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side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농담이 필요할 때

by 매일의 기분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김치찌개와 뚝배기 불고기 사이에서 한참을 고생하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김치찌개가 나온 순간 나는 뚝배기 불고기를 먹을 걸, 하며 후회했다. 이렇게 점심 메뉴를 고르는 작은 일에도 신경이 쓰이고 고민과 후회를 반복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해야만 할 때의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일테면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은 대체 무엇일까'에 같은 어려운 질문에 아주 명쾌한 해답을 내린 사람이 있다. 더글러스 애덤스. 영국의 소설가였다. 그에 의하면 그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42'라고 한다.

42


더글러스 애덤스의 대표작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를 처음 읽은 것은 스무 살, 재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재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스무 살을 무척 평이하게 보냈던 것 같다. 대학교에 가서 전에 겪지 못한 많은 일을 겪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조용하고 경건하게 재수 공부를 하며 스무 살을 견뎠다.

반대로 내 인생에서 가장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우울했던 때는 스물한 살 이었던것 같다. 재수를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 힘들고 고민이 많던 시절이라 바뀌었던 것은 아니었다. 재수하던 시절 자체는 차분하고 즐겁게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재수를 하면서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아졌던 나는 그만 철이 들어버렸던 것 같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잘 몰랐던, 고독이란 것을 인식해버렸던 거다.



스무 살에 처음 읽은 <히치하이커>는 그저 재미있는 SF소설로만 읽혔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스물 한 살에 다시 읽은 <히치하이커>는 전과 같게 읽히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보고 우주선에 히치하이크 하고 싶었했다. 농담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때부터 삶이 버거울 때면 꼭 <히치하이커>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01503059(2).jpg 이런 책이다.


전역을 하고, 자취를 시작할 때 내가 챙긴 많지 않은 짐들 중 하나가 <히치하이커>였다. 출판사 '책세상'에서는 <히치하이커>를 총 3번 출간했는데, 내가 소장한 것은 그들이 처음 냈던 알록달록한 색깔의 5권짜리 <히치하이커>였다. 이사를 하고, 좁은 방에 누워 '이제 다시 시작이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히치하이커>를 읽었다.



그 다음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온 뒤,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방전되어 있을 때, 다시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때 내가 과거에 <히치하이커>를 읽고 쓴 감상문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꼭 힘든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된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우연히 읽었는데 힘든 시기였다거나, 아님 나 자신에게 힘든 시기엔 꼭 이 책을 찾게 된다거나, 아님 내 인생은 늘 힘든 시기이거나 어느 쪽이던 간에 하여튼 이 책과 내 인생의 힘든 시기는 뗄 수 없는 문제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저 농담과 우스갯소리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1366459522054.jpg 삶과 인생에 농담이 필요한 순간들


<히치하이커> 시리즈를 읽은 사람들에게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왜 '42'냐고 되묻는 것은 옳은 질문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답과 설명이 '42'인거다. 그 명쾌함이 늘 좋아, 삶과 인생에 농담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들마다 <히치하이커>를 찾게 되는 거다. 이게 바로 이 시리즈가 가진,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가장 큰 매력이다.



이번 명절에 집에 내려갔다 올라올 때 아마 <히치하이커>를 챙겨서 올 것 같다. 삶에는 생각보다 자주 농담이 필요한 순간들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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