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태기>가 보여주는 기형적 가족애
양육의 목표는 자녀의 독립이다.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만약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고 부모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 자녀도 부모도 불행해진다. 그 불행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잉태기>이다. 이 소설에서는 자녀를 독립시키지 못하는 엄마와 그녀의 ‘시부’(서진의 친할아버지)가 나온다.
부유한 엄마와 ‘시부’는 재력을 바탕으로 서진을 그들에게 의존하게 하고, 그들의 뜻에 따라 살아가게 한다. 서진은 엄마와 친할아버지의 보호와 재력에 힘입어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사고 싶은 만큼 사고,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 서진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괴롭게 준비해야 할 일들도 모두 엄마와 ‘시부’가 다 대신해준다. 서진이 결혼할 상대도, 서진이 살아갈 공간도, 그리고 서진의 임신 후 출산 장소와 아이를 양육할 장소도 모두 서진의 엄마와 시부가 다 결정한다. 서진은 그저 엄마와 시부의 뜻 중에 누구의 뜻을 따를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 겉보기에 편안해 보이지만 그런 환경은 서진을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그 어떤 것도 스스로 결단하여 실행하지 못하는 기형적 성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몸은 성인이지만, 내면은 어린아이인 서진.
서진의 엄마와 시부도 서진에게 의존한다. ‘엄마’와 ‘시부’도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박탈당한 경험 때문에 서진에게 집착하고 서진이 그들에게 주는 신뢰와 애정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리고 서로 서진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기 위해, 그리고 서진이 그들에게 주는 신뢰와 애정을 독점하기 위해 서진의 ‘엄마’와 ‘시부’는 서로를 혐오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며 대적한다.
작품의 결말에 서진이 출산원정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 하는 상황에서 출산 원정을 추진하는 서진 엄마와 출산 원정에 반대하는 시부 사이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큰 갈등을 벌인다. 서진은 엄마와 친할아버지를 말리려다 쓰러지고, 그런 응급 상황에도 엄마와 시부는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서 서진의 양팔을 각각 잡아끌면서 자신의 뜻대로 하자며 강요한다. 그 상황에서 서진이 두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지만, 서진의 말은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다. 서진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그들의 싸움은, 자식을 찢어발겨서라도 소유하려는 탐욕의 민낯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건강한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건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홀로서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도움과 지지가 되어주어야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통제와 집착, 병적으로 의존을 해서는 안 된다. 책을 덮으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아내와 딸에게 어떤 남편이자 아빠인가. 혹시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그들을 통제하려 하거나,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그들에게 의존하지는 않았는가. 가족의 행복은 서로를 놓아주지 않으려 집착할 때가 아니라, 서로가 온전한 '나'로 설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할 때 비로소 시작됨을 <잉태기>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