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상인
홍대의 젤라또집 '올드 브릿지'가 작년에 새로 열고나서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갔었다.('올드 브릿지'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탈리아의 젤라또 가게다.) 이젠 길거리에서도 쉽게 젤라또 가게를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올드 브릿지에서 먹는 쌀맛 젤라또는 무언가 특별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이탈리아에 갔을 때는 올드 브릿지에 가보지 못했다. 내가 간 날이 딱 성모 대축일(8월 15일)이어서 로마의 많은 가게들이 장사를 하지 않았었다. 올드 브릿지도 마찬가지여서, 바티칸 시티 투어를 마치고 올드 브릿지 앞을 지날 때 닫을 문을 보고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하루 더 늦게 왔다면 바티칸 시티도 못 들어갈 뻔한 걸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숙소(한인 민박) 근처에 있던 파씨(역시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젤라또집, 이것도 요즘은 한국의 백화점에 들어와 있다.)는 2~3번 정도 갔었던 것 같다. 올브 브릿지를 못 갔으니 대신 여기라도 많이 가자는 마음으로 함께 숙박하던 한국인들과 몇 번이나 몰려서 갔었다.
이탈리아는 내 유럽 여행의 막바지여서 굉장히 여유롭게 다녔었다. 2달 가까이 여행하면서 쌓인 피로 때문에 많이 움직이기 싫었고, 그래서 오전 일찍부터 돌아다니고 나서 3~4시쯤엔 숙소에 들어와서 쉬곤 했다.
그렇게 여유롭게 로마에서의 있던 이틀차 저녁에, 여느 때처럼 침대에 누워서 웹툰을 보고 있는데 옆방의 한 아저씨(40대 정도로 보임)가 숙소에 있던 남자아이들에게 젤라또를 사준다며 파씨에 가자고 했다. 할 일 없이 쉬던 다른 친구들과 같이 이게 웬 떡이냐 싶은 마음으로 아저씨를 따라갔다.
따라가면서 아저씨와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가 생각보다 꽤 재밌었다.
아저씨는 일종의 불법 거래상이었다. 물론 불법이라곤 해도, 마약같은 것을 한국에 들여가는 심각한 범죄자까지는 아니었다. 그는 간단히 말하면 명품을 싸게 사서, 한국에 가져와 다시 되파는 사람이었다. 이탈리아의 아울렛에서는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각종 명품을 싸게 팔았다. 아저씨는 그곳에서 물건들을 사온다고 했다.
하지만 아울렛이었기 때문에 물건들의 질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울렛은 잘 팔리지 않는 상품들을 싸게 파는 곳이었기 떄문이었다. 아저씨는 그 아울렛에 가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명품들을 잘 찾아서, 그것을 싸게 산다고 했다. 물론 쉽게 찾기는 힘들었지만, 운이 좋다면 정말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굳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하자면 '탈세'를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관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쌀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듣는 아저씨의 얘기는 꽤 재밌었다. 매일 로마 외곽에 있는 아울렛에 가서 명품 더미를 뒤적이는데, 좋은 물건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전에 보지 못한 일들로 돈을 버는 사람을 보니 신기했다. 우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던 것도, 좋은 물건 하나 나오라는 의미로 선심을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저런 일로 돈벌이가 될까 궁금했던 나는 아저씨에게 얼마나 버냐고 물어봤지만, 역시 그가 한 말이라고는 '니들 아이스크림 사줄 만큼은 된다'는 것이었다. 젤라또를 다 얻어 먹고는 다시 숙소에 돌아왔다.
다음날 나는 다른 날과 다름 없이, 평범하게 로마를 관광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오기 전, 스페인 광장 앞 명품 거리에서 아저씨가 전날 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명품샵에 들어가 보았다. 작은 것이라도 기념으로 사볼까 했지만, 그런 것들조차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비쌌다. 결국 그라찌에를 외치며 조용히 샵을 나왔다.
밤에 숙소에 돌아가 아저씨에게 좋은 물건을 건졌냐고 물어봤지만, 아저씨는 오늘은 관광을 했다고 했고 아울렛은 내일 간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로마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과연 아저씨가 그 다음 날 좋은 명품 물건을 싸게 사서 한국에 돌아갔을까? 그리고 세관을 통과할 때 안 걸리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지금도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 그런 것들이 아직도 궁금하지만, 알 수는 없었다.
어쨌건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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