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에서의 마지막 날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여행을 함께 가면 싸울 수도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동창 A와 짧은 일정으로 일본(큐슈)에 간 적이 있다. 며칠간의 기싸움과 다툼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은 각자 돌아다니기로 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먹고 오자는 생각에, 나는 일정을 촘촘히(다른 말로는 빡세게) 구성을 했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는 일을 2~3일 반복하다보니 A도 뿔이 났다.
결국 A는 내일이 마지막 날이니(한국에 돌아오기 전날) 각자 보고 싶은 걸 보자는 식으로 돌려서 말을 꺼냈다. 나 또한 함께 다니는 것에 조금 지쳐있었기 때문에 쉽게 수락을 했다.
큐슈에서의 마지막 날은 후쿠오카에서만 보냈다. 그 전날과 전전날, 나가사키와 쿠마모토를 오고가느라 하루에 몇 시간씩 버스에 앉아 있었더니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후쿠오카 돔과 호크스타운, 후쿠오카 타워 등을 들렀다. 둘이서 다닐 때는 티격태격해도 말할 사람도 있고 재미있었는데 혼자서 다니니 갑자기 쓸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홀가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묘한 감정이었다.
어쨌건 각자 돌아다니기로 했으니, 내가 더 좋은 것을 많이 봐야겠다는 경쟁심(?)도 생겼다. 그래서 이날은 하루동안 정말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캐널시티, 유니클로, 하카타 포트 타워 등으로 쉴새 없이 돌아다녔다.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것을 해 보고 싶어서 회전 초밥도 먹어보고, 유니클로에서 옷도 사고, 온천~동네 목욕탕쯤 되는 곳도 들어가 보았다.
오후 3~4시가 넘어 텐진으로 돌아와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현지인이 말을 걸었다. 내가 일본인인 줄 알고 말을 거는 것 같아서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일본어(와타시와 칸코쿠진데스)로 '나는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그가 이해했다는 듯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NO!!>라는 잡지를 만드는 회사의 직원인데, <NO!!>에서는 매달 '100인의 XX'라는 테마로 100명의 사진과 간단 인터뷰를 싣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달 컨셉은 '100인의 모자'인데 내 모자가 재미있다며, 간단히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스냅백이 지금처럼 유행하기 이전)
-잡지 <NO!!>와 잡지사 직원
처음에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 조금 경계가 되었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는 우선 내 이름과 나이, 출신, 직업 그리고 모자의 포인트 등을 간단히 적어서 달라고 했다. 영어로 적을까 하다가, 일본과 우리는 한자를 함께 쓰고 있다는 생각에 이름과 출신 등은 한자로 적어 주었다.
간단한 프로필을 적고 나니 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러면서 자기네 잡지는 규슈지역에서 나오며 매달 20일에 출간된다고 했다. 내 간단 인터뷰도 그달의 20일에 발매되는 호에 나올 거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 잡지는 규슈지방에만 나왔고, 또 어떻게 구매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아쉽지만 내가 나온 부분을 찾아볼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현지인과 인터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혼자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으로 숙소 근처에서 덮밥을 먹고 7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갔다. A는 없었는데, 나도 다시 나갈까 아님 그냥 쉴까 고민하는데 A가 다시 들어왔다. 하루동안 따로 다니고 나니 각자 깨달은 것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우리의 많은 감정들은 이미 풀려 있었다. 역시 마음이 꼭 맞지 않아도 친구와 함께 다니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후쿠오카의 야타이(일본식 포장마차)를 가보지 못해서 함께 가보자고 하고 숙소를 나왔다. 우정 회복의 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야타이는 없었다. 호텔의 직원에게 어찌어찌 물어보니 설 연휴기간이라 포장마차들이 다 닫았을 거라는 얘기를 했다. 결국 우리는 뻘쭘한 얼굴로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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