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타운에서 오클랜드로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일주 전, 나는 혼자 남섬으로 향했다. 뉴질랜드에서 지내던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북섬(그 중에서도 오클랜드에서 주로)에만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뉴질랜드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랬기 때문에 한 번쯤은 남섬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결국 6일 정도의 일정으로 남섬을 여행하기로 했다.
오클랜드에서 크라이스트 처치로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서, 프란츠 요셉과 퀸즈타운을 들른 후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짧은 일정이었다.
(남섬 여행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도록 하자.)
6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퀸즈타운에서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 호주 콴타스 항공의 자회사이자 저가 항공사인 젯스타를 이용했다. 오클랜드에서 크라이스트 처치로 올 때에도 젯스타를 타고 왔었는데, 65불(한화로 대략 5~6만원 선) 정도로 아주 저렴했었다.
저가 항공이라고는 해도 뉴질랜드 국내선이고, 비행 시간이 짧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퀸즈타운에서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갔을 때, 발권을 하는데 직원이 비행기가 1시간 정도 연착이 된다고 했다.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했던 나는, 그럼 혹시 앞의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물었지만 아쉽게도 앞 비행기에는 빈자리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비행기를 탈 때 창가쪽 자리를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비행기가 활주로에서부터 가속하며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황홀해하는 것이 비행기를 탈 때 내가 하는 일이었다. 과학적으로 어떤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거대한 쇳덩어리가 하늘을 난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기만 했다.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중력은 언제나 짜릿했다.
'그 사건'은 비행기가 뜬 지 십여분이 되지 않고 일어났다. 기체가 뜨고 비행기가 안정되지 않아서 조금의 흔들거림이 계속 있었다. 겁이 났지만 큰 일이 있을까 싶어서 창 밖을 보면서 계속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비행기에 너무나도 큰 흔들림이 있었다. 10~15초 정도 흔들림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 기내 안은 승객들이 지르는 비명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좌석의 팔걸이를 꼭 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비명을 지를 여력도 없었다. 머릿 속에서는 이렇게 죽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 비행기가 연착이 된 것도 비행기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앞의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흔들림이 멎고 곧 기내는 안정을 되찾았다. 기장은 기체가 크게 흔들려 미안하다며 사과 방송을 했고, 승객들은 저마다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행기는 무사히 오클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 비행기의 흔들림은 지상에서 봤을 때는, 비행기가 흔들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세한 떨림 수준이었을 것이다. 수백, 수천 번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들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흔들림이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찍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던 동영상도 다시 보려면 큰 용기를 내야만 했다. 비행기를 타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상처처럼 마음에 남게 되었다.
이륙 직후 비행기가 흔들리는 일이 있고 나서도 두 시간을 더 가야 오클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가는 내내 나는 머릿속에서 드는 상상-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에 내내 고통스러웠다.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나서는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는 했지만, 이틀 뒤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지옥같았다. 아니, 예상보다 더 지옥같았다. 우선 오클랜드에서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3시간 30분동안 탔다. 시드니에서 2시간 동안 대기한 후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10시간동안 탔다.
그냥 한국에 들어가기 서운해서 방콕에서 며칠간 시간을 보내고 들어갈 생각으로 예전에 예약을 해 두었는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 괜히 예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꿎게 비행기만 더 타야 하는 상황이미웠다.
어쨌건 그렇게 비행기를 타는 1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고작해야 1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다. 그나마도 잠시 잠을 들었다가도 비행기가 떨어지는 악몽을 꾸며 잠에서 깨어났다. 비행기를 타는 내내 나는 불안했다. 특히 방콕에 착륙할 때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30여분 동안 방콕 하늘 위를 빙빙 돌았는데, 그것도 정말 끔찍했다. 비행기를 타는 일 자체가 두렵게만 느껴졌다.
방콕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5시간 동안도 물론 잠을 한 숨도 못잤다. 이, 착륙시가 특히 무서웠고, 손에 난 땀으로 잡고 있던 쿠션이 축축해졌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사건 이후로 나는 이렇게 비행기를 타기 힘든 몸이 되었다. 비행공포증이 생긴 것이다. 지난 7월에 대만을 다녀올 때도 비행기를 탈 때 너무 겁이나서 비행기를 타는 시간 내내 바짝 얼어 있었다. 이제 창가쪽 자리는 무서워서 엄두도 못 내겠다.
비행기를 탈 때 늘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구경하는 게 취미였던 사람이 한순간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을 생각하니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트라우마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지 않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극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튜브로 비행기의 작동 원리에 대한 영상을 보거나(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비행공포증 극복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다음번에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될 때는,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수면제를 받아 볼 계획이다.
극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늘 두려움에 떨며 비행기를 타게 될지는 모르겠다. 모쪼록 이곳에 비행 공포증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글을 쓰게 될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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