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의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일의 기분 Oct 09. 2016

스카이다이빙

베를린에서 프라하로


이젠 비행기도 제대로 못 타는 겁쟁이가 되어버렸지만, 나도 엄청난 익스트림 스포츠를 했던 경험이 있다.

(비행공포증에 대한 글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189810&memberNo=156430)


유럽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의 베를린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네덜란드에서 독일을 거쳐 체코에 갈 생각이었는데, 독일의 어느 도시에 들를지는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베를린에 간 것은 순전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독일 친구들의 추천 때문이었다. 그들은 독일에서 가장 좋은 도시로 베를린을 꼽았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추천을 받아 경유지를 베를린으로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베를린은 내가 유럽 여행을 하며 들른 도시들 중 가장 인상 깊은 도시가 됐다. 첫째로는 베를린은 가장 '유럽스럽지'않은 도시였기 때문에 좋았다. 어느 곳이던 문화 유산과 오랜된 느낌이 가득한 유럽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베를린은 가장 현대의 도시스러웠다. 유럽의 뉴욕이라는 별명답게 베를린은 고층빌딩이 가득한 '도시'였고, 그 모습이 멋졌다. 내가 베를린을 좋아했던 것은, 서울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했다.

둘째로는 베를린에 있던 장벽 덕분이었다. 운 좋게도 베를린에서 묵던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과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눈 장벽은 유럽뿐만 아니라 내가 여행을 하며 봤던 어떤 것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두자.)
   

숙소 주변의 장벽 흔적.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는 장벽의 참맛을 느낄 수 없었다.


베를린의 숙소 옆자리 침대의 내 또래 남자 하나(한국인)는 나와 여행 코스가 정 반대였다. 유럽여행의 코스는 크게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쪽으로 올라오는 '반 시계방향파'와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내려가는 '시계방향파'로 나뉘었다. 나는 '시계방향파'였고, 그는 '반 시계방향파'였다.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서로 교차되었기 때문에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나는 베를린에서 꼭 가볼 곳으로 장벽을 추천했고,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를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체코에서 한 것들 중에 스카이다이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같은 숙소에 묵던 다른 한국인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체코의 스카이다이빙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저렴한 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머릿 속에 무언가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체코에 가서 스카이다이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파이를 이용해 체코에 가기 전에 스카이다이빙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다. 가격은 대략 40만원 선, 내가 가진 예산을 생각하면 조금 빠듯했다. 여행할 날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동영상 촬영(액션캠)을 제외하면 가격은 30만원 정도가 됐다. 고민 끝에 동영상 촬영을 빼고 스카이다이빙을 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경험'을 해 본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동영상 촬영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예산이 너무 부족했다.

체코에 도착해서 한인 민박에 도착하자마자 민박 사장님께 다음 날 스카이다이빙 예약을 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같은 숙소에 묵는 친구들 몇몇도 다음 날에 스카이다이빙을 한다고 했다. 가격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나는 프라하에 체류한 3일중 하루를 통으로 써버렸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은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오전 9시 30분에 숙소 앞으로 스카이다이빙 멤버 픽업이 왔고, 다이빙 장소인 교외까지 이동에 편도 1시간이 걸렸다. 총 10명의 한국인이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밴을 타고 함께 갔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장소는 아주 허접해보였다. 다 쓰러져가는 창고같은 건물에 낡아보이는 경비행기와 낙하산들이 보였다. 

스카이다이빙을 위한 경비행기는 아주 작아서 정원이 6명(조종사 제외)이었다. 이 말은 체험자들은 한 번에 최대 3명씩만 뛸 수 있다는 얘기였다. 10명이었던 우리는 3-3-2-2의 숫자로 총 4회에 걸쳐 뛰게 되었다. 

