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가 갖는 매력
나의 첫 음악 감상은 테이프와 함께였다. 중학교 때 처음 박지윤, 자우림, 롤러코스터 등등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가수들의 테이프를 처음 사봤다. 누나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빌려서 테이프로 노래를 들었다.(그때 친구가 산 mp3 플레이어는 '16메가'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집의 일을 도와 받은 용돈으로 파나소닉의 CDP를 샀다. 일부는 정품 CD를 사서, 일부는 다운로드 받아 구워서(mp3파일을 구운 것을 재생할 수 있는 CDP였다)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mp3p를 샀던 것 같다.(요즘은 보통 스마트폰의 스트리밍으로 보통 듣고 있다.)
저런 얘기만해도 한참 옛날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더 옛날에는 LP라는 것으로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나도 몇 번 LP를 통해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건 일상적인 것이 아닌, 무척 특별한 경험들 중 하나였다. 대략 1980년대 이전이 LP의 전성기였고, 80년대 이후로는 CD가 등장하며 LP는 쇠퇴했다.
2005년에는 국내의 마지막 LP 생산공장이었던 '서라벌 레코드'가 폐업하며, 국내의 LP산업의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그 당시 LP 애호가로 유명했던(그의 첫 앨범 제목엔 LP의 평균 무게인 '180g'이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DJ soulscape가 '서라벌 레코드' 폐업에 아쉬움을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현재는 2011년 'LP팩토리'라는 생산 공장이 창업해 끊어진 LP산업의 명맥을 다시 잇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사양 산업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어가 가지는 보수성 덕분인지, 음악 용어에는 아직도 LP에서 유래된 것들이 꽤 많다. 음악의 유통 시장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변화했지만, LP에서 사용되던 용어들이(조금은 뜻이 바뀌었지만) 화석처럼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본래 '싱글'single이란 용어는 7인치의 LP를 뜻하는 말이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란 LP는 12인치로 회전수는 33(33rpm), 앞뒤로 약 4~50분 정도로 음악을 수록할 수 있다. 하지만 7인치의 LP는 그 크기가 작으며, 회전수는 45(45rpm)로 앞뒤로 두 곡을 수록할 수 있다. (7인치 LP는 모양이 도넛을 닮아 '도넛판'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왜 12인치 LP 말고도, 7인치 싱글이 생겼을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제작비의 문제였다.
시대가 변했지만, 음악 산업의 구조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 데뷔하는 신인가수들도 '디지털 싱글'(이 용어에 '싱글'의 개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다.)의 형태로 1~2곡의 노래를 먼저 발표해본 뒤 어느 정도의 반응이 있으면 풀렝스(full length)의 앨범(정규 n집)을 발표한다. 수많은 =가수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제작사의 입장에서도 신인에게 선뜻 거액을 투자하기란 힘든 것이다.
7인치 싱글도 이와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문제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새로 데뷔하는 가수나 밴드의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비슷하지만, 7인치 싱글은 라디오의 DJ나 방송국에 홍보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본래 '싱글'single이란 용어는 7인치의 LP를 뜻하는 말이었다.
예전 방송 시스템은, 요즘과 같이 스트리밍으로 간편하게 노래를 틀 수 없었다. 실물 LP가 있어야만 음악의 송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방송국과 라디오에 12인치의 LP를 보내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워, 어떤 앨범의 핵심 트랙 1~2개만 담은 7인치 싱글을 제작, 배포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정규 앨범에서 히트한 몇몇 곡만을 모아 싱글로 재발매를 하는 경우다.(당연히 판매 수익금을 얻기 위함이다.) 한국 가요계를 생각하면 '타이틀곡'으로 따로 앨범을 내는 격이다. 하지만 팬들도 정규 앨범에 있는 노래 2개를 뽑아서 다시 앨범을 낸다고 꼭 그 앨범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어차피 그 곡들은 모두 내가 가진 앨범에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 B-side의 개념이 등장한다.
7인치 싱글은 앞서 말했다시피 2곡의 노래가 들어간다. 그리고 LP는 특성상 앞과 뒷면을 뒤집어 노래를 재생한다. 그런 LP의 두 면을 A-side와 B-side로 부르게 되었고, 자연히 녹음되는 두 곡은 A-side곡과 B-side곡이 된다.
A-side의 곡은 현재 가장 인기있는 곡, 혹은 소위 말하는 '미는 곡'(타이틀곡)이 된다. 하지만 B-side에 정규 앨범에 있는 노래를 그대로 넣는다면 구매의 이점이 없다. 그래서 B-side에는 보통 앨범 작업 중, 정규 앨범에 포함시키기 애매한 미발표곡, 라이브에서 공연한 곡, 다른 밴드의 커버곡 등이 들어가게 된다. 일종의 추가요소인 것이다.
팬들은 밴드의 미발표곡이나 라이브곡, 커버곡 등을 들어서 좋고, 밴드는 발표하기 애매한 곡이나 라이브, 커버곡 등을 발표해 돈을 버니 좋다. 이 B-side는 일종의 윈-윈인 것이다.(물론 와중에는 오아시스oasis 같은 정규 앨범 곡과 다름 없는 퀄리티의 B-side 곡을 발표하는 밴드도 있다.)
그리고 이 B-side의 개념은 아직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요즘은 보통, 싱글(정규 앨범 이외의 2~3곡의 곡을 담은 앨범) 속에 포함되었지만, 정규 앨범에는 포함되지 않은 곡들을 B-side라고 부른다.
혹은 자신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정규) 앨범이 발매될 때 추가곡 형식으로 특별히 수록되는 곡들도 B-side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은 영국이나 미국의 밴드가 일본에서 앨범을 낼 때 이런 추가곡들이 수록된다.(일본의 음반 시장이 전 세계 2~3위 수준이라 그렇다. 최근 유난스레 방한하는 헐리웃 스타들이 많은 이유와 흡사하다. 한국의 영화 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B-side의 뜻은 남아 있지만, 과거와 같지는 않은 것이다.
어쨌거나 그러한 비주류적인 속성 때문에, B-side 곡들은 하나의 가수를 '얼마나' 좋아하느냐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빠삭하게 알고 있는 B-side 곡들에 대한 지식은 나를 더 깊이 있는 팬, 다른 팬들과는 다른 팬이 되게 한다.
그렇게 '비주류가 가진 매력' 덕분에 한정 판매되는 앨범의 가격은 치솟는다. 자신의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팬들은 구하기 힘든 앨범들을 윗돈을 주고 구매하고, 모으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 코드에 관심을 가질수록, 남들과 다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곧 나의 취향이 되고, 나의 취향은 독특하고 특이할수록 남들이 매력적으로 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비주류가 갖는 매력'은 분명 거부하기 힘든 면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B-side 노래에 담긴 사연만큼 매혹적인 것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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