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밤 지나고
창피한 아침입니다.
by
적적
Dec 4. 2024
아침에 눈을 뜹니다.
눈을 감은 채 눈꺼풀 사이로 스며들던 새벽을 조금 걷다 보면 하늘이 둔탁한 망치로 깨지고 수없이 유리 파편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저 겨울인 것을 눈 오고 흐리고 차갑던 날들은 아직 채 오지도 않은 겨울인 것을….
이른 겨울.
지난밤은 퇴근하고 흔한 저녁을 먹고 잠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 계단을 기어올라 한 시간 뒤로 알람을 맞춘 뒤 눈을 뜨니 1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죠.
하루를 믹서기에 넣고 즙을 내리면 저녁 시간에 갈변된 사과주스를 받아 들게 됩니다.
신선하지 못한 밤.
피곤함으로 가라앉아 무거워진 과육의 밤.
백지 위를 엎드려 기어 다닐 것도 포기했던 밤.
잠이 깨진다. 비행기의 창문 하나가 깨진 것처럼 모든 것이 그 깨어진 틈으로 쓸려나간다 안전벨트를 한 내가 덜컹거리는 의자에 고정되어 그 틈을 한없이 바라본다.
다시 기체는 기압의 차이를 극복해 본다. 더 이상 빠져나갈 것이 없을 때
조여둔 벨트를 풀고 창문을 가로막은 그 얇은 눈꺼풀을 가만히 눈동자를 움직여 확인한다.
잠에서 깬다는 건 작은 사고에 불과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사고를 겪고 안전한 상태로 사고를 수습한다 산산조각 난 꿈을 손으로 모아 한 곳에 둔다. 언젠가 저 꿈을 다시 꿀 것이며 나는 그 낯익은 꿈에 더 당황할지도 모른다.
중지와 약지 중간쯤 담배를 걸치고 재를 턴다. 긴 연기를 내뿜는다
지구에서 가장 담배를 멋지게 피운다는 사내를 알고 있어
더 피워야겠지?
아직 멀었어….
사고를 당한 사람답지 않게.
언젠가부터 쓰고 있던 필사는 아직도 그대로인데….
언젠가 바닷가에 가서 성게를 잡은 적이 있었죠. 살아있는 성게가 아주 느리게 걷습니다. 성게는 가시를 차곡차곡 내디뎌 바닥을 쌓아 갑니다. 물론 잡은 성게는 등 쪽에 들어온 칼끝을 견디지 못하고 알을 내어주었습니다.
늘 혼자 눈 뜨는 아침은 아무런 계획도 없습니다. 아무 계획 없는 아침을 사랑합니다.
깊은 심해의 성게처럼 계단을 걸어 내려옵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새로 산 투명한 커피잔에 커피 한 잔을 탑니다. 커피잔을 머리에 이고 성게는 천천히 걷습니다. 가시를 한쪽으로 몰고 살짝 허공으로 뛰어오른 다음 소파 위에 살포시 착지합니다. 햇살이 바닷속 깊숙이 닿습니다.
일렁이는 수면 아래로 햇살이 눈 부십니다.
입안으로 달걀껍데기가 씹히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가라앉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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