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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Nov 05. 2016

이름의 뜻


오늘은 얼마 전에 나온 투 도어 시네마 클럽(two door cinema club)의 신보를 들었다.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데, 밴드명의 유래가 재미있다.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샘이 동네에 있는 영화관 튜더 시네마(Tudor cinema)를 투 도어(two door)로 잘못 말한데서 착안해 지었다고 한다. 밴드의 음악만큼이나 재치있고 장난스러운  작명이다.  
  

two door cinema club-game show


이름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그저 기호에 불과한 시니피앙이 아니다.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워지 그 객체는 비로소 아이덴티티를 갖는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주인공 치히로는 자신의 뺏긴 이름을 찾기 위해 작품 내내 고군분투를 한다. 마녀 유바바는 다른 존재들의 이름을 뺏어 그들을 지배하고, 장악한다. 이름을 뺏긴 자들은(하쿠) 자신에 대해 잊기 시작한다.  

문학인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 또한 대동소이하다. '이름'이 큰 힘을 갖는 세계에서 '진정한 이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드의 이야기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상당히 흡사한 모티프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지브리가 '게드 전기'를 만든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게드 전기'는 망했지만ㅠㅠ)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짓는다'는 건 무척 중요한 것 같다. 
 



나도 살면서 몇몇개의 이름을 지은 일이 있다. 우선 내 블로그 이름은 (몇 번쯤 설명했지만) 만화가 양영순의 홈페이지에서 따왔었다. 십여 년 전에 양영순은 매일 1시간씩 그림 연습을 해서 포스팅하는 홈페이지를 운영했었고, 나도 그것에 영향을 받아 블로그 이름을 '하루 한 시간'으로 정했다. 하루 한 시간씩 무언가를 써보자며 야심차게 지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지게 되었다. (반면 닉네임인 '수면부족'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냥 단순히 그때 졸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아이디인 napbock의 경우는 중학교 때 별명에서 나왔다. 중학교 1학년때 별명이 왜인지 모르겠지만 '복어'였는데, 당시 납복어 파동이(...) 크게 보도되면서 별명이 '납복어'가 되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때 피시방에 가서 처음으로 웹사이트(다음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는데, 아이디를 무얼로 할까 고민하다 별명으로 하기로 했다. 납복napbock...까지 썼는데, '어'를 영어로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거기까지만 쓴 걸로 계정을 만들었다. 당시에 '어(eo)'를 쓸 수 있었다면, 내 아이디는 napbockeo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재밌다. 
 



영어 이름은 현재 'don'을 쓰고 있다. 영어 이름이 필요한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즉흥적으로 이것 저것을 사용해 왔다. 처음에는 한국 이름인 '동훈'을 그대로 쓰려 했는데, 외국인들이 발음을 어려워해서 관뒀다. 영어 수업 중 원어민이 테일러(taylor)라는 이름을 지어준 적도 있었는데,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내 이름은 테일러야'라고 말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 (...) 그것도 수업이 끝나곤 사용하지 않았었다. 

결국 살면서 영어 이름 하나쯤은 정해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선은 내 한국 이름과 연관된 것을 사용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끝이름 '훈'에서 따서 '후니'나 '호니'로 해보려고 했는데, 발음이 비슷한 'horny'가 성적인 뜻(흥분한, 육감적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관뒀다. 이것 저것 찾아보다 마동석의 영어 이름이 'don'이라는 것을 찾게 되었고, 이게 무난한 것 같아서 중간 이름 '동'에서 따서 결국은 'don'이 되었다. 
  



이것들 외에도 살면서 많은 것들에 이름을 붙여 왔다. 네이버 카페 닉네임부터 게임 계정명, 친구의 별명까지.  

어떤 것은 그것과 딱 맞는 좋은 이름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아무리 지어도 남의 것 같은 어색한 이름들도 있었다. 이렇게 이름이란 건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조카의 이름을 짓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던 누나의 모습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쓰다보면 처음엔 잘 맞지 않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이름과 그 아이덴티티가 서로를 끌어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도 있다.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조카의 이름이 어느 순간 조카와 딱 맞아떨어져 다른 이름으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역시 '이름'하면 나 자신의 이름부터 생각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선택하지 않고 부모님께서 내려준 이름은 맘에 들수도, 아닐수도 있다. 나는 너무 평범한 이름이어서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30여년을 살아오다보니 역시 내 이름과 나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김동훈이라는 시니피앙이 나라는 시니피에와 딱 붙어 결합한 듯한 기분이 든다. 이 둘을 분해하듯 딱 나눌 수 업게 된 것 같다. 

역시, 정들어 버린 것인가 보다.
 


:: contact _ napbock@naver.com

:: blog _ blog.naver.com/napb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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