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과 산티아고 순례길
'밤의 피크닉'은 온다 리쿠의 수많은 소설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밤의 피크닉' 속 이야기의 큰 뼈대는, 남녀공학 '북고'에서 해마다 열리는 '보행제'(24시간동안 80km 정도를 걸어야 하는 행사)를 배경으로 한다.
'보행제'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이복남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소설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흐르는 고등학생인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반짝거림과 싱그러움이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흐름도 좋지만,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 덕분에 이 책은 언제 읽어도 나를 설레게 한다.
몇 번을 읽었지만, 유난히 새롭게 이 책이 읽혔던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에 있는 가톨릭 성지순례길로, 3~40여일 간 800km 정도를 걷는 도보여행길이기도 하다. 나는 2012년에 이 길을 걷고 왔다. 32일간 매일 2~30km 정도를 걸어 완주를 했었다.
사실 살면서 이렇게 꾸준히, 그리고 많이 걸어본 경험은 전에는 없었다. 군대에서 행군을 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최대 40km 정도를 10시간에 걸쳐 걸었던 게 다였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꾸준히 걷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잊을 수 없는 경험과 감정들이 남게 된다.
그 덕분인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밤의 피크닉'을 다시 읽었을 때, 그 전에는 알 수 없던 어떤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오래 걷는다'는 행위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공감'이었다. 나는 이 책은 처음 읽은 2006년 이래로 산티아고에 가기 전까지 서너번, 그리고 2013년(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1번 읽었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 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걸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과 묘사 그리고 어떤 것을, 순례 후에는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밤의 피크닉'의 주 이야기가 갖는 특유의 서사 구조는 '보행제'라는 '걷는 상황'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 걸어본 사람은 알고 있다. 몸의 피로가 마음에 전달되는 상황을.
그래서일까. '밤의 피크닉' 속 주인공들은 평소라면 하지 못할 말과 행동을, 보행제 속에서 해낸다.
오래 걸어본 사람은 알고 있다. 몸의 피로가 마음에 전달되는 상황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 중 하나는 '힘듦'이었다. 그 길을 걷는 일은 그저 힘들었다. 그곳에 가기 전에 산티아고에 관련된 많은 책들과 인터넷 속 순례기들을 찾아보았다. 그 길을 걷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할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지고, 아름다운 스페인 속을 걷고, 긴 길을 완주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 물론 이것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하루의 1/3 정도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묵묵히 걸은 후에야 저것들은 보상처럼 주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 중 하나는 '힘듦'이었다.
길을 떠나기 전 나는 고난과 역경에 대해서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책과 순례기에서 순례길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읽고 또 읽었지만, 그런 부분을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실제로 길을 걸으면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나니 자연스레 고통에 대한 묘사가 떠올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들떠 있던 마음은 부정적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고, 그리하여 길을 걷는 도중에 갑작스레 맞닥뜨린 고통들에 나는 무방비했다. 그래서 나는 반성하고 또 겸손해했다. 선구자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 후발 주자들에게 경고 또 경고했지만, 뒷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전까지는 그 경고를 무시했다.
본래 고통은 그런 것인가 보다. 다시 알아채기 전까지는 느낄 수 없는 것들.
여행을 떠나기 전 들떠 있던 마음은 부정적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고, 그리하여 길을 걷는 도중에 갑작스레 맞닥뜨린 고통들에 나는 무방비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우애'와 '공감' 같은 감정은 함께 느낀 고통 속에서만 살아나나 보다. 같이 반복한 실수와 실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군생활에 대해 말할때는 누구도 좋았던 경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상처와 아픔은 감정의 공명을 더욱 크게 만다는 마법의 단어들이다.
산티아고에서 느꼈던 고난과 역경은 여전히 마냥 좋은 기억만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다시금 '밤의 피크닉'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경험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해줬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늘 그 먼 길을 돌아와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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