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side

피아노의 숲

인생을 바꾼 만화

by 매일의 기분


얼마 전 일본의 모 문예잡지에서 '인생을 바꾼 만화'라는 앙케이트를 했는데, 1위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가 뽑혔다고 한다. <슬램덩크>는 그 자체로도 물론 훌륭한 만화지만, 사회적 영향(이 만화 덕분에 일본 고교 농구 시장이 크게 흥했다고 한다)까지 있었던 덕분에 1위로 뽑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만화를 정말 좋아하고, 만화에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았다. 당연히 내 인생을 바꾼 만화도 존재한다. 그것은 <피아노의 숲>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피아노의 숲>은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을 바꾼 만화로 꼽자면 역시 이 작품을 꼽을 수밖에 없다.

maxresdefault.jpg 짜ㅡㄱ


나는 어려서부터 계속 시골에서 자랐다. 우리 동네는 10가구 남짓만 사는 작은 곳이었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5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다녔다. 전교생이 100명 정도 되는 작은 초등학교였다. 덕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문화적으로 무언가를 향유 할 게 거의 없었다. 컴퓨터도 아직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TV를 제외하면 문화적인 '무언가'를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시내로 통학을 하기 시작했다. 버스로 편도 20분 정도가 걸렸는데, 그때 처음 문화 생활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한창 대여소 붐이 일던 시절이었는데, 우연히 빌려 본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를 계기로 만화와 소설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만화책이며 소설책(판타지)을 닥치는대로 빌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 마지막 겨울 방학에 내 인생을 바꾼 만화 <피아노의 숲>을 만나게 되었다.


피아노의.숲.Pⓘa_004.jpg 숲의 피아노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었다. 고등학교 입학(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방학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놀겠다는 결심을 하고 닥치는대로 만화를 빌려 봤다. 그리고 그 중에 끼어 있던 만화가 <피아노의 숲>이었다.

선천적인 피아노 천재 '이찌노세 카이'의 이야기에 나는 너무나 깊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느꼈다. 만화라는 게 심심풀이 시간때우기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만화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 뒤로 더 좋은 만화를 보기(찾기)위해 만화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나는 앞으로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학년때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서 여름방학즈음부터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쉽게 허락해주셨지만 매달 2-30만원씩 내는 학원비에는 곤혹스러워 하셨다. 거기에 더해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때 미술에 재능이 있던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잘 했던 분야는 수학과 과학같은 이과계열이었는데, 학원에 다니며 배운다고 해서 없던 미술 실력이 생기지는 않았다.

미술 학원은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계속 다녔지만, 내가 늘 느껴야 했던 것은 열등감뿐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학원을 다녔지만, 학원에 빠지고 피시방에 가는 아이들보다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미술학원에 다니니 자연스레 성적도 떨어졌다. 결국 3학년 마지막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미술(만화)을 하는 데 재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술을 그만두고 재수를 하게 되었다.

Piano.Forest.2007.DVDRip.XviD.AC3.CD1-JUPiT.avi_000697155.jpg 나는 카이는 물론 슈헤이도 아니었다. 그냥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미술에 있어서 나는 당연히 천재 '이찌노세 카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노력파 '야마미아 슈헤이'도 아니었다. 나는 콩쿨 예선 탈락을 하는 이름 없는 조연에 불과했다. 그래도 어쨌건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했고, 충분했다는 생각에 미술을 포기할 수 있었다. 만약 고 1때 미대 입시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 꿈은 마음 한켠에 아쉬움으로 계속 남아 있었을 것이다. 후회와 아쉬움이 없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것이다.

끝이야 좋지 않았지만, 어쨌건 고등학교 3년 동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주었다는 것 만으로도 <피아노의 숲>은 내 인생을 바꾼 만화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거다.

그래도 남은 건 있다. 만화만큼은 아직도 즐겁게 꾸준히 읽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게 남은 가장 큰 '숲의 피아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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