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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10. 2024

그해 봄.

꽃마다상여다.

오래전 봄 늦게 핀 철쭉 한 그루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꽃이 피어날 때는 몰랐는데 그늘 가에 핀 철쭉은 혼자서 마지막 봄의 상여 위에 놓여있던 꽃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꽃상여.     

우리는 늦봄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어울리던 친구가 죽고 이듬해 다른 친구가 죽었을 때도 우연히도 늦은 봄이었거든요.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늦은 아침 집으로 올라가다 철쭉이 늦게 피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아파트 경계석 위로 심어진 나무들 사이 손바닥만 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죠.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태양이 느린 걸음을 걸을 때 햇살이 사라질 동안 철쭉이 피고 있었어요. 햇살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온종일 그늘이 되는 그런 곳이었어요.     


길 건너에서 그 햇살이 머문 시간 동안 철쭉을 보다가 한참을 걸어 건널목을 건너서 다시 한참을 걸어 내려와 그늘에 있는 철쭉이 보였어요. 가슴이 떨리고 피어난 붉은 꽃을 왜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피어나는 꽃과 이제 땅으로 떨어져 꽃잎이 녹아내리고 있는 순간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자니 산다는 것도 떨어져 죽는다는 것도 한 계절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은 피어나는 의식과 녹아내린다는 무의식이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죠.     


그 길가에서 관목 나무들을 헤치고 땅에 떨어진 꽃잎들을 어루만져 보았어요. 햇살에 드러나지 않아 아직 물기로 녹아내리는 꽃잎들을 보며 미안하고 고마워서 혼자 속삭였어요.      


고마워요. 봄날 동안 고생했어요.     


지난겨울의 시신을 담은 상여 위로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선산을 올라 긴 줄을 따라 피어난 꽃을 볼 것입니다.      


오늘 아침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이리저리 골목을 지나쳐 봐도 꽃이 피어날 곳은 한 군데도 만날 수 없습니다.     


바람 속에서 꽃잎이 지나칩니다.     

손가락을 쫙 펴고 걷자 손가락 사이로 꽃잎이 휘감깁니다.     


오늘도 비가 온다는 예보는 보기 좋게 꺾였습니다. 하늘도 맑고 햇살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제 바람 불고 비가 오고 천둥이 치던 날은 어제로 끝이 났습니다. 오래전 4월에도 간혹 눈이 오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럼      

“오호 이 봄에 눈이라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넘겼었죠.     

아침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주변에 벚꽃이 없어서 올려주신 벚꽃을 보며 좋겠구나 생각했구요 나의 목련 나무는 모두 겨우겨우 꽃을 피웠다가 지난밤 보니 모두 꽃을 빗물의 강으로 띄워 보내고 지금은 잎을 생산하느라 바쁩니다. 연둣빛 합창단처럼.     


이제 돋아난 이파리마다 서로 다른 계명을 부여받습니다. 바람이 불면      

현의 떨리는 진동수가 클수록, 현의 장력이 클수록, 현이 가벼울수록 주파수는 높아집니다.     

오늘의 나는 어느 만큼 높고 멀리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더 팽팽히 당겨진 나를 튕겨     

멀리 있는 사람을 뒤돌아보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봄의 어느 나무로부터 돋아난 연둣빛 이파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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