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side

불새

오랫동안 읽고 싶던

by 매일의 기분


오클랜드에서 지낼 때, 도서관에서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영어로 된 책들을 빌려봤었다. 그때 빌려 본 책들 중 하나는 데즈카 오사무의 <아야코>였다. 전부터 보고 싶던 작품이었는데 국내에는 절판이 되어 구할 길이 없었는데, (영어판이었지만) 오클랜드 도서관에 있기에 빌려서 읽었었다.

그 전에는 소설을 빌려봤었는데, 영어 원서 책을 처음 읽어보는 거라 읽기에 쉽지가 않았다. 반면 <아야코>는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그림과 함께 보니 읽기에 훨씬 편했다. 무엇보다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재밌던 것은 아야코의 할아버지가 쓰는 말들에 표준어가 아닌 줄임말(ain't, em 등) 등이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이가 많은 캐릭터를 살리는 일종의 번역의 묘미였던 것 같다. 그때 처음 보는 구어식 영어 표현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무튼 저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던 말은 내가 예전부터 꽤 오랫동안 데즈카 오사무의 팬이었다는 것이다. 시작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만화를 한창 좋아하던 때라 일본 만화의 아버지라는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서 그의 작품 몇몇을 구매했었다. 물론 나도 애니메이션으로는 아톰이나 레오 등을 봤었지만, 그것들은 단지 추억 속의 만화영화일 뿐이었다. 제대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읽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산 작품들 중 하나가 <아폴로의 노래>였다. SF와 불교를 적당히 섞은 듯한 이 작품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그 덕분에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하나씩 찾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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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이나 <리본의 기사>같은 작품에는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돌프에게 고한다> 같은 경우는 무척 좋았다. <아돌프에게 고한다>의 소재와 주제 의식은, 2차 대전의 전범국 중 하나인 일본에서 자고 나란 사람이 창작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 말로만 들어왔던 <불새>를 읽게 되었다.



데즈카 오사무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불새> 또한 한국에서는 절판되어서 쉽게 구할 수는 없었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2011년 재발매 되어 인터넷 서점에서 박스세트로 판매 중이다...인생이여 ㅠㅠ) 하지만 전자책 대여라는 획기적이 시스템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권당 700원이라는 저렴한 값에 <불새>를 모두 읽게 되었다.(데즈카 오사무의 다른 작품들도 이제 전자책을 통해 쉽게 읽을 수 있다. 테크놀러지여 만세!!)

며칠에 걸쳐 17권의 <불새>를 전부 읽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은, 역시 <불새>의 명성은 허황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불새>는 비단 데즈카 오사무만이 아니라, 일본 만화사에 있어서 길이 남을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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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가깝게 잘 짜여진 줄거리와, SF와 역사와 판타지의 절묘한 조화는 이 작품이 처음 선보이게 된 지 6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한다. 특히나 충격적일만큼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연출들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놀라게 했다.

줄거리에 대한 세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큰 재미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54년부터 <불새> 연재를 시작해서, 틈틈히 작품을 발표해 1980년대까지 계속 작품을 냈다는 것이 멋졌다. <불새>는 데즈카 오사무의 '인생작품'이었던 셈이다. 현재의 17권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가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후로도 몇 권이 더 나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노릇이다.



오랫동안 읽고 싶던 작품을 읽은 것도 즐거운데, 그 작품이 정말 걸작이었다는 것 만큼 나를 즐겁게 하는 게 있을까.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는 내가 만화를 읽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왔다는 것에 다시 한 번 확신을 가지게 해 주는 좋은 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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