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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Nov 12. 2016

민중에게 권력을


오후 3시 반 정도에 집을 나섰다. 종로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두어 정거장을 가다 기사님이 종로쪽 갈 사람들은 여기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라고 했다. 교통이 통제되어 돌아갈 거라 종로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4호선과 1호선을 타고 종로로 향했다. 1호선에는 이미 사람이 꽉 차있었다. 겨우 몸을 비집어 넣어서 지하철에 탈 수 있었다. 지하철에 채 타지 못한 많은 시민들은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종각역에서 내렸다. 우선 여자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광화문이든 시청쪽이든 가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로 올라가는데 이미 확성기와 시민들의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하철 출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겨우 사람이 없는 지하철 출구 쪽으로 올라갔다. 이미 밖에서는 차가 다니지 않고 도로에는 수많은 시민들의 행렬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행진하거나 여럿이 모여 곳곳에서 소규모 집회를 열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을 생각을 버리고 여자친구와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민중총궐기인 4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광화문 광장은 이미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남녀노소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성별과 나이를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가득했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끼어 앉았더니 곧 행사가 시작됐다. 
 


사람의 숫자가 지난 주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것 같았는데, 이미 20만명이 넘었다는 소식이었다. 통신사에서는 기지국 차량을 가져다 놨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화기는 통화도 인터넷도 먹통이었다. 

민중총궐기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모세, 크라잉넛 같은 가수와 밴드들도 와서 공연을 했고, 김미화, 김제동, 도올 같은 분들도 와서 짧은 발언을 했다. 출연진들과 관객들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시니컬한 분위기로 행사를 즐겼다. 권력에 대항하는 방법은 이것이 가장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유쾌하고, 진지하지 않고, 너무 처절하지 않게.
 


밤이 되고 사람들이 촛불을 켜 들었을 때는 조금 감동했다. 6시 반에 맞춰서 집회 참여 시민들이 다 함께 함성을 지를 때는 눈물이 찔끔 났다. 멀리서 오는 함성 소리에 가슴이 떨렸다. 집회 참가자가 백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백만 명은 커녕 이백만 명도 될 듯했다. 종로 일대의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슬펐던 것은 세월호 관련 내용이 화면에 나왔을 때였다. 나는 이번 정권이 들어 선 이후로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 중 세월호 참사가 가장 슬펐다. 그 아이들을 위해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늘 부채처럼 따라다녔고, 늘 죄의식을 느꼈다. 오늘의 집회 참여를 결심하게 된 것도 세월호 희생자들 때문이었다. 구호를 외치면서도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민중 총궐기 행사가 마무리 될 때 즈음 광화문 광장을 빠져나왔다. 그 근처에서는 지하철을 탈 수 없을 것 같아서 동대문까지 걸어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지하철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오늘의 집회가 당장 보이는 어떠한 성과로 나타나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늘 그래왔듯 이 행위들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오늘의 행동들이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늘의 집회는 무척이나 큰 뜻을 가졌다. 많은 시민들이 나라 생각을 이토록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것과,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큰 의미였다. 민중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크기는 실로 거대했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사람 많은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란 생각을 했다.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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