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side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2

기타

by 매일의 기분


다른 모든 대한민국의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려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피아노 치는 법을 쉽게 잊어버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잊을 만큼 오래 배운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에 2~3달 정도 다닌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걸로 피아노를 잘 치게 되었다면 그거야말로 천재라고 할 수 있으니.

음악을 좋아하고, 듣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악기를 배우고 싶어졌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배우고 싶은 악기는 기타였다. 밴드음악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스런 욕구였다고 생각한다. 귀에 쏙쏙 박히는 멋진 기타 솔로를 들으며 나도 저런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은 재수를 하고 수능을 보고 나서 시간이 생겼을 때 기타 학원에 등록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기타교습소였는데, 머리가 반쯤 벗어진 아저씨 한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배우기만 하면 엄청나게 열심히 할 것 같은 욕망이 있었지만, 막상 학원에 다니면서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학원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로 기본 코드 잡는 법을 배우고, 개똥벌레, 아침이슬 같은 쉬운 곡을 치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손가락도 너무 아프고 지루하기만 했다.(지루한 건 초반의 잠깐이라는 것은 역시 배우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결국 한 달을 어영부영 다니고는 '역시 난 재능이...!!'라는 흔한 핑계를 대며 그만 두게 되었다. 한두 달이 지나고 나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C코드의 운지법 하나뿐이었다.



그 뒤로는 기타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번 배우다가 포기하고 나니 그 욕망이 많이 없어진 듯했다.

다시 기타를 만나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전역이 가까워진 중대 선임이 기타를 가져왔다.(선임은 교회에서 반주를 하며 기타를 배웠다고 했다.) 기타를 칠 줄 알던 다른 후임이 그 기타를 슬쩍 잡아서 치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멋졌다. 마음 속의 욕망이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엔 나도 계급이 낮아서 악기를 배울 형편이 되지 않았고, 결국은 또 어영부영 넘어갔다.(선임은 전역하고, 후임은 해외로 파병 떠남)



그러다가 다른 중대에 인디밴드를 하다 온 후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임이 어느 부대에나 보통 하나씩은 있는 '부대 내에서 굴러다니던 기타'를 치는 모습을 우연히 봤다. 마침 나도 상병이 꺾여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긴 상황이었다. 나는 그 후임(이하 스승님)에게 기타를 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게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져서 기타 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상병이 꺾여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부대에 굴러다니는 기타도 있었고, 기타를 잘 치는 사이 좋은 후임이 있었다. 물론 그 중 가장 좋은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스승님의 기타 실력은 물론 좋았지만, 더 좋은 것은 사사 방식이었다. 나도 내가 정말 재능이 없는 편이고 잘 못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스승님은 언제나 나를 칭찬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타를 배우는 일' 자체를 즐겁게 해 주었다. 더 열심히 연습해 그 칭찬이 현실이 되게 하고 싶었다. 더불어 내가 아는 곡들을 배운다는 점이 좋았다. 그동안 듣기만 했던 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기타를 배우는 데 있어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그렇게 전역할 때까지 6개월 정도를 점심 시간에 1시간, 그리고 저녁에 1~2시간 동안 매일 기타 연습을 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기타 연습을 했던 시간인 것 같다.

나 말고도 스승님에게 기타를 배운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나처럼 오래, 그리고 열심히 한 사람은 없었다.(스승님도 인정한 사실) 이건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스승님의 가르치는 방법이 좋았다는 얘기다.

KakaoTalk_20161102_203515508.jpg 현재 사용중인 기타.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해서 샀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는 잠시 동안은 기타를 열심히 쳤지만, 최근 몇년 사이는 그다지 열심히 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한 번 열심히 했던 시간이 있어서인지, 배워 놓은 것을 까먹지는 않고 있다. 덕분에 아직도 어디 가서 악기 하나 정도는 연주할 수 있다는 얘기를(부끄럽지만) 할 수 있다.

악기를 칠 수 있는 것도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멋진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을 풍성하게 해준 스승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만간 밥이라도 한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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