다함께 간단한 안전 교육을 받았고, 나는 두 번째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첫 팀이 복장을 갖추고 경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들이 비행기에 타서 이륙하는 모습을 보는데, 나까지 긴장이 됐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 후 점점 없어졌다. 왜냐면 비행기가 뜬 이후로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40여분이 지나고서야 하늘의 귀퉁이에서 낙하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카이다이빙은 4000피트(약 1200미터) 상공에서 하게 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여객기가 8000피트 정도의 높이로 나는데, 이 경비행기는 그것의 반정도 되는 거리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야 했기에 비행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었다. 

긴장감이 다 풀렸을 때쯤 나타난 첫 세명의 도전자는 환호성을 지르며 착륙했다. 그들은 흥분 상태로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는 말을 쏟아냈다. 사라진 긴장감이 다시 생겼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또 사라져버렸다. 그 이유는 내가 다시 비행기에 타기까지도 오래걸렸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다이빙을 할 때 썼던 낙하산을 접기 시작했다. 낙하산을 접는 데 또 30분이 걸렸다. 

하지만 다시 비행기를 탑승해야 하는 시간은 다가왔다. 작은 경비행기에 둘씩 연결된 세 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몸을 구겨 넣자 비행기는 출발했다. 경비행기는 생각보다 더 흔들리고 무서웠다. 비행기가 출발한 순간부터 나는 후회했다. 이 작은 비행기가 우리를 안전히 하늘로 날려 보내줄지 너무 걱정되기 시작했다. 굳이 돈을 내고 이런 공포를 사야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30분 정도 되는 시간동안 비행기는 계속 하늘을 향해 올라갔고, 가는 내내 나는 너무도 무서웠다.

어느 정도 고도가 되자 비행기 창문과 시계에 서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차졌다. 
 


그 순간 다이버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2분 뒤에 뛸 거라는 말을 했다. 긴장감이 극도에 달했다.

2분뒤 내 앞에 있던 다이버가 불현듯 비행기의 문을 확 열어제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려댔다. 앞팀이 비행기의 입구에 섰다 싶은 순간 그들은 냅다 하늘로 몸을 날렸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내 차례가 왔다. 다이버는 비행기 옆으로 다리를 내 놓으라고 했다. 떨리는 몸으로 다리를 내 놓은 순간 예고도 없이 다이버는 하늘로 내 몸을 밀쳤다. 
 



그리고 그 순간 느꼈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뛰기 전에 상상했을 때, 다이빙을 하게 된다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라는 개념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다이빙을 하며 드는 생각은 그저 '추락한다'는 느낌뿐이었다. 중력은 실로 위대했고, 나는 묵직하고 빠르게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무서웠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돈이 아까워서 그랬다. 낙하산을 펴지 않고 떨어지는 자유낙하는 40~50초 정도일 뿐이었다. 정해진 고도가 되자 다이버는 낙하산을 폈다. 

낙하산을 편 다음부터는 별다를 게 없었다. 그냥 놀이기구에 탄 것 같았다. 천천히 활강하며 우리가 출발했던 잔디밭으로 내려섰다. 내려오는 내내 자유낙하를 하던 짧은 순간을 되새겼다. 그것은 정말 전에 느껴본 적 없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그 뒤로는 정말 지루한 시간이었다. 먼저 끝냈다고 일부만 먼저 시내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남은 두 팀이 뛰기까지 3시간여를 그냥 기다렸다. 모든 사람의 다이빙이 끝나고 결국 프라하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5시가 넘어 있었다. 여행 중 만났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봤을 때는 사람이 많은 때는 저녁 8시에 프라하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편이었다.
 



만약 나에게 스카이다이빙을 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 해도, 나는 그것을 또 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체코를 갔던 그때 스카이다이빙을 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하지 않을 경험을 그때 해두었던 게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예산 부족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남긴 사진이나 영상은 없었지만 그 부분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남겼다면 좋았겠지만, 대신 다른 것들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contact _ napbock@naver.com

:: blog _ blog.naver.com/napbock

매거진의 이전글 비행공포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