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클로버,

지난 장마시사회에서.

by 적적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선 선 한 아침이 지나고 불을 켜지 않으면 분간할 수 없는 선 선 한 밤이 내리고 있습니다. 볕은 사라졌습니다. 낮 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길가로 부는 바람을 사러 다닙니다.


길 위에 엎드렸던 사람들이 패들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일어섭니다. 그리고 종아리에 문신을 한 사람도 팔뚝에 문신을 한 사람도 모두 문신을 휘날리며 노를 젓듯 팔과 다리를 노 저어 바람 속으로 나아갑니다.

파도가 치지 않지만 적당한 바람으로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나는 길가에 발을 담그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다봅니다. 발목으로 바람의 물결이 닿습니다.


저 많은 사람이 바람을 저마다 머리카락에 바람을 가득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누군가 만나러 가는 사람은 별반 없을 것입니다.


공원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키가 족히 190은 넘을듯하고 덩치가 씨름선수만 한 사내아이가 터질듯한 교복 바지를 입고 너무 작아서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면 나무 끝까지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귓속말을 하자 사내아이가 가로등 불 아래 허리를 숙이고 커다란 손을 가만히 속삭이며 풀 속을 뒤적거립니다.


여자아이가 팔짱을 끼고 감독을 하는 동안 여러 번 고개를 들어 바보같이 웃으며 연신 풀 속을 뒤적거립니다.


지난여름 제천역 앞에서 형을 기다리느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택시 정류장을 지나 가장 후미진 곳에서 작은 손수레 앞에 있던 노인을 기억합니다. 작은 바구니 안에 어느 책 속에도 들어가 본 적 없고 아직도 숨이 붙어있는 연두색 네 잎 클로버를 이천 원에 팔고 있었습니다.


이제 네 잎 클로버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세상에 네 잎 클로버를 온종일 찾고 수십 장을 코팅해서 팔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 번을 지나치다 형과 누나 그리고 나 석 장을 샀습니다. 누구나 클로버를 찾는 시기가 있습니다. 아이가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다가 빨아 대듯이,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듯이 그렇게.


그리고 그 네 잎 클로버는 지금 어디 있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행운을 그리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나의 습관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아이는 발끝으로 190이 넘는 사내아이와 가로등 아래 있습니다. 사내아이는 굵은 손가락으로 새치를 손끝으로 뽑듯이 몇 개의 클로버를 건네다가 여자아이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다시 고개를 숙여 바닥을 더듬고 있습니다.


사내아이를 응원하는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지고 있었습니다. 여자아이가 사내아이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고 사내아이가 산처럼 일어섭니다. 어쩌면 여자아이는 네 잎 클로버엔 관심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가방을 앞으로 메고 여자아이를 업고 걷습니다. 여자아이 발이 허공에 찰랑거립니다.


아직 흐립니다.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분에 심겨 있는 클로버를 보았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네 잎 클로버를 찾습니다.


같이 한번 찾아볼래요?

그런 행운을 찾게 되는 어느 아침입니다.

저에겐 그런 집요함도 없고 간절함도 없습니다.


물론 팔짱을 끼고 기다려주는 사람도 있지 않을 테고.


흐린 하늘 아래 라면수프를 터는 소리를 내는

햇살이 벌써 그립습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었죠. 토요일이었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거잖아요. 그리고 토요일 아침이면 턱없이 일찍 일어난 형벌로 잠깐 눈을 붙일 심산이었어요. 침대에 누워 스르르 잠들기를 기다리며 책장을 뒤적이고 있었죠.

중요한 것은 책을 읽다 잠드는 것과 책장을 뒤적이며 잠들기를 기다리는 건 같은 결의 잠이라도 달콤함이 다른 초콜릿처럼 다르죠. 음.... 79% 초콜릿과 다크초콜릿의 쓴맛처럼 말이죠.


침대에 눕기 전 선풍기를 틀죠. 모란이라고 불리는 고양이가 제게 다가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선풍기 바람을 쐬러 옵니다. 손등이나 팔목에 제 몸을 비벼대며 양해를 구하는 몸짓을 하구요. 꼭 엉덩이를 제 몸에 붙이고 꼬리로 제 얼굴을 가끔 쓰다듬으며 바람의 지분을 요구합니다.


이곳은 아직 빗방울 하나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잠들 수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합니다. 머리를 간단히 말리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전야제의 밤은 화려하기만 합니다. 붉은 카펫 대신 후끈하고 물기 가득한 바람이 거리에 깔려있습니다. 물기를 핥던 나뭇잎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마구 흔들립니다.


이제 비가 올 것 같습니다.


이제 바람의 후끈한 카펫이 깔리고 그 길을 걸었던 모든 사람에게 장마라는 이름의 영화의 시사회 초대장이 배달될 겁니다.


아스팔트가 검은 영사막으로 변해갑니다.

장마라는 이름의 영화는 수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역작이었습니다. 그 후끈 한 바람을 딛고 주연배우 후보에 오른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합니다. 거실 유리창 밖으로 뜨거운 체온 속으로 빗줄기가 마구 쏟아지며 창밖으로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늦게까지 치러졌던 장마의 전야제는 이제 끝이 나고 장마의 상영 기간은 배급사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한동안 장마와 함께 해야 합니다.


부디 창문을 닫고 영화에 잠기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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