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악연
영어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중학교부터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 영어를 배우지 않는 교육과정이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물론, 완벽히 처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알파벳 정도는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중학교 입학 전 겨울 방학에 누나(당시 중2)에게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알려달라고 했었지만 그 이상의 지식은 전혀 없었다.
중학교에 가보니 친구들의 수준은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중학교 입학 전에 학원을 다녀 영어를 배워뒀던 친구들은 그래도 좀 더 나았지만, 나와 같이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도 많았다. 선생님은 처음 배우는 아이들을 배려하며 영어 수업을 진행했지만, 이미 선행학습을 마친 친구들을 따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어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중학교부터였다.
그렇게 시험과 성적을 위해서만 배워야 하는 영어는 자연스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되었다. 성적이 잘 안나오니 자신감이 없었고, 그러니 자연스레 더욱 싫어졌고, 성적은 더욱 잘 안나왔다.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못했다. 모의고사를 보면 반도 못 맞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지도 몰라 영어 단어만 주야장천 외웠던 것 같다. 재수를 할 때도 다른 과목의 성적은 눈에 띄게 올랐지만, 영어만큼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노력을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영어에 대한 나의 자격지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 마음이 조금 바뀌었던 것은, 대학 졸업반이 되고 토익을 공부하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대학 4학년 여름 방학에 딱 1달 반 정도를 영어 공부(토익)에만 매진했다. 학교에서 개설된 오전반 토익 수업을 들었고, 토익 수업이 끝나면 혼자 도서관에 가서 종일 토익책을 보고, 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웠다.
가장 기초적인 문법들부터 새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기본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보니 비로소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저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푸는 게 답이 아니었다.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알고, 영어의 언어적 특징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었다. 영어의 품사를 외우고, 각각의 품사들은 한국어와 어떻게 다르게 문장 속에서 기능하는지를 이해하니 문장 해석이 되었다. (이런 태도의 변화는 아마 내가 국문학을 전공하며 언어에 대해 배웠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하면, 그 노력이 성적이라는 결과로 나오는 단순함이 좋았다. 예전에는 노력은 있는데 결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전에 의미없이 외워왔던 단어들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적어도 '단어를 외우는' 과정은 생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달 반 동안의 영어 공부를 끝내고 700이 조금 넘는 토익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다시 영어 공부를 멈추었다. 영어에 대한 '겁'과 '자격지심'은 줄어든 상태였지만, 영어 공부를 일상적으로 하는 일은 당연히 싫었다. 공부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영어에 '자신감'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필요할 정도로 자신 없어하는 태도만큼은 없어졌다는 것이 좋았다. 나도 더 공부를 하기만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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