지 평가하거나, 이 작품에 조금이라도 PC하지 않은 부분은 어떤 부분인지' 매주 품평회를 열고 있다. 내가 작가라면 매주 댓글을 보면서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그런 것과 함께 매주 전주 대비 몇 컷이 늘었나 줄었나를 세고 있는 댓글들도 많고. 예전에는 베댓에 재미있는 드립이 많아 그것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는데, 최근 네이버 웹툰의 댓글은 그저 고나리질을 하기 위한 것으로 전락한 것 같다. 그런 댓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마 자신의 삶에 대해 남이 조금이라도 평가를 하면 거품을 물고 욕할 것이다. 과거에 비해 창작자와 향유자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이 마냥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리보이의 노래가 너무 좋다. 딩고 프리스타일에서 발행한 기리보이의 프리스타일 영상을 보는데 새삼 '빈집'이 너무 좋아 계속 듣고 있다. 기리보이 특유의 가사가 내 취향(성향)에 꼭 맞는 느낌이다.


※ 좋아하는 가사들 : 너의 취향 머리를 다듬지(키스), 요 며칠 사이에 난 니 생각만 했어(ZOA), 가족과 너가 물에 빠짐 널 구해야겠어 엄마 미안해 엄만 아빠가 구해줄거야(후레자식), 돌아와 돌아버리기 전에 눈물 셀카 올리기 전에(관종)



14.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끼리 익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블라인드 어플에 얼마 전 어떤 남자 직원이 글 하나를 올렸다. 우리 회사의 여직원 하나가 '페미니스트'라고 적혀 있는 패딩을 입고 출퇴근을 한다는 것.

그 글을 읽으며 '왜 우리는 왕국의 음탕 대신 갈비탕 하나에 옹졸하게 욕을 하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글을 올린 그는 '페미니즘'이 '완전히 틀리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정의의 사도'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댓글을 읽어보니 다른 대부분의 사람의 눈에 그는 그저 10원짜리 갈비탕 하나에 분개하는 옹졸한 인간으로 보일 뿐이다. 그는 아마 그 사실을 평생이 가도 모르리라.

저녁에는 오랜만에 스승님을 만났다. 한 쪽만 노력하는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노력하지 않는 쪽은 이러한 고민을 모르겠지만.

15.

여느 때처럼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명동 성당에서 미사를 봤다.

영성체 시간이었는데, 앉은 자리 뒤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니 10대 후반 ~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애 하나가 봉사자님과 가벼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성체를 받은 남자애가 그걸 모시지(입에 넣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려다 들킨 것처럼 보였다.

봉사자님이 그걸 발견하고 왜 모시지 않고 가져가는지를 캐물으니 한다는 말이 "오랜만에 와서 까먹었다" 고 ㅡㅡ... 솔직히 천주교 예비신자인 내가 생각해도 오랜만에 왔다 한들 결코 까먹을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행동한 그 남자애의 의도가 정말 궁금했다. 결국 그 남자애는 성체를 봉사자님께 넘기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올해 성체 훼손 사건도 있었고, 그걸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비신자에게야 아무 의미 없는 밀떡이겠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큰 의미를 가지는 게 성체다. 종교 자체가 믿음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크다. 정말 그 남자애가 어떤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01.jpeg 명동성당의 구유.


16.

데이트로 어딜갈까 고민하다가 동묘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구제 옷 구매를 목적으로) 동묘 구경이 재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전에도 두어 번쯤 간 적이 있는데, 갔을 때마다 이야기에 비해 별로 볼 게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유는 노점들만 봤기 때문이었는데, 노점에는 사실 딱히 살 만한 게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좀 찾아보고 갔고, 구제 상점 위주로 돌아다녔더니 구경거리도 많고 살 만한 것들도 많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좀 깔끔쟁이 경향이 있어서 옷은 결국 사지 않고 수입과자만 사긴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구제 숍에서 옷을 많이 산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을 하며 얼마간 머무르며 필요한 옷들을 이런 곳에서 저렴하게 구입하는 듯 보였다. 특히나 갑작스레 추워진 한국 날씨에 두터운 옷을 구매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동시에 힙해보이는 젊은 사람들도 구제숍에 많이 왔다. 아마 이곳이 그들만의 핫플레이스인듯 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두 부류의 사람이지만 이곳에 오게된 과정이 전혀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저런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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