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x Seo May 24. 2020

어느 외국계 기업 현직자의 하루

현직자가 말하는 외국계기업

오늘은 현직자의 평범한 하루가 어떤지에 대한 예시를 들어볼까 합니다. 앞으로 제가 풀어낼 얘기들을 좀 더 생생하게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2020년 5월 22일 금요일입니다.


07:00 AM, 출근 시작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거북목 후유증이 심해졌습니다. 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두통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지난 주 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병원 예약이 있는 날인데, 진료를 오후 6시까지만 본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진료를 보지 않는다고 하니, 주중에 시간을 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사의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평소처럼 9시출근, 6시퇴근이 아니라,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을 하기로 한 겁니다. 상사인 본부장님한테는 화요일 쯤 구두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승인을 받는다는 의미보다는, "그 시간에는 제가 없을 예정이니 염두해 주세요" 정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정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상사가 NO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07:50 AM, 카페테리아 (음료, 스낵 등을 구비된 휴식 장소)

7시 50분, 회사에 도착합니다. 회사 내부에 직원들을 위한 작은 카페테리아가 있습니다. 카페테리아 안에는 2천원 정도에 맛있는 라떼를 구매할 수 있는 직원 전용 카페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평소처럼 카페에 들러 라떼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제가 일하는 층으로 걸어올라 갑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쟁같은 하루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일정은 정해진대로 휘몰아칠 것이고, 이른 아침 카페인은 언제나처럼 하루를 버텨낼 힘을 줄테니까요.

08:00 AM, 업무시작

현재 재직 중인 회사는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은 "자율좌석제"입니다. 직원들은 그 날 그 날 기분에 따라서 원하는 자리에 앉습니다. 각 코너별로 컨셉이 다양합니다. 독서실같은 자리도 있고, 완전히 오픈되서 여러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있습니다. 오늘은 집중할 일이 많아서 칸막이가 높은 구석 자리를 찾아서 앉았습니다.

MS 오피스의 아웃룩을 열고, 오늘의 업무일정과 회의일정을 확인합니다. 회의 일정이 하루종일 빼곡하게 잡혀 있습니다. 어제 퇴근 이후에 들어와 있는 이메일들을 확인하고, 급한 이메일들에 대한 회신을 먼저 합니다.

저는 왠만하면 얼굴보고 대화하면서 업무처리를 빨리 빨리 해버리는 걸 선호하는 타입인데, 자율좌석제 때문에 직원들의 위치를 알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메일이 많아집니다. 좌율좌석제는 확실히 장단점이 분명한 제도입니다.


10:00 AM, 회의(외국계에서는 Meeting이라고 얘기합니다)

한참 이메일을 확인하던 중, 9시 45분 아웃룩에서 15분후 회의알림에 대한 팝업창이 뜹니다. 우리 팀의 팀원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경과를 공유하는 회의에 참석합니다. 싱가폴에서도 참석을 해야하는 직원이 있어서 MS Skype(메신져의 일종)을 통해 원격으로 회의에 참석을 합니다. 싱가폴 직원이 한국인이라 회의 진행은 한국어로 했습니다. 안건에 대한 합의를 보고, 추가로 해야할 일들(follow up)을 정리한 후, 다음 회의 일정을 정합니다.


11:30 AM, 점심시간

정해진 점심시간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회의나 업무 일정에 따라서 보통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합니다.

서너명씩 무리지어서 회사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는 직원들도 있고, 그 날의 업무가 바쁜 사람들은 그냥 저처럼 자기 자리에 앉아서 커피에 샌드위치를 먹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혹은 카페테리아에 내려가서 간단하게 라떼와 쿠키 한 개로 점심을 때우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회의 구성원들이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회의를 하고 있는 직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피자나 도시락 등을 배달시켜놓고 먹으면서 회의를 하는, 소위 working lunch 입니다.


14:00 PM, 집중근무

혼자서 해야 할 업무들이 있는데, 아웃룩에 비어있는 일정으로 놔두면 또 회의가 치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저만의 시간으로 일정을 잡아 놓습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상황 때문에 회사의 수익성이 위기입니다. 그에 따른 부가 업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업무들에 대해 보고시한이 정해져 있으니, 집중력있게 일을 쳐내지 못하면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짧게 허락된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업무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부족합니다. 오늘 타부서로 넘겨줘야하는 결과물들이어서 어쩔 수 없이 저녁에 병원 진료 후에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6:00 PM, APAC 보고 준비 회의

한국지사는 APAC(Asia Pacific)이라는 글로벌 조직에 속해 있습니다. 중국, 일본, 홍콩 등의 아시아 국가들을 관리하는 중간 조직입니다. 외국계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로벌 조직 구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한국 지사는 APAC에 한 주간의 성과를 보고하는 회의를 합니다.

다음 주에 보고할 내용을 한국지사장님과 미리 검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중요한 내용에 대한 공유인지라 재무팀(CFO), 마케팅(CMO) 그리고 전략팀(CSO)의 임원들이 다 함께 모입니다. 영업팀 본부장님만 한국인이고 재무팀 임원은 인도인, 마케팅 임원은 미국인, 그리고 전략팀 임원은 중국 국적입니다. 그리고 한국 지사장의 국적은 미국인입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영어로 회의가 진행이 되고, 저는 아직도 다양한 영어들의 억양과 발음에 익숙해지기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17:30 PM, 퇴근 후 병원진료

오후 5시에 끝나기로 했던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병원 예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5시반에 회의실을 나왔습니다. 회의는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입니다. 상사이신 본부장님의 배려로 회의실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편합니다. 어쨌든, 서둘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회의 참석자 중 일부는 길어지는 미팅에 불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회의의 주최자가 지사장님이니 그냥 꾹 참고 다들 속으로 삭이고 넘깁니다.

 

19:00 PM, 귀가 후 잔업

병원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금요일 저녁이지만, 낮에 다 처리 못한 일 때문에 다시 바로 책상에 앉습니다. 외국계 연봉제도는 계약 연봉에 모든 금액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야근수당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두 시간 정도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10시가 다 되어 갑니다. 급하게 정리한 자료를 이메일로 전달합니다.


22:00 PM, 저녁식사

이제야 한 숨 돌리고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그래도 금요일저녁이니 맥주 한캔 따서 넷플릭스 화면을 TV에 연결합니다. 최근에 핫 하다는 "어둠속으로"라는 드라마를 봅니다.


이상, 저의 금요일 하루였습니다.


외국계 기업에 대한 기대치들은 사람마다 참 많이 다릅니다. 제 하루를 읽어보시고, "아, 외국계가 이래서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으실테고, "뭐야, 우리 회사랑 다른게 없잖아?"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겁니다. 혹은 "외국계라고 다 좋은건 아닌데?"하시는 분들도 있으실테죠.


맞습니다. 그게 정확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외국계 기업은 좋은 점만 있는 그런 판타지 속의 조직이 아닙니다. 장단점이 매우 분명하게 존재하며, 때론 극단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공개된 대부분의 정보들이 너무 판타지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외국계로 이직하신 분들 중에 적응에 실패하시는 사례도 종종 보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이고"현실적"인 정보들이 필요하지만,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제 글이 이런 정보들을 찾는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 Max Seo

메일 | itsallyoursmax@naver.com





 

이전 01화 프롤로그 Prologu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