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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독감에 걸린 날

by 통나무집

독감이 무섭습니다. 거센 재채기가 연신 이어지고 고열이 나며 온몸이 욱신욱신 아픕니다. 예방 접종을 해서 증세가 경감되었는데도 견디기 힘든 통증입니다. 어른인 저도 이렇게 아픈데 이제 38개월 된 딸들은 독감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첫째 하은이에게 독감이 발병한 날, 아이의 체온은 39.4도까지 치솟았습니다. 고열로 축 처져서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아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어요. 부랴부랴 새벽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른 새벽인데도 소아과 병원에는 저처럼 진료를 예약하러 온 부모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아슬아슬하게 2번 번호표를 뽑아서 아침 8시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가서 아내와 함께 두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오니, 진료 대기실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어요. 부모들의 얼굴은 초조했고 아이들은 의자 위에 축 늘어져 있거나 검사를 받기 싫다고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지금 독감이 크게 번지면서 소아과마다 입원 대기 환자가 줄을 서고 있다는 소식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딸의 상태를 보니 지금 당장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얼마나 대기를 해야 입원할 수 있을지.....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딸들의 진료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어요. 입원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너무 늦지 않게 진료를 받아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첫째는 독감이었습니다. 둘째는 독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정황상 독감이 확실해 보여서, 의사 선생님께 두 아이 모두 입원 치료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두 아이 모두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어서 그날 바로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고맙고 감사하던지요.

입원할 병실로 이동해서 딸들을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링거를 맞히러 갔습니다. 고맙게도 저희 딸들은 주사를 잘 맞습니다. 20개월 때까지는 주사 맞는 게 무섭고 아파서 악을 쓰고 몸부림을 쳤는데, 어느 순간부터 울거나 떼쓰지 않고 무덤덤하게 주사를 맞아요. 주사를 놓는 간호사도 이렇게 주사를 잘 맞는 아이가 있다니 하며 신기해했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주사를 맞아 익숙해진 것인지..... 무난히 주사를 맞아주는 딸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입원이 나흘 동안 이어졌습니다. 병실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고단하고 무료했습니다. 두 딸은 사이좋게 놀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싸웁니다. 두 딸이 팔에 링거 줄을 매단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링거 줄이 꼬일까 봐, 주사 바늘이 뽑힐까 봐 노심초사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다고 자주 보채며 울었어요. 아이들은 몸이 아프고 답답한 병실 생활이 힘들어서 평소보다 더 칭얼거리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온종일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아이가 입원한 지 하루 뒤에 저에게도 독감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거세게 재채기가 터져 나오고 콧물이 줄줄 흐르고 고열이 났습니다. 몸이 욱신거려서 평소보다 움직이기 힘들었어요. 우리 딸들이 느끼고 있는 통증이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 어른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저 어린것들은 얼마나 힘들까.... 제 몸의 통증으로 딸들의 아픔을 이해하니 병으로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에는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겼습니다. 딸들이 입원한 병원에 바로 진료를 신청하여, 저도 늦지 않게 독감 치료를 받을 수 있음도 감사했습니다. 초기에 치료를 시작한 덕분인지, 저는 더 크게 아프지 않고 점점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입원한 지 나흘째 되는 날 드디어 퇴원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두 딸의 기침 증상은 남아 있지만 열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컨디션도 괜찮아서 통원치료를 하며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집에 가게 되어 좋아하는 딸들과 아내를 바라보며, 온 가족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새삼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아픈데 남편인 저도 독감으로 맥을 못 추리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한 아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자주 만납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도 지나고 보면 감사할 것들로 가득한 추억이 됩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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