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다른 모든 대한민국의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려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피아노 치는 법을 쉽게 잊어버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잊을 만큼 오래 배운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에 2~3달 정도 다닌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걸로 피아노를 잘 치게 되었다면 그거야말로 천재라고 할 수 있으니.
음악을 좋아하고, 듣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악기를 배우고 싶어졌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배우고 싶은 악기는 기타였다. 밴드음악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스런 욕구였다고 생각한다. 귀에 쏙쏙 박히는 멋진 기타 솔로를 들으며 나도 저런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은 재수를 하고 수능을 보고 나서 시간이 생겼을 때 기타 학원에 등록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기타교습소였는데, 머리가 반쯤 벗어진 아저씨 한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배우기만 하면 엄청나게 열심히 할 것 같은 욕망이 있었지만, 막상 학원에 다니면서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학원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로 기본 코드 잡는 법을 배우고, 개똥벌레, 아침이슬 같은 쉬운 곡을 치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손가락도 너무 아프고 지루하기만 했다.(지루한 건 초반의 잠깐이라는 것은 역시 배우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결국 한 달을 어영부영 다니고는 '역시 난 재능이...!!'라는 흔한 핑계를 대며 그만 두게 되었다. 한두 달이 지나고 나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C코드의 운지법 하나뿐이었다.
그 뒤로는 기타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번 배우다가 포기하고 나니 그 욕망이 많이 없어진 듯했다.
다시 기타를 만나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전역이 가까워진 중대 선임이 기타를 가져왔다.(선임은 교회에서 반주를 하며 기타를 배웠다고 했다.) 기타를 칠 줄 알던 다른 후임이 그 기타를 슬쩍 잡아서 치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멋졌다. 마음 속의 욕망이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엔 나도 계급이 낮아서 악기를 배울 형편이 되지 않았고, 결국은 또 어영부영 넘어갔다.(선임은 전역하고, 후임은 해외로 파병 떠남)
그러다가 다른 중대에 인디밴드를 하다 온 후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임이 어느 부대에나 보통 하나씩은 있는 '부대 내에서 굴러다니던 기타'를 치는 모습을 우연히 봤다. 마침 나도 상병이 꺾여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긴 상황이었다. 나는 그 후임(이하 스승님)에게 기타를 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게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져서 기타 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상병이 꺾여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부대에 굴러다니는 기타도 있었고, 기타를 잘 치는 사이 좋은 후임이 있었다. 물론 그 중 가장 좋은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스승님의 기타 실력은 물론 좋았지만, 더 좋은 것은 사사 방식이었다. 나도 내가 정말 재능이 없는 편이고 잘 못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스승님은 언제나 나를 칭찬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타를 배우는 일' 자체를 즐겁게 해 주었다. 더 열심히 연습해 그 칭찬이 현실이 되게 하고 싶었다. 더불어 내가 아는 곡들을 배운다는 점이 좋았다. 그동안 듣기만 했던 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기타를 배우는 데 있어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그렇게 전역할 때까지 6개월 정도를 점심 시간에 1시간, 그리고 저녁에 1~2시간 동안 매일 기타 연습을 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기타 연습을 했던 시간인 것 같다.
나 말고도 스승님에게 기타를 배운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나처럼 오래, 그리고 열심히 한 사람은 없었다.(스승님도 인정한 사실) 이건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스승님의 가르치는 방법이 좋았다는 얘기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는 잠시 동안은 기타를 열심히 쳤지만, 최근 몇년 사이는 그다지 열심히 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한 번 열심히 했던 시간이 있어서인지, 배워 놓은 것을 까먹지는 않고 있다. 덕분에 아직도 어디 가서 악기 하나 정도는 연주할 수 있다는 얘기를(부끄럽지만) 할 수 있다.
악기를 칠 수 있는 것도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멋진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을 풍성하게 해준 스승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만간 밥이라도 한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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