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치곤 다른 날보다 일찍 잠들었는데, 새벽에 깨어나 다시 잠들 수 없을지도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는나를 다독이며 잠이듭니다. 활주로에 무사히 내려앉고 연착은 되었지만, 아침에 잘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한 곳은 11월의 햇살이라는 이름의 공항이었는데, 아침 일찍 도착해서인지 공항 안은 한산했었고 아침 안내방송을 들으며 쌓여있던 낙엽의 봉분이 부서져 날리며 이어진 길을 하염없이 따라가며 아침 산책을 하였습니다. 무연고의 봉분들을 따라가다 보면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마지막 가루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돌아왔습니다.
설거지할 때 고무장갑을 끼지 않습니다. 해 먹는 것도 별반 없으므로 밥을 먹자마자 싱크대로 그대로 가서 그릇들을 씻습니다. 세제를 조금만 짜내 수세미에 묻힌 다음 거품을 한껏 일으킵니다. 손 안으로 그렇게 한껏 거품이 일었을 때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바닥에 마구 쏟아져 내립니다. 손에 묻은 비누거품이 등줄기에 닿는 순간 뜨거운 온수가 딱 멈춥니다. 유연하고 부드럽던 그녀의 등줄기가 경직됩니다. 그녀의 척추뼈들이 서로의 자리를 한껏 들어내며 거품을 기다립니다.
고작 그릇들의 표면을 닦아냅니다. 거품을 뒤집어쓴 그릇들을 물로 씻어냅니다.
단단해진 유리그릇들은 꼬리뼈가 없습니다.
거품이 사라지는 그릇들의 유난한 소리를 좋아합니다. 뽀 드득 거리는 그 소리-이 문장을 읽을 때쯤 귓속에서 그 소리를 함께 들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죠.
새벽의 공항은 푹신한 소파들이 한없이 놓여있습니다. 아침은 마음만 먹으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지만, 그 맘을 먹은 적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뒤척이는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매일 반복됩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다봅니다.
햇살에 잘 닦여진 그릇처럼 물기를 머금고 마르기 위해 등을 보이고 눕습니다. 그릇들의 뒷모습은 늘 낯설지만 온종일 마른 몸을 저녁이면 다시 사용될 생각에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 쓰일 자들의 당당함 같은.
햇살을 만지면 손끝이 젖을 만큼의 물기와 단단하고 잘 닦여진 그릇의 소리가 납니다.
저토록 눈부시며 촉촉한데 따스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오늘의 햇살은 너무도 당연하게 비가 오지 않을 것을 몸소 입증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