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다시 눈감은 나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주면 좋겠어.
그럼 나는 아주 착한 아이처럼 조금 더 환해질 때까지 눈을 감고 다음날이 되도록 잠 들 수도 아니 그 평온한 시간을 기적처럼 누릴 수 있을 거야.
그녀가 시집 출간을 앞두고 나를 찾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아 무척이나 축하할 일이었고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었지, 나는 미리 준비해 둔 펜으로 시집 앞장을 펼쳐 사인을 해달라고 했었지.
그녀가 환히 웃으며 잠시 펼쳐진 공간을 느리게 걷고 있었어. 그리곤 단 석 줄의 글귀와 본인 이름을 정갈하게 써 내려갔지.
나는 건네받은 시집의 목차를 천천히 마시고 페이지를 넘기며 읽어 내려갈 동안 아무 말이 없었어. 어떤 시는 예전에 보았던 시였고 어떤 시는 행간이 바뀌어있거나 군데군데 바뀐 시어들은 분명 그녀의 것이 아니었지만 손에 만져질 만큼 도드라져 시를 빛나게 하고 있기도 했으며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추천의 글은 그녀의 글에 수없이 많은 날개를 달아주었지.
내 눈동자는 미로 속에서 출구를 향해가는 작은 쇠 구슬처럼 이리저리 착실히 움직이며 시집 한 권의 한가운데 머물렀지. 그녀 시집의 한가운데까지 노를 저어가던 나는 그 작은 나무배에서 일어났어. 그리곤 그녀가 건넌 시집 제일 뒷장을 펼쳐 탁자 위에 올리고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지.
자 이제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것 말고 내게만 줄 수 있는, 주고 싶은 한 행을 적어주세요.
그녀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어. 첫 장에 써넣었던 문구보다 더 오랫동안 탁자 위를 느리게 걷고 있던 그녀가 나지막하고 정갈한 글씨체로 한 문장을 완성했지.
나는 그 문장에 물컵에 있던 물을 티스푼 손잡이로 찍어 글자들을 번지게 했어.
이제 글자는 번져 문단은 흐릿해졌어 아무도 알아볼 순 없지만, 이 시집의 비밀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어. 내가 욕심이 좀 많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머지 강을 노 저어 걷느라 새벽까지 잠들 수 없었어. 그리고 이른 아침 문자를 보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